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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감동 2

스마트폰을 쥔 관중들

by 당구와 인간

프로당구는 프로레슬링과 닮은 꼴이다. 짜인 각본은 없지만 함성으로 흥행을 돋우려는 모습에서 그런 느낌이 든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응원소리가 왜 이리도 큰지. 치어걸의 요란스러움도 이젠 그러려니 생각할 정도다. 진행자와 해설자도 익살스럽게 거든다. 농담 섞인 어투가 더해지고 카메라는 현란한 응원 문구가 들어찬 화면을 수시로 비춘다.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소들에 갇혀 선수들이 애써 탈출하려는 모습 속에 가끔 탈이 나기도 하는 프로당구의 현주소.


관중 없는 경기를 누가 보러 올까. 그 예상은 예나 지금이나 적중하지만 의외의 곳에서 당구문화의 흐름이 이어진다. 스마트폰을 쥔 관중들이다. 프로당구채널의 구독자는 이만 명을 바라본다. 인기 선수가 출전하거나 결승전이 치러질 때면 그 수를 넘어서기도 한다. 언제나 딱 그만큼이지만 들리지 않는 함성은 갈수록 더해지는 것 같다. 마치 레슬링에서 아이들의 고함소리처럼 말이다. 난구나 하이런이 이어지는 것은 별개로 당구 이외 것에 논쟁이 펼쳐지기도 한다.


인신비하는 기본이요 경우에 따라 마녀사냥도 행해진다. 어쩔 땐 아무 말 대잔치가 벌어지기도 하고 선수들을 향한 비아냥은 꼬리 물고 와전되기도 한다. 오심이라도 발견한다면 내일처럼 나서며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장난색이 더 짙은 것도 사실이다. 당구 보러 왔는지 채팅하러 왔는지 궁금증은 잠시 잊힌 채 나 또한 채팅창을 들여다보기 바쁘다. 솔직히 당구보다 재밌을 때가 더 많다. 선수들과 그 관계자들도 훔쳐보며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 같다.


당구 중계가 끝남과 동시에 누리꾼들은 소리 없이 사라진다. 그러다 이슈가 펼쳐지면 어디 숨었다가 나타나는지, 우르르 모여들어 채팅창을 마구마구 흔들어 버린다. 특정 선수를 제외하곤 대부분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나도 칠 수 있는 포지션을 왜 마다하지 않고 보러 오는 것일까. 서로 딴지걸기 바쁜 속내는 당구사랑이 앞서 서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이렇게 찾을 일 없다. 악플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쓴소리는 좀 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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