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유효기간에 대하여

각자의 계절이 끝나면 관계도 흩어진다.

by 움직이는케이

모든 만남은 필연처럼 다가온다. 모든 계절이 그러하듯, 각자의 계절이 끝나면 관계도 흩어진다.


추억이 쌓이고, 오래된 기억은 흐려지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함께한 시간이 추억이 되면 관계 역시 서서히 사그라진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고 한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좋은 시절도, 나쁜 시절도, 결국 지나가는 계절일 뿐이니까. 그리고 다시 새로운 계절이 찾아오면, 우리는 또 다른 필연 속으로 들어간다.



어린 시절,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학교가 전부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학교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관계를 깊게 배운다. 가족 다음으로 친밀한 관계. 한 때는 삶의 전부라고 했을 정도로, 소중했던 친구에 대해 말이다.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가지, 대학교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부정하기 바빴다. “우리는 대학교 친구라고 한정 짓기에는 너무 소중해” 라며 매 순간을 함께 했다. 그렇게 20대 청춘을 즐기며 함께 어른이 되어갔다. 아직도 정말 귀한 인연이다.


하지만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고, 각자의 삶이 달라지자 우리의 일상과 관심사도 변했다. 서로에게 소원해졌다기 보다 서로 바라보는 곳이 달라진 것이다. 관심사의 부재는 관계의 균열을 만든다. 지금의 우리는 예전처럼 일상을 공유하진 않아도, 한 번씩 시절 이야기를 곱씹으며 웃는다. 서로의 삶에서 반짝였던 20대를 꺼내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우리의 관계는 사그라졌지만, 추억 속에서 살아남는다.


이번에는 ‘직장 동료는 직장 동료일 뿐’이라고 한다. 사회에 나와 들은 이 말의 의미도 모르고, 또 부정했다. 그렇게 사회초년생일 때 만나 고생하며 마음을 나누던 동료들과 꽤 오랜 시간 관계를 이어갔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며 우리의 연락도 잦아들었다. 그 시절을 빛내주던 관계의 불꽃이 꺼지기 시작한다. 자, 이제 추억이 될 시간이다.



난 사람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억지로라도 붙잡고 싶어 했다. 허나, 억지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인간관계도 마라톤과 비슷하다. 내가 달리는 동안 주위 사람도 계속 달라진다.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도 손에 꼽히겠지. 우리는 인생이라는 긴 레이스 속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며, 그 모든 흐름을 받아들이며 달린다.


물론 영원한 끝은 아니다. 관계의 휴면기가 오다가도, 어느 날 다시 살아나는 경우도 많다. 서로의 마음이 닿으면 언제든 다시 로그인할 수 있다.


여전히 나는 인간관계 속에서 유영하고 있다. 아직도 헤어짐이 아쉽고, 새로운 만남이 어색하다. 다만, 이제는 관계를 억지로 붙잡지 않고, 놓아주면서 함께한 시간에 고마움을 담을 줄 안다. 그리고 다음 인연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성공하려면 주변을 바꿔야 한다’는 말도 어쩌면 내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관심사가 맞닿아있는 사람들과 새롭게 ’로그인’하라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살면서 수 없이 많은 관계를 로그아웃하고, 로그인하며 살아간다. 각자의 계절이 끝나고 흩어지더라도, 이중 누군가는 또 다른 계절로 찾아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관계의 끝을 ‘유통기한’이 아니라 '유효기간’이라고 불러본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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