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되지 않는 관계의 비밀

진심은 경계를 지나야 발휘된다

by 움직이는케이

가수 이효리가 한 예능에서 했던 말이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았다.


처음 사람을 만나고 너무 괜찮다 느끼지만 얼마 뒤

“그 사람 이상해"라고 말하는 이효리에게 남편 이상순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단 누굴 만나면 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괜찮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이상한 사람이야“


단순히 사람의 좋고, 싫음을 떠나, 나를 지킬 줄 아는 관계의 경계 방식이 꽤 성숙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그 말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순간, 그동안 로그인했다가 너무 빨리 로그아웃하게 된 관계들이 스쳐 지나갔다.




진심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관계를 지키는 방식이자, 로그인을 위한 준비절차다. 언제나 그랬듯, 경계 없이 진심부터 건넨 관계는 빠르게 불붙고, 빠르게 식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어떤 형태로든 만난 시간에 비해 급속도로 불타오르는 관계가 있다.


처음에는 쉴새 없이 떠들며 서로의 감정을 깊이 이해하는 것 같은 내적 친밀감이 느껴진다. 그러다 ‘진짜 잘 통한다’ 싶은 느낌을 받는다. 성질 급한 나는 그런 관계에 무심코 로그인 버튼을 눌러버렸다. 1초만에 간편 계정 연동하듯 말이다.


그게 문제였다. 단지 취향이 겹쳤을 뿐인데, 나는 그걸 ‘내 사람’이라 착각했다. 너무 빨리, 너무 쉽게 로그인된 관계는 보안이 약한 계정처럼 쉽게 털렸고, 금세 로그아웃됐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진심을 줬다고 믿었지만, 사실 그것은 진심이 아니라 감정의 과속이었다.


진심은 서로를 확인하며 신뢰라는 레이어를 쌓아가고, 관계 계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대에게 경계 없이 건넨 마음은 과잉 정보일 뿐이었고, 결국 서로에게 부담이 되어 끝난다.


그래서 요즘 나는 관계의 시작에서 먼저 ‘경계’를 생각한다. 이 경계는 차단의 벽이 아니라 로그인을 위한 첫번째 과정이다.


너무 빨리 로그인하지 않기.
내 감정만으로 판단하지 않기.
상대의 '근본'이 나와 결이 맞는지 살펴보기.


예전의 내가 보면 참 서운해할 태도다.

“사람을 너무 계산적으로 대하는 거 아냐?”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지키는 이 경계 덕분에 관계가 쉽게 로그아웃되지 않는다는 것을.


좋은 관계는 그저 감정에 기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건강한 거리와 신중한 로그인 위에 쌓인다.


나 역시 누군가의 삶에 로그인할 때, 그 사람의 말투, 삶의 태도, 반응의 결 등을 거리를 두고 천천히 살핀다. 상대를 가볍게 보려는 게 아니라, 서로를 오래 보고 싶기 때문이다.


진심을 나누는 데 필요한 건 무턱대고 마음을 주는 용기가 아니라 경계라는 방식이다. 경계를 지켜야 관계는 쉽게 로그아웃되지 않고, 필요할 때 언제든 다시 로그인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 남는다.


관계에 진심이 있다면, 그 진심은 '경계'를 지나야 발휘된다. 그것이 로그아웃 되지 않는 관계의 비밀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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