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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응제왕,천하를 다스리는 황제와 임금의 자격

by Plato Won
Plato Won 作

내편의 마지막 주제인 「응제왕(應帝王)」은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와 임금의 자격을 논한다. 성인 같은 완전한 자질을 갖추고 이를 자연스럽고 소박하게 드러낼 때, 진정한 의미의 이상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지도자는 권모술수는 물론이고 법으로 다스리는 법치, 심지어 인의를 숭상하는 덕치마저도 배격한다.


장자가 성군의 대명사인 순임금보다 태씨*(용어 해설에서 설명)를 진정한 지도자로 꼽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정치의 기준으로 삼은 순임금과 달리, 태씨는 잠잘 때는 고요하고 깨어 있을 때는 덤덤하며, 남이 자기를 말이라 부르면 말이라 여기고, 소라 부르면 소라 여겼다. 이처럼 옳고 그름의 경지를 벗어났기에 장자는 그를 ‘지혜가 믿음직하고 덕은 참되다’고 극찬한다. 인위를 넘어 만물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통찰로 백성들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는 점에서, 장자의 지도자상은 무위의 정치를 구현한 노자의 지도자상과 닮은 데가 있다. 다스리지 않으면서 다스리는 것이 제왕의 자격인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 자체가 곧 유위(有爲)라는 장자의 생각은 혼돈에 대한 예찬으로 이어진다. 그는 혼돈의 우화를 통해 인간의 얄팍한 지식과 인위를 호되게 비판한다.


남쪽 바다의 임금을 ‘숙’, 북쪽 바다의 임금을 ‘홀’, 그 중앙의 임금을 ‘혼돈’이라 하였다. 어느 날 숙과 홀이 혼돈의 땅에서 만나게 되었다. 혼돈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은 두 사람은 은혜를 갚을 방법을 의논했다.


“인간은 7개의 구멍이 있어서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쉬는데 혼돈은 그렇지 않소. 혼돈에게 구멍을 뚫어 주는 게 좋겠소.”

그래서 하루에 한 개씩 구멍을 뚫어 주었는데, 7일째 되던 날 혼돈이 죽고 말았다.

여기서 남쪽바다 임금인 숙은 ‘밝음’을, 북쪽 바다 임금인 홀은 ‘어둠’을 상징한다. 이들은 각각 ‘갑자기 나타남’과 ‘갑자기 사라짐’, 즉 만물의 생성과 소멸 또는 유와 무를 상징하기도 한다.


혼돈은 영어로는 카오스(chaos)로, 질서가 생기기 이전의 무질서한 상태를 가리킨다. 하지만 노장 사상에서 혼돈은 분별과 경계가 생기기 이전의 상태로 ‘단순함, 하나’로 해석된다.


“분화되지 않은 완전한 무엇이 하늘과 땅보다 먼저 존재한다.”라는 『도덕경』 25장의 구절에서 ‘무엇’은 도의 궁극적 차원인 무극(無極)을 뜻한다. 그래서 혼돈이 ‘모든 것의 근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상태’라는 긍정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7개의 구멍, 즉 감각 기관들을 통해 받아들이는 자극은 사물과 현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그것이 곧 존재의 참모습은 아니다. 따라서 혼돈에 구멍을 뚫는 일은 ‘스스로 그러한’ 상태를 ‘천지만물을 분별하는’ 상태로 억지로 바꾸는 인위에 해당한다. 장자는 혼돈의 죽음을 통해 문명으로 대표되는 인위의 폐단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혼돈을 없애면 질서가 잡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근거, 모든 것의 근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무와 유, 혼돈을 의인화한 이 우화는 『장자』 내편 전체를 끝맺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존재의 변신과 자유를 상징하는 ‘붕의 비상’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인위를 비판한 ‘혼돈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명예의 표적이 되지 말고, 꾀의 창고가 되지 말며,

일의 책임자가 되지 말고, 지혜의 주인이 되지 말라.

무궁을 체현하고 ‘나’가 없는 경지에서 노닐라.

하늘에서 받은 본성을 다할 뿐,

앎을 나타내지 말고 비어 있을 뿐이다.”


인간의 판단이 개입하기 이전, 분별이 없는 혼돈의 상태야말로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이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고, 떠나가더라도 그 자취를 남기지 않는 거울처럼 맑은 지인(至人)의 마음 상태이기도 하다.


앎에 집착하지도, 욕망에 끌려 다니지도 않는 무지(無知)와 무욕(無慾)의 상태에서 인간은 비로소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면서 왕처럼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장자의 철학은 한마디로 무위가 최고의 유위라는 무위자연의 철학이자,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본성에 따라 비추는 거울 같은 철학, 소박함으로 천하를 바라보는 무심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장자의 철학은 화려하지도 요란스럽지도 않다.

다스리지 않으므로 다스리는 자연스러고 소박함,

무위로 유위하는 지극히 그윽한 도와 덕이다.


장자의 철학은 인간의 인식의 한계,편견과 싱식을 뛰어넘는 생각열기로 인간의 생각의 생각을

초월하는 철학 위에 그 무엇의 철학이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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