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에 빼앗긴 관계의 주도권을 되찾다
이 글은 [Log out, Log in] 매거진 1화에 이어지는 연재입니다
친구를 연기하는 A의 가스라이팅은 여전히 계속됐다. 지금 돌아보면 참 어이없지만, 그땐 그게 ‘친구’라고 믿었다. 친구라는 단어에 속고 있었고, 그 말에 스스로를 묶고 있었다.
자기 생일 기념으로 갑자기 빕스를 쏘라는 A. 밤낮으로 전화하는 A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빕스에 갔다. 그리고 그날, 나는 인생 최악의 밥값을 치렀다.
빕스에서 만난 A의 손에는 도시락통이 잔뜩 들려있었다. 며칠 뒤 있을 남자친구 면회에 가져갈 음식 공수용이란다. 신속하게 과일을 챙기고, 반찬과 디저트를 통에 퍼담는 A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홀 매니저들이 우리 테이블 근처를 맴도는 게 느껴졌다. 순간, “왜 왔을까“ 싶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만 좀 담아”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넌 왜 안 챙겨? 너처럼 못 챙겨가는 사람이 바보야“
A가 내 손에 휴지를 쥐어준다. 휴지 속엔 과일 두어 개가 뭉쳐져 있다.
A와 내가 공범이 되는 건 한 순간이었다. 계산도 내 몫, 부끄러움도 내 몫이었다.
그날 이후, 그 매장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A는 항상 타인을 도구처럼 활용했고, 그걸 ‘능력’이라고 착각했다.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주무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성인이 된 후에는 내가 자기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경계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어느 날, 함께 다니던 학원 강사가 나를 칭찬하자, A가 날 깎아내리며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 그러더니 집에 가는 버스정류장에서 혼자 웃다가 갑자기 폭탄을 던졌다.
“야, 나 임신 그거 뻥이야. 나 귀엽지 않냐?”
엄청난 배신감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웃음) 감쪽같았지? 너 속이려고 배에 붕대도 감고, 남자 친구랑 싸우면서 밖에서 소리 지르고 운 것도 연기였어. 그때 남자 친구가 사고 쳐서 돈이 좀 급했어. 나 너무 귀엽지 않냐? 나 연기 잘하지?“
그날 나는 확신했다. 얘는 미쳤다.
이건 단순한 '이상한 애'가 아니라, 내 인생을 좀먹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A와는 그날부터 멀어졌다. 방법은 간단했다. ‘내가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이제 관계의 주도권을 손에 쥔 사람은 나였다.
몇 년 후, 저장돼 있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삭제했지만 기억에는 선명한 A의 번호였다.
“야, 나 XX야. 나 안 보고 싶어?”
(A는 자기 이름을 줄여서 불렀다)
“아니. 별로“
그 한마디로, 질긴 악연이 끝났다.
생각해 보면 A의 언행은 매 순간 내게 불편함을 곱씹게 했지만, 난 아닌 척 스쳐가기 바빴다. 왜? 우린 ‘가장 친한 친구‘니까.
우린 종종 ‘관계’라는 이름에 스스로를 묶는다. 낌새를 눈치채도 끊지 못한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런 친구라면 없어도 돼"라고 내뱉은 순간, 내 삶은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비워진 자리에는 또 새로운 인연이 채워진다.
나는 가스라이팅은 감정이 아니라 패턴이라는 걸, 이 비참한 관계를 통해 깨달았다. ‘너와 나’의 관계에 특별함을 부여하면서 비상식을 합리화하는 구조. 그걸 알아차린 순간부터, 더는 휘둘리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A를 내 삶에서 완전히 로그아웃시켰다. 단 돈 10만 원으로, 값비싼 인생 경험치를 얻었다.
더 이상 나는 관계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 진짜 친구는 헷갈리게 하지 않고, 불편한 여운도 남기지도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바로 세운 기준 하나로, 관계의 주도권을 항상 내게 두고 살고 있다.
이제 당신께 묻고 싶다. 당신의 삶에도, 이미 로그아웃한 혹은 로그아웃할 관계가 하나쯤 있지 않은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