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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새벽 다섯 시에 기차를 타야 하는 것은 아니다.
by
Plato Won
Jul 4. 2020
인생이 꼭 투쟁적이지만은 않아도 된다. 서정적일 필요가 있다.그 서정성은 깊은 마음 속에 숨어 있다.
고독한 천재 작가, 카프카
프라하에서 유대계 독일인으로 태어난 카프카,
그는 유대인의 아들이었고,독일어로 글을 썼다.
카프카는 그 모든 것이었으며,동시에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카프카는 그래서
완벽한 이방인이었으며 고독과 외로움이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독일인으로 살아야 하는
그의 삶 자체가 고독과 외로움이었다.
모든 것을 항상 낯설게 느끼는
'Der Fremde 이방인' 이었다.
그는 자기 주변의 모든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또는 고향처럼 친근하게 느끼지 못하고 겉도는
철저한 고독,외로움,
내 것이 아닌 그 무엇이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이런
'낯설음'이 곳곳에
묻어있다.
연극인 추송웅이 모노드라마로 상연했던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은 카프카의 작품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각색한 작품이다.
고독과 외로움에 몸무림치던 카프카,
폐결핵 진단을 받아 요양원을 전전하던
그에게
어느 날 불덩이 같은 연인 밀레나가
다가오며
그녀를 통해 인생의 큰 위안을 받는다.
그녀 역시 카프를 통해 인생의 위로를 받는다.
자수성가한 아버지가 카프가에게는 폭군과
같아 깊은 상처를 받는 카프카는 그러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중압감으로
고독과 외로움을 더 느끼게 된다.
그즈음 글은 카프카의 유일한 위로였다.
프라하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고 1년 간
법률 회사에 시보로 근무하다 국가보험공단에서
14년 동안 근무했다.
대부분 오후 2시에 퇴근하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독서를 하고 새벽까지 글을 썼다.
카프카의 작품은 매우 이질적이고 매우 개성이
강했고 무엇보다도 고독한 천재가 가진 특성들을
다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은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인간의 소외와 소통의 부재,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에 대해 예리하게 파고든
작품이다.
비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소통의 부재로
인한
고독한 실존, 인간의 내면을 그려낸다.
"타야 할 기차가 새벽 다섯 시에 떠나니까~~~
내가 언젠가 부모가 진 빚을 다 갚는다면
그게 5,6년은 걸리겠지만 그때는 나의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다.
아무려나 우선은 일어나야 한다.
타야 할 기차가 새벽 다섯 시에
떠나니까~~~"
<변신>은 회사원 그레고르가 잠자던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자신이 해괴한 한 마리의
갑충류 벌레로 변신해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외판원으로 일하며
고달픈 생활을 반복하는 그레고르, 그런 그가
어느 날 한 마리의 커다란 갑충류 벌레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그는 벌레가
된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으로
새벽 다섯 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놓칠 것을
더 걱정한다.
회사를 결근하면 해고당할 것을 고민하는
그레고르, 그러나 그가 힘들게 방에서 문을
열고 가족 앞에 다가섰을 때 그가 부양하던
가족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몽둥이로
위협하며 아수라장이 된다
그렇게 그레고르가 벌레가 된 후, 가족들은
각자의 삶을 위해 직장을 찾아 일을
하고
,
그레고르를 혐오하며 방안에 가둔다.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말을 다 알아듣지만
자신의 미안한 마음을 전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마음과는 달리
그레고르를 귀찮고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며
방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가둔다.
그레고르 방은 점차 창고로 변해가며
그의 존재감은 점차 사라진다
.
여동생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 음악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열심히 외판원 생활을 했던
그레고르는 그런 여동생의 한마디 말에
절망한다.
"이런 괴물을 오빠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
카프카의 작품들은 대부분 암울하다.
물질만능주의의 팽배에 따른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의 상실, 이 작품은 작가 개인의 문제를
다룬 게 아니다.
한 마리 벌레로 변해버린 극한의 상황에서
철저한 소외와 소통의 부재, 이로 인해 실존의
위험에 빠진 한 남자,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가족과 직장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한 남자의
고독과 외로움.
이것은 이 시대 모든 현대인들의
고독과 외로움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갑자기 갑충류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의 입장이 될 수 있다.
황금을 쫓아 끝없이 달려가는 이 시대의
모든 이들이 언제나 불현듯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다.
카프카의 작품 <변신>은
인간 실존의 불안감을 적나라하게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고 있으나, 우리의 일상은 과장된
실패가 언제 닥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래서, 그러므로
황금을 쫓고 쫓고 쫓는 것이고
아이러니하게도 갑충류 벌레 신세가 되기
싫어 쫓고 쫓은 그 황금의 무게에 무너져
내려
벌레 군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그렇다면 그저 손 놓고 멍 때리고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인간의 실존의 고귀함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인간의 태생적 존재의 불안감은
어디에서 해소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을 카프카는 <변신>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모든 걸 버리고 생을 여기까지 이끌고
왔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황금을 멀리하고 가치를 추구할 때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 관계,
그것이 또 다른 답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드시 새벽 다섯 시에 기차를 타야 하는
것만은 아니고 떠나보낼 수도 있는
것이
인생아니겠는가?
'苦集滅道,고집멸도'
집착을 버리면 깨달음을 얻는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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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 Won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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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작가에 의해 쓰여지지만 그 글을 사유하고 질문하는 누군가에 의해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지식이 범생이의 모범답안지에 기여하기보다는 야성적 충동가의 혁신도구이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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