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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Oct 17. 2022

우정은 갑자기 샘솟지 않고 스멀스멀 잔잔히 스며든다

Plato Won 作
임효 作,柳流(버드나무 유,흐를 유),인간관계는 유유처럼

기억은 시간에 종속되지 않는다.

오래전 일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 또렷이

기억되기도 하고, 바로 앞전 일들이 흔적도

없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사람과의 인연에 대한 기억이 특히 그렇다.


인생은 우연한 만남의 연속이고,

우연은 우정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때때로는 악연으로 끝을 맺기도 한다.


우연의 만남이 담백한 기쁨을 선사하기도 하고,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우연의 만남이 인연으로 발전하든

악연으로 끝을 맺든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배려와 겸손은 우연을 늘 인연으로 이끌고

교만과 이기심은 늘 인연을 악연으로 만든다.


부득이 피할 수 없는 악연이라면

조용히 떠나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악연은 원인을 제공한 사람의 진지한 반성과

노력이 있어야 해소될 수 있으나, 그 정도 성찰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서로 악연이 만들어

지지도 않는다.


악연에는 언제나 쌍방의 교만과 아집, 독선과

이기심이 서로 대립되므로, 접점을 찾기보다는

이격을 최대한 벌려야만 충돌을 피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의 실천적 덕목으로 '情'을 꼽았다.


"우정은 이타심의 결합이고

  악연은 이기심의 충돌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우정은

친구 간의 우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 조직 내 선후배 관계, 남녀 간의 사랑

모든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칭하고 있다.


인생은 한방의 대단한 기쁨보다

잔잔하고 담백한 기쁨이 쌓여

행복에 이른다.


우연한 인연을 소중히 대하고 가꾸어 인연으로

발전시켜 우정을 나눌 때 단순하지만 그 잔잔한

기쁨이 쌓여서 삶은 대단한 기쁨에 이를 수 있다.


짧은 인생 굳이 맞지 않는 인연이라면

이리저리 따지고 파고들어 충돌하지 말고

최대한 이격을 벌려 조용히 떠나보내는

현명함이 서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이 사람 관계가

서툴러서 실수할까 봐 좋은 인연은 한꺼번에

주지 않고 나누어서 천천히 주는 법이다.


우리가 신에게 밉게만 보이지  않았다면

인생에서 좋은 인연은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좋은 인연이  예고도 없이 불쑥

우리 인생에 찾아올지  그 기대감으로 오늘 하루도

즐겁고, 문학작품도 쏟아지는 것이다.


사실 인연이 급하게 달려오면 미끄러져 깨진다.

천천히 간극을 두고 오는 것이 좋다.


인연을 급하게 재촉하지 말고

천천히 끈기를 가지고 차근차근 다가서도록

겸손과 배려심으로 공을 들여야 우정이 싹튼다.


우정은 갑자기 샘솟지 않고

스멀스멀 잔잔히 스며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유다모니아, 행복이라 하였고, 그 행복에 이르는 최우선의 덕목이   '우정'이라 했으니,

삶에서 우정 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생은 우연한 만남의 연속이다.

우연한 만남에서 흉금을 터놓고 우정을 나누는

벗이 없다면 행복에 이를 수 있겠는가.


소중한 우정을 쌓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장 이타적인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행복론이다.


지신 밖에 모르는 가장 이기적인 행동

가장 위험한 삶이고, 역설적으로 

가장 이타적행동이 궁극적으로 소중한

우정을 쌓아 행복에 이르는 가장 이기적인

삶의  방식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행복론이 가슴에 와닿는가.


우정을 쌓아 단순한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 것인지,

대단한 기쁨을 누릴 것이라는 착각으로

악연을 만들어 충돌하는 삶을 살 것인지는

의외로  간단하다.

이타심의 결합이냐, 이기심의 충돌이냐

둘 중 하나만 결정하면 된다.


"가장 이타적인 삶이 가정 이기적인 삶이다"


인생 반고비를 지나  행복을 더하려면

용기를 내서 인연을 만들고 겸손과 배려를

습관화해 이타적인 삶을 살아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와닿는 새벽녘 사유의 시간이다.



Plato Won


2022년 10월 17일 새벽녘 사유는

'행복의 실천적 덕목, 友情에 대하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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