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修己治人인가,장자의 修己安我인가

by Plato Won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의 장자 코어 북 표지 디자인
아트북 표지 디자인
Plato Won 作

'노자의 도덕경' 총 81장을

6가지 단락으로 정리해 본다.


첫째, 말할 수 있는 것은 道가 아니다.


道를 道라고 규정짓는 순간 그것은 道가

아니다.道가 이름이 없는 이유는

세상만물을 언어로 규정짓는 순간,

인간의 감각적 오류에 빠져 존재의 다양성을

벗어난다.따라서 진정 하나가 되고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이 도덕경의 핵심 사상이다.


둘째,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안다고 착각하면 상대적인 것을 상대적으로

보지 못하고 절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독선과 아집이 생겨나고 통념과 상식을 진리라고 착각하여 깨우침에 방해를 받게 된다.

따라서 가치판단이 시류에 휩쓸리게 되고,

사실판단에 왜곡이 생겨 현상적 사태들의

상호 연관성을 보지 못하게 된다.


긴 것이 있으므로 짧은 것이 있고

흰 것이 있으므로 검은 것이 있는 것이니,

성인은 無爲로 일을 처리하고

不言으로 가르친다


셋째, 소박한 삶이 바람직한 삶이다.


통나무 원목과 같이 꾸미지 말고

타고난 바탕대로 살아가는 삶,

가질 수 없는 것이나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욕심이 지나치게 앞서면

소박함을 잃게 된다.


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지족불욕 지지불태》의 자세로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다.


넷째, 바람직한 삶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삶이다.


道의 세계로 돌아가고,

갓난아기의 상태로 돌아가고,

뿌리의 세계로 복귀하고,

규정되지 않는 존재로 돌아가고,

밝음의 세계로 돌아가고,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온갖 종류의 규범과 가식적인 행위들을

버리고 단순한 생활 자체에서 행복함을

찾을 수 있어야 道에 이른다.

다섯째, 바람직한 삶은 자연스러운 삶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스스로 그러한 모습,

自然을 수 차례 언급한다.


여기서 자연이란 물리적 자연이 아니라

다른 것의 간섭이나 지배를 받지 않는,

인간의 손때가 묻기 전의 상태를 말한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道를 본받는다.

최고의 善은 '상선약수'와 같은 것이다.


여섯째, 바람직한 삶을 위해서는

삶의 세 가지 보배를 중히 여겨야 한다.


노자 제67장은

바람직한 삶을 살기 위한 세 가지 보배는

'자애, 검약, 겸허'이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거심, 거사, 거래'해야 한다고 논하고 있다.


자애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심한 행위를 제거하고,

검약하기 위해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생활을 제거하고,

겸허하기 위해 교만한 행위를 제거해야 한다.


노자 도덕경은 5000여 한자에

시적 운율의 형식을 빌려 은유로 농축된

고전이라 주석서가 넘쳐난다.


이에 율곡 이이는 '노자의 도덕경'을.

잘못 이해하면 '무위자연'을 '무위도식'으로

오해하는 憂를 범할 수 있음을 경계하고,

군자가 자신을 수양하며 세상을 다스리는

修己治人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만약 '노자의 도덕경'이

성인을 위한 修己治人의 관점이라면,

장자의 장자는

자신의 몸을 닦아 스스로를 편안히 하는

修己安我(수기안아)의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노장사상은 같은 듯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자신을 다스리는 모습은

비슷한 듯 하나 그 목적은 극명하게 갈린다.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것인지,

자신을 자유롭게 하려는 것인지.


자기 스스로를 다듬어 세상을 다스리려는

노자의 修己治人의 아음가짐,

자기 스스로를 다듬어 진정한 자유를 얻어려는

장자의 修己安我의 마음가짐.


나의 삶은

노자의 修己治人인가,장자의 修己安我인가.


매일 새벽녘 사유를 가슴에 품고 관조를 영혼에

새기는 이 성찰의 시간은 어디를 향하는 것인가.


修己治人을 달리 표현하면 修己安我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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