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소개로 미니 포켓 당구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장소는 선주회사 직원이 머무는 펜션이다. 당부하기를 영국 사람들은 숫자에 민감하다고 한다. 조선업에 종사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서유럽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었다. 대충이라는 말과 모호함을 아주 싫어한다기에 꼼꼼히 확인해서 집기류를 납품받았다. 설치하던 중 큐 장이 원하던 색상이 아니다. 재료업체는 단종상품이라 겨우겨우 구했다며 오히려 당당한 기색이다. 참 난감하다. 그렇게 당부했건만 본의 아니게 먹칠하는 상황이 발생하다니.
‘대충대충’ ‘애매모호’ 그러고 보니 당구에서도 이런 글귀가 익숙하다. 살짝 끌어당긴다든지 길게 내뿜으라는 것들 말이다. 한국 당구가 서유럽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면, 그렇다면 서유럽이 잘 치는 비결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단지 앞선 문명이라는 이유로 설득하기에는 부족하다. *플라스틱 당구공을 사용한 시기가 얼추 같기 때문이다.
당구는 스틱으로 볼을 조준하여 직진성에 의존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되도록 표현하는 일련의 작업이다. ‘팁’으로 내 공을 마찰시켜 변화를 생성시키고 생성된 수구는 또 다른 볼 · 쿠션과의 충돌로 이어져 결과를 기다리게 된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메커니즘이지만 과정에서 미세함과 난해함을 요구하는 까다로움이 도사린다. 그 깊이는 물리학자들도 혀 내두를 정도로 알면 알수록 복잡함이 더해진다.
찰나의 매 순간은 당점 · 각도 · 깊이 · 속도에 따라 카오스 현상을 유도한다. 마찰에서 발생하는 반발력과 현란한 바운드는 수학 공식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경이로움이다. 때에 따라서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기도 한다. 이런 무질서함을 극복하기 위해 때아닌 산수 공부도 해보지만 이내 어리석음을 탓하고 만다. 마치 무한한 우주의 시공간을 보는 듯하다. 이를 극복하지 못해 당구대의 표현 각과 스트로크를 탓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2018년 언론사가 세계대회의 저조한 성적을 문제 삼은 기사 내용이다. “우리 선수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대가 그보다 더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간절함이 부족해 보인다.” “개인적인 문제(생활에 관한 문제라고 설명), 선수를 둘러싼 주변 환경 등이 안정적이지 않아 당구에만 몰입할 수 없었다.” 몇몇 공인들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했다. 해결책으로 기본기가 부족하다며 감각에만 의존하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끄덕여지는 충고다. 와중에 서유럽 선수들은 더더욱 강해졌다. 상금을 몰아가는 모습에서 당연함이 느껴질 정도다.
누구나 당구를 잘 치고 싶다. 그래서 1등을 흠모하며 닮고 싶은 욕심으로 당구를 친다. 물론 똑같이 흉내 낸다고 해서 그들처럼 잘 친다는 보장은 없다. 스스로 스트로크가 닮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막상 실전에서 잦은 실수로 마음 조아리게 된다.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특정 선수를 동경하여 닮고자 함을 나무랄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지나쳐버리는 문제점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톱텐 선수들은 공치는 소리가 다르더라.” 프로 당구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유럽의 한 선수를 지목하여 이르는 소리다. 신선한 호기심이라 꼬리 물고 전파되는 느낌이다. 왜 다르냐고 물으니 주위에서 웅성거린다. 감히 넘볼 수 없다느니, 어릴 때부터 당구 쳤기 때문에 구력을 따라가지 못해서라고 한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는 결론을 주고받으며 화두가 바뀌어 버린다. 아무리 신계의 선수일지라도 인간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똑같은 소리를 다르게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닌지.
* 리오 헨드릭 아서 베이클랜드(Leo Hendrik Arthur Baekeland, 1863년 11월 14일 ~ 1944년 2월 23일)는 벨기에 출신 화학자. 미국 사업가. 플라스틱 공업의 시조(始祖)로 여겨지는 인물. 1905년부터는 셸락(shellac)의 대용품을 연구. 페놀과 포름알데하이드를 반응시켜 최초의 합성수지를 만들었다. 1906년에 특허를 얻어 베이클라이트(bakelite)라는 이름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