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道는 무심하여 형상이 없지만 그 작용은 오묘하다

인문아트 <노자와 장자> 2-1과

by Plato Won
Plato Won 作,황홀하여 말할 수 없으나 굳이 말하라면 MTB라 불러본다.굳이 형용하라면 玄妙하게 재미있다 하겠다.
Plato Won 作, 나의 애마 MTB ,산을 내달리는 붉은 랜드로버 보그


노자의 도덕경 1장 첫 구절은


"道를 道라고 규정짓는 순간 그것은 道가 아니다.

이름 지을 수 있는 것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으로 시작한다.


노자는 道를 道라고 규정지을 수 없다고

첫 장부터 강조하지만, 그는 언어의 마술사답게

5000여 한자로 道의 세계에 대해서

반어와 역설로 깊숙이 말하고 있다.


노자 도덕경 21장 구절이다.


"道는 오로지 있는 듯 없는 듯 황홀할 뿐이다.

황홀은 없는 듯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 황홀 속에 우주 만상이 있고

황홀 속에 천지만물이 들어 있다."


道는 깊고 그윽하여 그 안에 일체 생명의 씨앗이

깃들어 만물의 근원이 되고, 자연을 깊이 바라보면

천지만물은 無에서 有로, 有에서 無로 순환함을

알 수 있다.


겨울이 되면 천지는 비어 고요하지만

따스한 기운이 일어나 봄이 오면 만물이 피어난다.

밤의 고요한 적막에 만물이 사라졌다가 아침에 동이

트면 만물은 기지개를 켜고 활동을 시작한다.

이와 같이 '有와 無의 조화가 우주의 이치인 道'

라는 것이다.


노자 도덕경 6장 구절이다.


"텅 비어 있고 신묘한 道는

천지만물을 낳는데

그 작용이 무궁무진하다.

천지만물이 道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道를 의지하여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새로워지기를 그침이 없다.

이들을 움직이는 근본은 흐리멍텅하여

없는 듯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무심하여 형상이 없지만 그 작용은 오묘하다.

이를 玄妙라 한다."


"道는 생명을 산출하는 자궁의 門이라

어두운 것과 같은 이치니, 아무리 써도 다하여

없어짐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도덕경에서 말하는 道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노자 도덕경 25장 구절이다.


"나누어지지 않는 어떤 무엇이

하늘과 땅보다 먼저 있었네.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으니

무엇에 의존하지 않고 , 변하지도 않고

두루 편만하여 계속 움직이나

없어질 위험이 없다.

가히 세상의 어머니라 하겠다.

나는 그 이름을 모른다.

다만 억지로 道라고 불러본다.

구태여 형용하라면 크다고 하겠다."


노자는 말한다.


道란 인간의 모든 감각 기관과 지각 능력을

초월하므로 감각과 분별로 포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아름답고 추함을 분별하는 것도

본래 美와 추함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분별하므로 미추(美醜)가 생긴다.


그 사람의 됨됨이는 무어라 설명하거나 이름으로 온전히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사물이 본질인 道를 표현한다면

그 道는 道 자체가 아니다는 이야기를

노자는 하고 있다.


노자는 道를 모르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고,

아는 것이 오히려 모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노자의 道라는 것은 머리로 이해할 수 없고

가슴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세계라고 말한다.


노자가 말하는 道는

인간이 지닌 언어의 한계성으로 이를 특정할 수 없고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노자가 이렇듯 반어와 역설,부정하는 형식을 취해서

道를 표현하는 이유는 언어의 한계성,논리의

한계를 최대한 극복하거 위해서다.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을 말하듯

道를 어떤 특정 개념으로 규정짓는 것을 강하게

부정하므로써 道의 개념을 규정짓고 있다.


노자도덕경 제14장 구절이다.


"보아도 볼 수가 없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잡아도 잡히지 않으니

이 셋으로도 밝힐 수 없어

세 가지가 하나가 된다.

그 위라서 더 밝은 것도 아니고,

그 아래라서 더 어두운 것도 아니다.

끝없이 이어지니 무어라

이름 부를 수 없다."


노자가 말하는 道란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황홀할 뿐 이름 지을 수 없으나 道는 만물의 근본이다.


천지가 시작될 때는 소리도 모습도 없었는데

이것을 無라 한다.無는 곧 道의 본체이며,

우주의 근원이므로 완전히 없다는 無와는

구별된다.


"無는 천지의 시작이요,有는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無로 그 오묘함을,有로 그것의

드러남을 보고자 한다. 無와 有는 함께 나왔지만

이름이 다르고,모두 玄妙하다고 불린다.

현묘하고 현묘하니 모든 현묘의 문이다."


노자 도덕경 1장의 구절이다.


"천지의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은

모두 道의 잠재력이 쉴새없이 창조와 발육을

하는 일종의 표현으로 無는 道의 본체이고

有는 道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無와 有,

모두 道에서 나온 것으로 이름만 다를 뿐 같고,

우주 만물의 근원을 無라고 보고,

無를 道의 본모습이라 하였으며

자연을 깊이 바라보면 천지만물은 無에서 有로,

有에서 無로 순환함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 만물은 상대적인 것이나 찰나를 사는 인간이

유한한 지식으로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으로

편철하는 편견과 오류를 범하므로 세상의

어지러움이 시작되었다고 경고하면서 노자의

도덕경은 시작된다.


노자의 도덕경은

크게 세 부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인식의 오류에 대한 지적이다.


"道를 道로 이름 짓는 숫간 그것은 道가 아니다."

라고 시작하는 첫 구절을 통해 언어의 한계성과

인간의 유한한 지식의 오류에서 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두 번째는 가치판단의 문제에 대한 지적이다.


인식의 오류로 인해 인간은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규정 지음으로써

문제를 양상 한다는 것이다.


아름답고 추한 것. 길고 짧은 것, 크고 작은

것은 다 상대적 잣대로 보면 다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스스로 그러한 모습,

무위자연의 삶을 살라고 말한다.


인식의 오류를 바로 잡아 가치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면 세상 만물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가 된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道를 본받고,道는 자연을 본받는다.


스스로 그러한 모습,자연,

자연의 일부인 물은 최고의 선으로

'상선약수'는 삶은 곧 '무위자연'의 삶으로

道를 실천하는 삶이다.


노자는 언어의 마술사다.

도덕경 5000 글자를 통해 반어와 역설로

말할 수 없는 道를 말하며,

세상의 보편적 상식과 생각들을

여지없이 뒤집어 해석함으로써,

삶의 지혜를 선사하고 있다.


"道는 황홀하여 말할 수 없으나 만물의 근본이다.

나는 그 이름을 모른다.

다만 억지로 道라 불러본다.

굳이 형용하라면 크다 하겠다."


노자의 道란 '無爲自然'의 삶이다.


스스로 그러한 모습 自然은

극복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人爲,有)

순응하고 협력하고 조화롭게 살아가야할(無爲,無)

동반자다.


道는 우주의 근원적 실재를 가리키는

말로,노자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만 적용되는

일시적인 진리말고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변함없는 세상의 이치인 진리를 말하고 있다.


노자는 모든 시대에 항상 적용되는 진리를

상도(常道)라 했다.


이제부터 그 심오한 道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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