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상의 아래에삼각형과 원의 기하학은 그리스 철학의 바탕이된 기하학을 상징하고 알렉산드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전수받은 그리스 철학, 정치사상을 상징한다.
추상화의 사람 형상은알렉산더다.
알렉산더는 어린 시절 아리스토텔레스가 필사해서 주석까지 달아 선물한 책,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영웅아킬레우스를 동경했다.
알렉산더는 이 작품을매일 읽으며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원대한 꿈을꾸었는데 추상화의
조각상은 아킬레우스를 동경한 알렉산더를
상징한다.
스케치 하단 평면도는정복지알렉산드리아 도시다.
알렉산더는 정복한지역에 그의 이름을 딴 그리스식 폴리스인알렉산드리아 도시를 여러 곳에
건설하였는데, 평면도는 알렉산더가 정복한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상징한다.
알렉산더는 여타 군주와는 달리 정복지를 강제로
복속시키지 않고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받아들여
문화적 차이와 종교적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연 위대한 군주였다.
이후 이 도시들은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연결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그중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연구기관이 '뮤세이온'을 지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학자. 예술가들을 후원하면서
자연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소장한 책들이 무려 50여 만권이나
되었다고 한다.
스케치 그림의 기하학, 평면들은 당시 화려했던
알렉산드리아의 사상, 예술, 자연과학을 상징한다.
이후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알렉산더는
33세의 나이로 병사하자, 50년간 치열한 전쟁과
암투로 제국은 이집트, 시리아, 마케도니아로 3등분
되어 그의 부하들이 통치하게 된다.
추상화 조각상의 전체 모습이 완성되지 못하고
좌우로 3등분으로구분된 것은 알렉산더의 제국
건설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음을 상징한다.
알렉산더의 사후 그의 제국은 부하들에 의해
3등분으로쪼개져 분할 통치되다 사라졌음을
조각상 좌우로 3 등분된 날갯짓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이 만든 헬레니즘 문명은
그의 사후 300년 동안이나 서양문명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웅장하게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조각상으로 표현했다.
추상화의 조각상은 알렉산더 대왕과헬레니즘
문명을 상징하고, 조각상 바닥의 기하학 문형은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전수받은 그리스의
철학과 문화로알렉산더 대왕의 "지혜로운
통치방식을 상징한다.
"땅과 바다를 다스리지 않더라도 고귀한 것을
행할 수 있다."
추상화의 조각상이 이 땅과 바다를 딛고 일어나
세상을 밝히는 듯한 추상 그림이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4. 헬레니즘과 알렉산드로스>
"나에게 육체적 생명을 준 사람은 아버지이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훌륭한 삶을 사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최초의 세계 제국을 건설함으로써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결합한 헬레니즘 문화를 탄생시킨 주인공,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말입니다.
그리스인들이 야만인으로 치부했던 그리스 북쪽 변방인 마케도니아의 왕자로 태어난 그는 10대
초반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철학과 정치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을 배웠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열광하여 그 주인공 아킬레우스를 동경하던 알렉산드로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손수 이 작품을 필사하고 주석을 달아 선물했고, 제자는 이를 매일 읽으며 전쟁터까지 가져갈 정도로 소중히 간직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사상과 문화에 매료된 그가 이를 세계
곳곳에 전파하여 새로운 제국을 세우겠다는 원대한 이상을 품고, 지혜로운 통치 전략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그렇기에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전쟁은 여타 군주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페르시아를 정복한 후, 각 지방의 제도를 인정해 주고 총독들의 자리를 보전해 주는가 하면, 전장에서 도망치다 죽은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의 공주와 결혼까지 하며 정복지의 시민들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정치적 감각도 뛰어났지요.
알렉산드로스는 정복지의 문화와 종교를 인정해
주면서 문화적 차이와 종교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그는 인도의 인더스 지역까지 영토를 넓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까지 거대한 제국을 이룩하였고, 정복지에 (자신의 이름을 본뜬) 그리스식 폴리스인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여 그리스인들을 이주시켰습니다.
이후 이 도시들은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결합시키는 전초 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그중 가장 큰 규모를 지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연구 기관인 뮤세이온을 지어 세계 각지의 학자와 예술가들을 모아 후원하면서, 그리스 철학과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의 과학이 결합해 자연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게 됩니다.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은 이집트에 들어오는 모든 서적을 필사해서 무려 50여 만권을 소장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스승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리케이온의 도서관을 모델로 이 도서관을 건립했는가 하면, 스승의 자연 과학 연구를 위해 세계 원정에 동행했던 학자들의 연구 정보, 점령지에서 수집한 희귀한 동식물을 보내 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알렉산드로스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자, 제국에서는 50년간 치열한 암투와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결과 제국이 이집트, 시리아, 마케도니아로 3 등분되면서 그의 부하인 프톨레마이오스, 셀레우코스, 안티고노스가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지혜로운 통치 방식에서 탄생한 헬레니즘 문화를 바탕으로 사후 300여 년간 동서양 문화가 융합한 ‘헬레니즘 시대’가 도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해체되어 가는 과정에서 공동체(폴리스)의 발전이 아닌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철학들이 탄생했고, 폴리스를 넘어 더 큰 공동체를 꿈꾸는 세계 시민주의가 등장하는 등,
다양한 문화적 흐름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철학, 수학과 과학, 예술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지요. 철학 분야에서는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가 생겨났고, 학문에서는 유클리드 기하학, 아르키메데스의 수학, 제논의 스토이즘 등 다양한 학문이 정립되었으며, 예술 분야에서도 그리스의 정교하고 정적인 기풍에 역동성을 가미한 조각상들이 탄생했습니다.
라오콘 군상, 밀로의 비너스, 승리의 여신상은
헬레니즘 대표적 조각상이지요. 정복지 인도에서는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미술'이 등장했고, 이 간다라 미술은 신라 불국사의 석굴암 본존불상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헬레니즘으로 하나가 된 그리스와 오리엔트, 여기에 헬레니즘 3국을 정복한 서부 지중해 세계의 로마가 편입되면서 비로소 서양의 고대는 완성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단순한 정복 군주가 아니라 헬레니즘 문화를 탄생시켜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한 일등공신입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땅과 바다를 다스리지 않더라도 고귀한 것을 행할 수 있다’는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