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은 직관으로부터 비롯된다

by Plato Won
Plato Won 作,삶의 절정은 벚꽃이 피고지는 것만큼이나 짧다.루틴이 지루할 틈이 없이 창조적이어야 한다.직관을 통해서만 기능한 일이다.

인간은 즉흥적이었다 이성적으로 교육되고

이것이 지식과 경륜이 숙성되면 다시 즉흥적인

사람으로 변화한다. 큰 지식인일수록 더 그렇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직관적이 되었다"라고

표현한다.


직관적인 판단을 하려면 내가 중심에 서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주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사물을 판단할 때 지식인은 자신의 이성적

틀속에 대상을 가두어서 판단한다. 인식의 틀이

이성적 사고인 한 그 판단은 너나 나나 그 지식인

이나 도찐개찐이다.


"지성은 현상의 지식에 제한되어 있음에 비해서

직관은 실재에 관한 지식을 제공한다."


삶의 철학자라 불리는 앙리 루이 베르그송의 말이다.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직관'이란 공감이다.

사랑하는 연인끼리 느끼는 서로에 대한 공감 같은

그런 것을 베르그송은 직관이라고 말한다.


지성적 사고는 통계적이고 이성적이며,

형식적이고 논리적 추론적 합리적 사고를 말한다.

베르그송은 그러한 지성적 사고가 생명의

참다운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정지된 틀로 만들어버린다고 지적한다.


이를 베르그송은 '지성의 환상'이라고 명명하며

실용적 지성이 아니라, 내면에 은폐된 직관의 힘을

되살려 창조적 직관으로 나아갈 것을 주문한다.

그래야만 합리적 이성주의 저 너머에 지성으로도

보이지 않고 오직 직관으로만 볼 수 있는 사물

그대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이 진화해 가는 앞쪽에는 미래의 문이 크게

열려 있다."


철학을 인간의 삶의 철학으로 이해한

베르그송에게 삶이란 직관적인 시선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지속적이고 창조적 과정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삶의 도약'에 의해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고 세분화된다고 보았다.


베르그송에게 이성적 합리주의는 추상적이고

통계적 방법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영혼을 지닌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단지 삶을 밖에서

관찰하고 분석하는데만 그치는 도구일 뿐이다.


즉흥적이었던 어린 동심은 어느덧 사회적 교육을

받으면서 이성적 성인으로 성장해 나간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제도적 틀을 익히고, 지식을

차곡차곡 채우고, 경험을 쌓고, 그렇게 수동적

지식인이 되었으나 그 지식이 찐한 사유와 치열한

질문을 품지 못하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그 지식은

고정관념과 편견과 아집의 단단한 돌덩이가 되어

모든 사물을 자신의 이성적 틀속에 가두어버리는

창살이 되어 버린다.


직관은 이성과 지성이 묵직한 사유와 질문을

충분히 숙성시킬 때 불현듯 툭 튀어나오는 촉이다.


예술가가 창작활동을 할 때, 이유 없이 어떤 연인에게

감정이 실릴 때, 경이로운 자연을 보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때, 예술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릴 때,

기차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기차를 마다하지 않고 지신도 모르게 뛰어드는

행동을 감행 할 때 우리는 직관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직관은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숭고미다.

그 숭고미가 인간의 미래의 문을 크게 열어젖힌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즉흥적이었다 이성적이 되어

직관적으로 되돌아간다. 큰 지식인일수록 더 그렇다.


이성적인 사람들끼리는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자기 자리가 보존되지만, 직관적인 사람은 경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면 주변에 그런 직관을 지닌

사람도 없거니와, 내가 보는 세상과 타인이 보는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직관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지식이 없는 직관은 허무하고

직관이 없는 지식은 맹목적이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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