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징한 앎에 이르는 길

by Plato Won
Plato Won 作,MTB로 새벽 한강을 어슬렁거리다보면 여명의 빛을 맞이하는 행운이 따른다.앎에 이르는 길도 이와 같다

진정한 앎에 이르는 길

(노자와 장자 vs.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에 이데아를 주창한

플라톤이 있었다면, 그즈음 중국에서는 도를 노래한

노자가 있었다.


그즈음 그리스에서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후학들과 숲속을 거닐며 철학하고 관조하는 삶의 행복을 누릴 무렵,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즈음 중국에서

는 노자 사상을 독창적으로 계승한 장자가 한가롭게

노닐며 살아가는 소요유의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1. 지성의 힘으로 이데아 세계를 본 플라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무지에서

지혜로 나아가는 것, 이성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앎’을 목적으로 한다.


플라톤은 변화와 운동이 존재하는 현실계 너머에

영원불변인 이데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이원론을

펼쳤다. 그는 참다운 지식이란 육체의 눈이 아니라

지성의 힘으로 볼 수 있는 진리의 세계인 이데아계에

있다고 말한다.


2. 경험과 관찰로 현실세계를 바라본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이성을 강조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인간 고유의 기능인 이성을

최대한 발휘해야 고유한 목적, 즉 행복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이 이데아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사물의 본질은 현실 세계의 사물 안에 존재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지식 습득에서 경험과 관찰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현실 세계의 운동과 변화의 원리를 탐구하는

자연 과학을 중시한다.


3. 진정한 앎은 밝은 이치라 여겼던 노자와 장자


노자와 장자는 사물을 분별하는 앎, 즉 분별지가

세상의 차별과 갈등, 다툼을 낳는 근본 요인이라 보았다. 그래서 세속적인 학문과 욕망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 얻는 도를 ‘밝은 이치’에 비유했다.


4. 참된 앎을 하늘의 도로 본 노자와

하늘을 알고 사람을 알아야 참된 앎에 이른다는

장자


“천도(天道)는 활시위를 끌어당기는 것과 같다.

높은 곳은 눌러 주고 낮은 데는 올려 주며, 남는 곳은

덜어주고 모자란 데는 보태 준다.”


노자는 참된 앎을 만물을 고르게 하는 하늘의 도를

아는 것이라 보았다.


“하늘의 작용을 알고 사람이 하는 일을 알면, 지혜나

지식의 최고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장자는 무위와 인위의 대립을 넘어, 하늘의

뜻에 사람이 하는 일까지 두루 알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유교는 물론, 현실 도피적이라고 비판받던 기존

도가의 한계까지 극복하는 방향이었다. 현실을 살아가다 보면 하늘의 일과 사람의 일은 늘 맞물려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늘과 인간의 조화는 곧 무위와 인위의

통일을 의미한다.


5. 참된 앎의 힘으로 세계의 본질에 다가서라


플라톤이 말한 좋음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사고, 노자와 장자의 밝은 이치. 이들의

공통점은 참된 앎의 힘으로 세계의 본질에 다가서는

데 있다.


진리와 도는 통찰과 직관으로 보이는 것이니,

세속적 욕망이나 이기심이 개입되면 사물의 분별이

혼탁해지고 스스로도 위험에 빠지고 만다.


6. 참된 앎과 지식인의 삶


플라톤과 이리스토텔레스 철학을 통해

이성을 통한 진리의 추구가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학문의 길을 열어 준다는 것을 깨우쳤다면,


노자와 장자의 철학을 통해서는

내면의 수양을 통해 도를 깨닫는 것은 끊임없이

새로 거듭나는 삶으로 인도해 준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다.


서양철학의 시초인 플라톤이든 아리스토텔레스든,

공자와 더불어 동양철학의 한 축을 세운 노자와

장자든 참된 앎이란 ‘나’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드넓은 지혜의 바다로 나아가 인식의 지평선을

넓히는 것이고, 그래야만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을

있다고 우리에게 말을 건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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