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실존은 곧 염려다.

by Plato Won
Plato Won 作,느릅나무,나무 가지가 앙상하다고 너무 염려할 필요없다.피었다 지고 다시 느릇느릇 피어나는 것이 느릅나무의 생명력이니~~~
인간의 염려는 아침 안개와 같아, 중천에 따오르는 태양에 대한 호기심으로 곧 사라진다.그러나 밤이 오면 다시 방황하며 다음날 아침 다시 염려의 아침 안개를 피워올린다.


그리스 신화에 인간을 흙으로 빚어만든

'쿠라'라는 신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강가에서 점토로 흙덩어리 형상을

만들어놓고 지나가던 주피터 신에게 이 형상에

영혼을 불어넣어 달라고 부탁해서 사람을

만들었다."


사람을 빚어만든 장본인이 누구인가

바로 염려의 신 쿠라 아니던가.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처럼 인간은 살아가면서

늘 염려의 신 쿠라의 지배를 받으니 불안을

달고 사는 존재인 것은 숙명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인간의 실존은 곧 염려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이데거는 인간이 염려에서 벗어나는

방책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아 미래를 기획할 때

인간은 비로소 염려에서 벗어나 주체적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권하고 있다.


하이데거의 권고를 따르자면

인간은 학습을 평생 숙명처럼 달고 살아가는

존재이어야 한다.


인간의 삶은 영원히 방황하는 학생이 되어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신세인 것이다.

이왕 평생을 공부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숙명

이라면 부귀영달을 위한 공부 말고, 지극히

호기심이 발동하는 그곳을 탐구하는 공부를

하는 학생이고 싶다.


때로는 진리를 탐구하는 러셀처럼,

때로는 관조하는 로뎅처럼,

때로는 사유하고 질문하는 소크라테스처럼

때로는 호기심 가득한 돈키호테처럼


인간의 삶은 염려의 시계추를 달고

호기심과 지루함 사이를 왔다 갔다 방황하는

영원히 미성숙된 철부지 학생 신세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영혼을 불어넣은 주피터 신이

아차하고 호기심까지 딸려 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


"저 호기심으로 인간이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적당한 호기심 끝에

지루함이 생겨나서 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장치를 해놓으며 주피터는 비로소 안심한다.


실존 자체가 불안한 인간은

호기심으로 불안을 잊어버리고 다시 지루함으로

그 호기심을 잃어버리며 방황하고 방황한다.


그래서 소수의 인간들은

파고파도 영원히 파헤쳐질 수 없는 진리의 탐구에

몰두하는 것이고 그들 중 일부의 지적탐구의 성과로

인류는 보다 진보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누구는 진리 탐구로,

또 누구는 노다지를 찾아 헤매며,

유한의 시간성을 짹각짹각 보내는 것이다.


인간의 실존이 곧 염려이고, 방황이라면

나는 그 방황을 스위스 산자락에 올라 피리 불며

자연과 벗 삼아 사유하고 질문하며

방황하고 싶다.


삶의 동력은 호기심으로 출발하고

삶의 완성은 그 호기심이 쉬이 지쳐 지루함의

침공을 받지 않도록 잘 조절하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염려는 아침 안개처럼 피었다

중천에 떠오르는 희망의 태양빛으로 이내 물러난다.

다시 밤이 찾아오면 방황하다 아침을 다시

맞이하며 염려의 안개에 휩싸인다.


인간의 실존은 곧 염려이므로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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