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의 두 줄기,에피쿠로스와 스토아철학

by Plato Won


철학의 시초는 그리스 철학이다.

그리스 철학은 다시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 원정으로

동방 문화가 합쳐져 헬리니즘 철학을 만들어 낸다.


헬레니즘 철학은 다시 에피쿠로스 철학과

스토아 철학으로 나뉘었다.


헬레니즘 철학 이전 플라톤, 기독교, 그리고 데카르트

로 이어지는 주류 서양철학 전통이 인간 정신을

물질과는 무관한 정신적 실체로 이해했다면,

에피쿠로스 학파나 스토아 학파는 인간의 정신을

철저하게 물질적인 것으로 사유했다.


철학사에서 프랑스 철학자들이 가진 혁명성

혹은 새로움의 기원은 그들이 당시까지 무시되었던

헬레니즘 철학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굴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의 영미권 철학자들에게 헬레니즘 철학이

각광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두 학파의 입장은 세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두 가지 전형적인 방식이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독특한 개인주의적 실천철학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세계 전체 질서에 따르는 삶을

영위하라는 스토아주의의 실천철학을 따를 것인가?

헬레니즘 철학자들은 지금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사실 헬레니즘 시대나 지금은,시대가 모두 제국의

시대이다. 헬레니즘 시대 사람들은 '팍스 로마나'

속에서, 현대는 '팍스 아메리카나'속에서 살고 있다.


즉 제국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영위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의 문제가 헬레니즘 철학자들에게도

현대의 철학자들에게도 동일한 고뇌가 되는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흔히 쾌락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개념은 오늘날

성급하게 '육체적 쾌락'이라고 이해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인간의 기쁨이나 유쾌함을 느끼는

모든 체험, 그러니까 육체적인 쾌락뿐만 아니라

정신적 쾌락까지 모두 포괄하는 의미를 가진다.


당시 에피쿠로스 학파가 비난받았던 이유는

쾌락은 오직 통치자나 통치 계층에게만 독점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입장에서 대다수 피통치자들이 모두 쾌락을

향유한다는 건 여간 못마땅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에피쿠로스 학파는 플라톤으로 상징되는

주류 서양철학 전통의 근본 전제들을 강하게 부정

하면서 시련을 겪었다.


플라톤 철학이나 기독교에서는 마음과 신체가

대립되는 것으로, 영혼의 불멸성을 갖는 것으로

사유되는 데 반해,에피쿠로스 학파는 영혼의 우월성

을 부정하는 이단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에피쿠로스 학파에게 인간은 쾌락의 존재였고

심지어 그들은 죽음마저도 쾌락 원리에 의해

선택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 전국시대를 풍미했던

양주라는 철학자도 같은 입장이었다.


그는 온전한 삶이 첫째이고 부족한 삶이 둘째이며

죽음이 그다음이고 핍박받는 삶이 제일 못하다고

하였다.


온전한 삶은 인간의 다양한 욕망이 모두 적절함을

얻을 때, 부족한 삶은 그 적절함이 부분적으로만

얻을 때, 죽음이란 지각 능력을 잃고 삶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핍박받는 삶이란 인간의 욕망이

그 적절함을 얻지 못하고 최악으로 불쾌한 상태를

말한다. 굴종이 그렇고 치욕이 그렇다. 그래서

핍박받는 삶은 죽음보다 못하다는 입장이었다.


에피쿠로스 학파든 양주파든 최고로 불쾌한 상태는

죽음이 아니고 부자유의 상태였던 것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말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체제 입장에서는 정말로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혁명적인 생각 아니던가? 그래서

체제는 에피쿠로스 학파를 동물적인 쾌락이나

추구하고 있다고 저주하였지만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육체적 쾌락에만 빠져

있다는 오해는 체제의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허위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선택과 기피의 동기를

발견하고 공허한 추측들을 몰아내면서 멀정한

정신으로 헤아리는"지적인 통찰에서만 가능한

쾌락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쓸데없는 욕망은

부정하였다.


서양의 에피쿠로스 학파든 중국의 양주 학파든

비슷한 시기에 정치적이든 세속적이든 허왕된

욕망을 철저히 부정했다는 사실에서 오늘날의

현대철학의 사상들과 닮아 있다.


이에 반해 스토아학파는 아파테이아(apatheia)

로 일체의 인간적 감정에서 초월한 상태를

주장하였다.


스토아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세계가 철저한

인간관계 혹은 인과적인 질서에 의해 발생하고

움직인다고 보았다. 따라서 우리는 원인을

알게 되면 결국 이 원인에 따른 결과 역시 미리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삶에 초연했던 스토아학파는 여러 면에서 중국의

신유학을 대표하는 소옹의 철학과 닮아 있다.


" 크고 작은 일에는 모두 자연과 사람을 지배하는

理가 갖추어져 있다. 추구하는 것은 사람이 할 일

이지만, 그것을 얻고 얻지 못하고는 자연에 달려

있다. 얻든 얻지 못하든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는

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길이다. 자연을 거역하는

사람은 반드시 근심과 재난을 당할 것이다."

자연질서에 순응해야 한다는 소웅의 철학은

스토어 학파와 맥이 상통한다 .


'진인사대천명', '수인사 대천명'

사람의 일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는 동양

유학 선비들의 사상이나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의

삶의 태도는 정확히 동일하게 닮아 있다.


헬레니즘 철학의 두 줄기인

에피쿠로스 학파는 개체의 삶과 개체의 쾌락을

중시하는 반면, 스토아학파는 개체의 삶보다는

전체 질서를 더 중시했다.


이들 철학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개인의 자유를 중시했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에피쿠로스 학파와 닮아있고, 개인을 넘어서

구조의 필연성을 강조했던 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스토아학파와 흡사하다.


이들 철학은 또다시 스피노자와 들뢰즈에 의해

비판적으로 종합되면서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라,

구조에 직면해 있는 자유, 혹은 구조를 넘어서려는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극복될 현실이 없는 이상은 백일몽에 지나지 않고

이상이 없는 현실주의는 체념의 허무주의로 남을

뿐이다.


현대철학의 거두 스피노자나 들뢰즈는

이들 두 학파의 비판적 종합을 통해

"백일몽과 체념이란 양쪽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고

능선을 건너려는 신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개인의 자유가 우선인가

공동체의 질서가 우선인가는

사실 철학의 거대 담론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큰 물줄기이다.


둘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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