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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토론 없는 진리는 죽은 독단일 뿐

밀의 자유론 추상화 해석

by Plato Won


"내가 카이사를 죽인 이유는

그를 덜 사랑해서가 아나라 로마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외치며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해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권력욕을 드러낸 카이사르를 암살한 이는

카이사르가 친자식처럼 아끼던 브루투스였다.


"카이사르가 죽고 자유민으로 사는 것,

카이사르가 살고 노예로 사는 것

여러분은 어떤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셰익스피어의 희곡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담긴 브루투스 연설 장면이다.


연단에 올라 로마 공화정을 열렬히 옹호하며

권력자 카이사르에 맞선 <의무론>의 저자이기도

한 키케로, 그는 당시 로마의 유명한 변호사이자

철학자였다.


후마니티아(humanitia), 인문학이라는 말을

최초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한 키케로는 독재자

카이사르에 맞서 반기를 들다 사형을 당한 후

손이 잘려나가는 수모를 겪었다.


토론 없는 진리는 죽은 독단일 뿐이다.


어떤 주장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 근거도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주장의 근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면

판단을 잠시 보류해야 한다.


비판과 토론을 차단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고집할 때

이는 진리를 고집하는 게 이니라 미신을 고집하는

것이다.


토론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

죽은 독단일 뿐이다고 밀은 <자유론>에서

일관되게 주장한다.


추상화 그림은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자,그럼 토론을 통해 살아있는 진리를 찾고자 했던

키케로 만나러 로마 시대로 들어가 보자.



조각그림 1

지성을 단련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명확히 학습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판에

맞서 제대로 된 반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를 통해 표현하였다.


조각그림 2

수학에서는 모든 주장이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에

반론이 있을 수 없지만, 의견 차이가 생기는 분야에서는

상반되는 의견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진리를 찾아야

한다.그림은 로마의 철학자이자 웅변가인 키케로보다

얼굴을 크게 그려서 입을 크게 벌리고 반론을

제기하는 듯한 얼굴 표정으로 표현하였다.


얼굴이 오른편으로 쏠리게 표현한 것은 수학같이

모든 주장이 한쪽으로 쏠리는 분야는 반론이 있을 수

없음을 표현하였다.


조각그림 3


조각그림 왼편의 키케로와 오른편의 사람이 토론의

강에서 열띤 논쟁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진리를 가진 왼쪽 사람이 지동설을 주장하고 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채색이 없는 스케치로 표현

하였다. 반면 오른쪽 큰소리 치는 사람은 천동설을

주장하며, 지동설을 뒷받침 해 주는 객관적 근거를

무시하고 있어 천동설이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표현했다.


자연과학분야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대해 다른

주장이 제기될 수 있는데, 이때 객관적 증거를

무시하고 큰소리치는 사람의 의견이 받아들여

질 수 있음을 표현한 그림이다.


조각그림 4

조각그림 4는 두 사람이 토론의 강에서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자. 두 사람이 루비콘강을

건너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듯한 그림이다.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의 공화정을 무너뜨러야

한다는 카이사르,이에 대한 부당함을 설파하는

키케로가 토론의 강 루비콘강을 사이에 두고

열띤 토론을 하는 모습이다.


로마 시대 키케로는 로마의 공화정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군사를 이끌고 루비콘강을 건넌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독재자로 군림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키케로와

카이사르가 서로 로마의 정치 형태를 놓고

열띤 논쟁을 하는 모습이다.


상대 의견이 왜 진리가 될 수 없는 지 설득하는

모습을 키케로의 얼굴 채색으로 표현했다.


조각그림 5

그림은 왼쪽의 키케로와 오른쪽 사람이 논쟁을

하는데 키케로는 듣고 있고 오른쪽 사람은 무언가

계속 주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사람이 말하는 모습의 그림 크기가 왼쪽

사람의 크기보다 3/4 정도 크게 표현한 것은

로마가 낳은 철학자 이자 위대한 웅변가 키케로는

자기주장의 근거만큼이나 상대방의 주장을

이해하는 데 주력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조각그림 6

그림은 두 사람이 토론의 강 위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옳다고 판명된 생각도 충분한 토론이 뒤따르지

않으면 살아 있는 진리가 아니라 죽은 독단에 지나지

않는다. 진리는 치열한 토론의 강을 건넜을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하고 기탄없이 토론을 펼칠 때

진리는 베일을 벗고 생생한 모습을 드러낸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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