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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Sep 23. 2018

正義란 그 자체로도 좋고 수단으로서도 좋은 것

올바른 일을 올바른 사람들과 올바른 방법으로 行하는 것,그것이 格이다.

플라톤이 아카데미아에서 젊은이들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로 토론하는 장면

正義의 定意는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철학의 메인 주제는 정의에 대한 연구에 집중되어 있다.


정의의 개념은 무엇이고,

정의로움이 왜 필요한지

정의로운 공동체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체계는
어떠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를 고민해 왔다.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했던 것처럼

서양철학의

출발점으로 인식되는 플라톤의 대표작

<국가론>도 정의란 무엇인가를 놓고 대화를 이끌어 간다.


벤담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 개념도 정의에 대한 문제이며


민주주의 규칙도,

자유,평등,박애 사상도 결국 정의의 문제다.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유독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이 팔린 이유는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는 반증은 아닐까?


법치 국가 실현이

곧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데 사실인가?


도덕과 양심, 관습은

정의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우리가 살면서 매순간

맞딱드리는 문제에서 정의롭게 판단하고

있다면 그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칙과 법만

잘 지켜나가면 정의롭게 사는 것인가?


정의가 철학에서 메인 주제인 이유는

정의로와야 행복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추구라 하였다.

세상 모든 것은 그 상위 목적이 있는데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정의의 상위 목적은 행복이다.

정의롭지 못하면 불행해진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주변에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더 당당하고 풍요를 누리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마이클 샌들은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를

세 가지 분류로 구분한다.


첫째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벤담의 공리주의적 관점이다.


둘째는

개인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고 국가 개입을 최소화

하는 자유주의적 관점이다


셋째는

공동체주의적 관점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좋은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생길 수 밖에 없는 이견을 기꺼이 수용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마이클 샌들은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 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고
공동의 선을 추구하고 이 과정에서 소외된
이견을 수용하려는 자세가 정의구현에

필요하다는 공동체주의적 관점에 무게추를 둔다.


그러나
마이클샌들은

독자들에게 스스로 정의의 개념을 정립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길 권할 뿐

정답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의라는 수학적 알고리즘을 만들 수는 없을까?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말한

일반의지의 실현에서 그 해답의 가능성이 있을까?

루소의 일반의지란
개인의 이익도 아니고 다수의 이익도 아닌

공동체만의 이익의 총합이다.


다시말해
개인의 사익으로 인해

공동체 이익을 훼손시키는 것은 일반의지가 아니다.


플라톤은
개인차원의 정의로

이성이 용기의 도움을 받아 욕망을 잘 절제할 때

올바름은 달성된다 하였다.


국가차원의 정의는

지혜를 지닌 통치자가

용기를 지닌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국민 전체의 욕망을 잘 절제시킬 때 달성된다 하였다.


욕망은 다시

필요한 욕망,불필요한 욕망,불법적인 욕망으로 구분한다.


필요한 욕망은

개인에게 이로우면서 공동체 이익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고

불필요한 욕망은

개인에게 해로우나 공동체 이익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며

불법적인 욕망은

개인에게는 이로우나 공동체에게는 피해를 주는 것이다.


루소의 일반의지와

플라톤의 정의의 개념을 혼합하면


개인의 정의란

사회계약에 따라 권리와 의무의 균형,공평한 분배가 실현되는 것을 전제로

이성이 용기의 도움을 받아 욕망을 잘 절제할 때

정의로움은 달성된다.


국가차원의 정의란

지혜로운 통치자가 용기있는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국민의 합리적인 욕망은 북돋우고

불필요한 욕망은 자제시키고

불법적인 욕망은 엄격히 법으로 다스리는

정치,사회,경제시스템을 구축할 때 달성된다.


이러한
정의의 알고리즘을

마이클 샌들이 예시로 제시한 몇가지 사례에

대입해 보자.


기차가 정해진 철길을 달리는데

인부 10명이 착각해서 철로 위에서 일을 하고 있다.
기관사는 방향을 틀면 2명만 일하는 다른 철길로 진입해서

단 2명만 희생된다.

정의의 관점에서 기관사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나?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2명의 희생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루소의 일반의지 관점에서는
사회계약 위반이다.
플라톤 정의 관점에서도

무고한 2명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은 불법적 정의감이다.


병으로 고통받는 병자가

의사에게 안락사를 부탁해서 200명을 안락사 시킨

의사는 정의로웠는가?


자유주의적 정의 관점에서는

개인이 죽음을 스스로 선택했음으로 잘못이 아니고

의사는 고통받는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했음으로

정당하다.


그러나 루소의 일반의지 관점에서

사회계약 위반이다.

플라톤 정의 관점에서

용기의 도움을 받지 못한 이성이

불법적인 욕망을 필요한 욕망으로 착각한 잘못이다.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이 발생하는 사회,

개발독재시절에
사회적 혜택을 받아 성장한 대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에 소홀하고 자신들의 부의 축적

에만 몰두하도록 내버려두는 사회는

균등한 분배가 깨진 것이므로 정의롭지 못하다.


정의롭지 못한 개인은
정의롭지 못한 행동으로 이해관계자들과
갈등을 양산하고,결국은 누리던 행복을 유지하지 못한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는

계층간의 갈등으로 번영을 오래토록 유지하지 못한다.


철학은
정의를 탐구하는 학문이고

정의는 공정한 분배요 권리,의무의 균등이다.

정의로울 때
행복이 오고 행복은 삶에서 최고의 선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부모의 원수는 잊어도

자신의 재산을 빼앗아 간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만큼 분배의 정의가 깨지면

갈등을 잉태하게 되고 원수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불행의 씨앗이 싹트고 평화는 깨진다.


정의롭기 위해서

이성과 용기와 욕망과 절제를 잘 버무리는 것이

철학을 탐구하는 이유다.


2400년 전 플라톤은 말했다.

"정의는 그 자체로서도 좋고

수단으로서도 좋은 것이다."


동의하는가?
동의한다면 이 말을 명심하고 실천하는 것이

행복의 출발점 아니겠는가?

올바른 일을
올바른 사람들과
올바른 방법으로 行하는 것,

가장 빠른 길은 바른 길을 걷는 것임을
숙고해 보자.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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