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기 보다 ‘좋은 사람’이기를

착함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by 움직이는케이

좋은 사람과 착한 사람은 다르다. 비슷한 의미처럼 보여도, 삶과 관계에 끼치는 영향은 완전히 다르다.


좋은 사람은 무례함에 선을 긋고,

착한 사람은 자신에 선을 지운다.




착함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착한 사람은 ‘세상’과 ‘관계’를 나쁘게 보지 않으려 한다. 무조건 좋게만 보려는 태도는 불편한 결정, 관계 정리, 자기 의사 표현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굳이 타인의 잘못도 계속 이해하고 포장하려 한다. 정말 착하다. 그게 내가 생각한 착한 사람의 모순이다.


직장에서 착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 문장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 이유는 직접 경험해 봤기 때문일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잘못은 반복되고 확장된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로 잘못을 희석해버리면, 피해는 주변까지 확산된다.




좋은 사람은 다르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타인을 이해하면서도 자신을 낮추지 않는다. 경계가 있고, 균형이 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상황을 직시한다. 다정하지만 단단하다. 판단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내가 겪은 착한 사람은 습관적으로 자신을 내던졌다. 상처 받을 걸 알면서 관계에 항상 휘둘렸다. 같은 문제로 울고, 상처받길 반복한다. 왜 모를까. 자기 자신을 낮출수록 점점 더 낮아진다는 것을. 착함과 만만함의 경계는 한끗차이다. 물론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내가 본 이들의 모습은 모두 비슷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직장인 레벨도 올라간다. 사회 초년생 때는 몰랐던 것도 이제는 제법 보인다. 타인에게 착한 것보다, 냉정하게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먼저다. 내 자신을 지켜야 남도 지킬 수 있다. 상황과 반응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기준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힘을 가져야 한다. 그저 좋게 지내려는 마음에 갇혀 자신의 감정을 연료로 태우기엔 내 삶이 너무 아깝지 않나.




착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을 곱게 보되, 부패를 덮지 않는 눈. 그게 진짜 미덕이다.


좋은 사람이 성숙한 판단을 할 때, 착한 사람은 남의시선을 본다.

좋은 사람은 착할 수 있지만, 착한 사람이 좋은 사람은 아니다. 이 차이는 명확하다.


사회에서의 착함은 조금씩 로그아웃할 필요가 있다.

대신 성숙한 판단에는 꾸준히 로그인해야 한다.


스스로를 지키며, 타인과 관계를 맺는 삶.

그것이 지금 내가 지향하는 길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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