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의 거인이 남긴 위대한 유산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과 정치학 4권 3과 <추상화 읽기>스크립트

by Plato Won
Plato Won 作



(1) 극과 극을 오간 평가의 주인공


철학자를 뜻하는 일반 명사에 정관사를 붙인

‘the Philosopher’는

13~17세기 유럽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지칭하던 말입니다.


그가 다른 철학자들을 압도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였음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양극단을 오갔습니다.


오죽하면 철학의 거인 헤겔이

“아리스토텔레스만큼 부당한 대우를 받은 철학자도 없었다.”라고 했을까요.


기원전 322년 사망 이후, 차츰 잊혀 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는

약 300년이 흐른 뒤 안드로니코스에 의해 가까스로 되살아납니다.


오랜 세월 방치되다가 이곳저곳으로 팔려 갔던 원고들이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서기 529년,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리케이온과 모교 아카데메이아가 기독교 사상이 아닌 다른 철학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동로마 제국 황제의 명에 의해 폐쇄되고 맙니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은 서양 지성사에서 삭제되다시피 했지만,이슬람 문화권에서 활발하게 연구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습니다.


이슬람 학자들은 그를 ‘첫 스승’이라 부를 정도로 흠모했다고 전해지지요.


서양인들은 현세를 긍정하는 그리스 철학,

특히 영혼 불멸을 부정한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 기독교 교리에 치명적인 해가 된다고 간주하여 오랜 세월 동안 배척해 왔습니다.


자칫 명맥이 끊길 뻔했던 그의 사상이

서양에서 다시 주목받은 것은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서입니다.


신의 섭리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체계를 기독교 신학에 접목했고, 교회가 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천문학을 비롯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절대 진리로 자리매김하면서,

이후 스콜라 철학자들은 그의 이론을 토대로 자연을 탐구해 나갔습니다.


(2) 근대의 문을 연 뉴턴과 베이컨


아이러니하게도 서양의 근대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천상과 지상의 운동 법칙이 따로 존재한다고 본 그의 물리학 이론이 16~17세기 근대 과학 혁명을 계기로, 비판의 도마에 오른 것입니다.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해,

지구의 사과가 지상으로 떨어지든, 천상의 달에서

공을 떨어뜨리든, 모두 동일한 운동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밝혀냈지요.


이처럼 과학적인 탐구 절차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려는 노력은

중세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뉴턴보다 1세기 전에 그 대열의 선두에 자리했던

이가 있었으니,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프랜시스 베이컨입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과거의 학문이

현학과 자기기만의 늪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며

‘네 가지 우상’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우상’은 사람들을 오류로 이끄는 좋지 못한 정신적 습관을 뜻하지요.


첫째는 종족의 우상으로,

인간이 현실을 왜곡하여 받아들임으로써

세계를 잘못 인식하게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둘째는 동굴의 우상으로,

개인의 신념이나 고정관념으로 인해

오류에 빠지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셋째는 시장의 우상으로,

대상을 충실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언어의 한계가

오류를 낳는 경우입니다.


넷째는 극장의 우상으로,

권위를 맹목적으로 추종한 탓에 판단력이 저하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논리학의 교과서로 군림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오르가논』은 그가 지닌 학문적 권위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이컨은 대표작 『신기관』을 통해,

『오르가논』이라는 극장의 우상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신기관』의 라틴어 원제인 ‘노붐 오르가눔(Novum Organum)’은

‘새로운 오르가논’, 즉 ‘완전히 다시 쓴 오르가논’이라는 뜻이지요.


베이컨은 삼단논법 위주의 연역법으로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하는 데 그칠 뿐이니,

전통적 귀납법에서 실험과 관찰을 보강한 ‘과학적 귀납법’을 사용해야만 새로운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때 실험과 관찰에서 명심할 두 가지 조건은

기존의 편견을 제거하는 것,

자연의 원리를 발견하여 귀납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베이컨은 과학적 귀납법의 유용성을 뒷받침하고자

거미와 개미, 꿀벌의 비유를 듭니다.

그는 ‘독단적 추리, 관념적 교리’만 내세우거나

‘연역적 사유’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거미’에 비유합니다.자신이 자아낸 실로 집을 짓는 거미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그만큼 한정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다음으로 관찰과 실험의 결과만 수집할 뿐,

정작 유용한 결론은 제시하지 못하는 과학자는

‘개미’에 비유됩니다.


식량을 모으고 소비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개미처럼 그저 성실할 뿐, 보다 가치 있는 것을 고려하지는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끝으로 베이컨은 자신의 과학적 귀납법을 ‘꿀벌’에 비유합니다.꽃에서 얻은 재료를 몸속에서 변화시켜 유용한 꿀을 생산하는 꿀벌처럼 인간과 자연의 상호 작용을 통해 의미 있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과학적 귀납법이야말로 올바른 학문 탐구의 방법이라는 것이지요.


(3) 추상화 이해하기


그럼 이제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 지닌 의의를

추상화와 함께 곰곰이 되새겨 볼까요?


인류의 오랜 터전인 지구,

그리고 지구를 감싸는 거대한 손과 두루마리들.

이때 ‘두루마리들’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폭넓은

관찰과 분석을 상징합니다.


지상의 암석에서부터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천체에 이르기까지,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낱낱이 비교하며 분석했던 유일무이한 인간!

바로 서양 철학사의 거인,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두루마리들은 폭넓은 관찰과 깊이 있는 분석을

거치며 책으로 거듭났습니다. 마치 거인이 학문적

토대 위에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를 든든한 두 팔로 감싸 안은 듯합니다.


흑백으로 바뀐 지구는 고대와 중세 사회를,

거인의 팔은 고대와 중세 사회를 떠받치고 있던

목적론적 세계관을 상징하지요.


‘세상 만물의 변화는 오직 하나의 목적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목적론적 세계관은 단 하나의 절대적 존재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교리와 공통분모를 지닙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중세 신학의 기초로

자리 잡은 이래,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 서구 지성사에 미친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거인의 두 손은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양을 가로지르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범선.

범선의 항해는 이성에 바탕을 둔 과학적 접근 방식으로

지혜를 탐구하는 여정을 떠났던 근대의 시대상을 암시합니다.


근대정신은 한마디로 ‘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사고, 즉 인본주의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인류는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드넓은

세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인식의 지평선까지 넓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과 과학 기술의 진보를 맹신한

결과,여러 가지 폐단이 생겨나게 됩니다.

범선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자욱한 ‘안개’는

근대 들어 물질적 측면만을 강조한 데서 비롯된 부작용을 상징합니다.


환경오염과 인간 소외 등의 부작용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하고,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긴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지구상의 여러 대륙이 짙은 빛을 띠면서 연결되었군요.

서로 다른 문화권이 활발하게 교류하는 가운데,

과학 기술과 문명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나갑니다.


학문 역시 과거보다 한층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오늘날에는 여러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인간과 세계의 다양한 면모를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어떤 현상이나 문제의 본질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바라볼 때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법입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현미경보다 망원경이 필요하다고나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찰 대상과의 거리 조절에 탁월했던 인물입니다.


지구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

지구를 서서히 물들이는 밝고도 따스한 빛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통합적 관점을 상징합니다.


그는 자연과 인간, 물질과 정신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인간과 학문, 자연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러한 통합적 관점은 개별 문제들이 지닌 의미를

큰 틀에서 진지하게 성찰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인식의 지평선을 넓히기 위해

또 다른 신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범선.

고대와 중세를 넘어 근대로, 다시 현대로

인류의 지적 모험은 끝없이 계속됩니다.


현상에 대한 관찰을 통해 의문점을 찾아내는

것에서 출발하여,목적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통합적 관점에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줄 알았던 아리스토텔레스.그리스 철학의 대미를 장식한 그의 사상은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체계적이고 방대한 주제에 대한 연구를 우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어떤 학문을 선택하든, 우리는 그 첫걸음에서부터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거인의 발자취를 맞닥뜨리게 되지요.


이제 우리는 그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세상을 보다 멀리, 보다 넓게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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