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소비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by Plato Won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이성보다는 감성을,

정신보다는 몸을, 동일성보다는 차이를,

정착민보다는 유목민을 강조하는 지적인 경향,

이것이 20세기 후반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해체주의 정신이다.


전통적인 그리스 철학이나 기독교 교리는

욕망이란 기본적으로 억제되어야 할 대상이다.


동양의 불교 또한 탐욕은 극복의 대상이고,

유학은 절욕을 강조하였다.

맹자는 "마음을 기르는 데는 욕망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라고도 하였다.


이성과 욕망, 정신과 육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이성과 정신만을 강조한 이유는 빈약한 생산력에

기인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산력이 매우 저조할 때,

인간이 공동생활의 규범으로 채택할 수 있는

것은 금욕이나 절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산업자본주의의 급격한

발달로 서양 사회는 생산 사회에서 소비사회로

본격 진입하게 된다.

욕망은 이제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로까지

격상하게 된다.


드디어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주의가 대두

되며 새로운 사유 경향은 욕망 억제 따위의

기존의 낡고 억압적인 사유를 극복하면서

자유와 해방을 도모하려는 시도를 해 나간다.


그러나 소비사회로 본격 진입하면서

인간은 소비 주권을 또 다른 산업자본의

무의식적인 동기 때문에 빼앗기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비, 지출, 향유나 무계산적인 구매(후불 구매)

는 외관상의 인간 혁명일 뿐 산업자본논리에

강요된 욕구 분출일 수 있다.


현대인들은 물건의 기능보다는 기호를

소비한다고 말한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말한다.


"산업자본이 개인의 욕망과 그 충족의 자유를

선전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진 자기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고"


수천 년의 세월을 돌파해서 모든 억압적인

중심을 공격해서 삶을 해방시키려고 했던

인간의 사상적 노력마저도, 자본주의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이토록 인간을 부려먹고 있지는

않은 지, 또 우리는 자신의 자유가 아닌

산업자본논리에 길들여진 꼭두각시 소비를

하고 있지는 않은 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자유다.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다."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현대인들이 있는가?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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