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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Nov 14. 2020

진중권과 유시민의 <자유론> 논쟁에 대한 참견

Plato Won 作.어떤 감이 먼저 땅에 떨어질까? 유시민 감? 아님 진중권 감


넉넉한 휴일

재미난 주제가 있어 그 논쟁에

<패럴랙스적 생각열기> 관점으로 조금

참견을 해보기로 한다.


최근 유시민 작가가

<알릴레오  시즌 3>로 다시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면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선정했다.


밀의 자유론은

패럴랙스 인문아트 시리즈 4편에 선보일

 인문고전으로

생각표현을 위한 필독서다.


문제의 발단은

 유시민 작가가 지난 8ㆍ15 광복절 광화문 행사를

정부가 공권력으로 불허한 것이

정당하다는 논리의 근거로

밀의 자유론을 인용하면시작되었다.


유시민 작가의 논거는

밀이 자유론에서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사유

그 행동이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경우에 한하다."는  내용을 

815집회 불허의 근거로

 내세우면서부터다.


즉, 코로나 사태로 광화문 행사를 허락하면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입힐 것이 자명하므로

집회, 결사의 자유는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다.


 주장에 진중권 교수

"유시민 씨가 자유론으로 사기를 친다"

는 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반론을 제기했다.


"이게 얼마 무식한 소리인지 

질근질근 밝히겠다"라고

 밝힌 진중권 교수는


"지식인을 자처하며 자유론의 개념을

모르는 것이 문제다.

유시민 작가가 정말 모르는 것 같다."

라고 힐난하며

<재러미 밴덤의 파놉티콘>이용하여

'유시민과 파놉티콘'이라는 칼럼을 쓰겠다고

예고했다.


여기서 재러미 밴담의 파놉티콘이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공리주의 철학자

재러미 벤담이 제시한

 효율적인 감옥시설을 말한다.


<파놉티콘>이란

감시 권력이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수용자가 감시자의 부재를 인식하지 못하기

문에 실제로 감시자가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상태를 그 핵심 개념으로 한다.


감옥시설의 경우

중앙의 원형 감시탑에서 각 수용실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으나 수용자들은

감사자가 있는지 없는 ,

감시하는 지 하지 않는 지를 알 수 없어

결과적으로  감시자가 없어도 실제

감시자가 있는 효과를 내는 감옥시설을 말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정보의 파놉티콘으로  개념이 확장되어

정보망에 노출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노출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지신의 행동이나 작업에 주의를

기울이는 현상을 뜻하기도 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파놉티콘을 '잔인한 철장'으로 지칭했고,

철학자 들뢰즈는 이러한 인식을 한 단계 더

추상적 단계로 격상시켜 '통제사회'라고도

주장했다.


<패럴랙스 인문아트 시리즈 4편>에서 다룰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개인의 자유가 인류의 발전의 원동력이므로

양심과 사상의 자유, 집회, 출판의 자유를

최초로 주장한 자유 변론서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는 단 한 가지 , 그 자유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에 한한다"는

밀의 자유론 사상을

코로나로 인한 8ㆍ15 광복절 집회 행사 불허라는

정부의 공권력 행사에 대입한 

유시민 작가와 이를 사기로 주장하는

진중권 교수의 지적 혈투가 흥미진지하다.


진중권 교수는 심지어 유시민 작가에게

"지식 소매상이라면 팔 물건을

가지고 있어야지요"라고 비난하며

"질근질근 잘못을 씹어주겠다"

예고했으니 그 칼럼의 논거가 무엇일지

 예상은 되나 자못 기다려진다.


<패럴랙스 생각열기>

 3대 천재 학습자 중 한 명인,

 우리에게는 친숙한 존 스튜어트 밀이

160년이 지난 대한민국 정치판에

호출되고 있다.


"자유를 누리는 현대인들은 밀에게 부채를 지고 있다"

고 극찬되는 자유의 변론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통해

진중권 교수와 유시민 작가의

혈투에 잠시 참견을 하고 싶으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잠시 참도록 하겠다.


"인문고전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이 있을 뿐이다."는 명제를

권력층들은 늘 우매한 대중의 여론몰이로

자의적으로 활용해 왔다는 점만은

분명히 뱕혀 두고자 한다.


여론과 관습을 앞세운 다수의 횡포가

 갖는 위험성을 경고한

밀의 자유론이 언제,누가

이렇게 변질 시겼단 말인가?


지식,학식도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다.


남에게 속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신의 무지에 속는 것이라는 것을

적어도 지식소매상으로 자처하는

이들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Plato Won


영국의 파놉티콘 감옥























경우에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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