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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Plato Won
Feb 10. 2023
2-3,상대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본 道, 추상화 해석
노자와 장자 시리즈
노자와 장자 추상화
노자의 道德經과 장자의 莊子
2권 3과 <추상화 읽기> 스크립트
상대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본 도
(1) 섞여서 하나를 이루는 도
노자는 『도덕경』 14장에서
‘모양도 소리도 형체도 없는 것이
본래 하나로 섞여 끝없이 이어진다‘고 노래합니다.
이때 ‘섞이다’라는 뜻의 ‘혼(混)’ 자는
무와 유가 한데 섞여 있어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를
나타냅니다.
‘하나’에 해당하는 ‘일(一)’ 자는
무와 유처럼 상반되는 두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일컫지요.
끝없이 이어지는 도의 속성은
‘승승혜불가명(繩繩兮不可名)’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납니다.
‘승(繩)’은 실이나 삼, 종이 등을
가늘게 비비거나 꼬아서 만든 노끈을 뜻합니다.
한 가닥만으로는 온전한 새끼줄을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상반되는 두 요소가 조화를 이루면서 공존할 때
이 세상이 제대로 굴러 갈 수 있다는 의미이지요.
(2) 모든 가치 기준은 상대적이다
설익은 지식인들이 사상과 이념에 치우쳐서
세상을 어지럽히던 춘추 시대 말기.
노자는 ‘보이는 대로 섣불리 판단하고 행동하려는
인식의 오류‘가 그 원인이라 진단합니다.
그에 따르면, 미(美)와 추(醜), 선(善)과 악(惡)을
비롯한
모든 개념과 가치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미와 추,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해 주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
입니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 따른 가치의 구분은
자연의 세계, 도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상대적이라는 말은 한마디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즉 가변적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열린 태도로
주위의 사물과 현상을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자는 상반되는 두 요소가
상대편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변화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 보았습니다.
그리고 도라는 것은 겉으로는 부드럽고 약해 보여도,
세상 무엇보다 강하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노자의 역설은
미와 추, 선과 악, 옳고 그름, 삶과 죽음이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날카로운 통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3) 장자의 상대주의적 시각
개념과 가치에 대한 상대주의적 시각은
『장자』 ‘내편’의 「제물론」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장과 여희를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하지.그러나 그녀들을 보면 물고기는 물속 깊이
숨기 바쁘고,새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사슴은
재빨리 도망간다네.이들 중에서 어느 쪽이 천하의
미를 안다고 하겠는가.“
모장과 여희는 중국인들이 절세미인으로 손꼽던
인물입니다.여기서 생겨난 ‘침어낙안(沈魚落雁)’이라는 고사성어는
물고기도 물속에 숨게 만들고
기러기도 땅에 떨어지게 할 만큼
아름다운 미인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미인이라도 동물에게는
자신을 잡아가는 인간,
다시 말해 공포의 대상에 지나지 않지요.
이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기준은 동물의
기준과 다릅니다.
게다가 인간의 기준 역시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노자와 마찬가지로 장자 역시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려 들지 말라고
조언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4) 추상화 이해하기
나란히 세워진 두 개의 판,
그리고 층층이 쌓인 판 여러 개가 보입니다.
각각의 판을 어떻게 배열하느냐에 따라
상하(上下), 좌우(左右) 관계가 생겨납니다.
인간은 둘만 모여도 힘의 우위를 판가름함으로써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양한 성질을 지닌 사물과 현상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고
이분법으로 구분하려 들기도 하지요.
인간이 범하는 가치 판단의 오류는 여기서 비롯됩니다.
각각의 판들이 서로 긴밀하게 엮여서
하나의 형체가 만들어졌습니다.
가로세로로 결합된 판들은
어디가 위인지, 어디가 아래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계단처럼 보입니다.
서로 연결되어 끝없이 이어져 있는 사다리로 보이기도 하지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형상이
황금빛으로 서서히 빛납니다.
마치 서로 다른 두 줄을 하나로 꼬아 놓은 새끼줄을 연상시키기도 하네요.
이는 ‘세상만물이 서로 공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유무상생의 원리가 자연의 질서이자 세상의 이치임을 상징합니다.
사물은 양극단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그러니 인위적인 잣대로 서로 구분 짓고
둘 중 하나를 기준으로 세상을 평가한다면,
세계의 참모습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제 인간의 양손이 사라지면서
위아래로 새로운 차원의 문이 열립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새끼줄의 형상이
전보다 훨씬 둥글둥글한 곡선에 가까워지면서
위아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려는 것처럼 보이네요.
노자는 영원불변의 진리인 ‘도’가
구부러진 곡선에 가깝다고 보았습니다.
황금빛 새끼줄을 둘러싼 검푸른 빛깔들에서
사유하는 인간의 두상이 보이는 듯합니다.
노자가 말하는 도의 속성은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과도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습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상대를 배척하기보다는
너그럽게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강자와 약자, 고난과 행복도 언제든 역전될 수 있기에
사물과 현상을 유연한 태도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의 문제점을 꿰뚫어 보는 진지한 성찰을 통해
인간은 보다 나은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고,
이 세상은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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