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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의 반대편에 진리가,뉴턴 계몽시대의 문을 열다

8, 오래된 고정관념,지구의 우주의 중심이다.

by Plato Won
Plato Won 作,세상을 뒤집어본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때로는 인류가 받아들인 진리의 반대편에 진리가 존재한다.언제나 어디서나 인간의 고정관념과 편견은 소란을 떨므로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고,

계몽주의 시대의 문을 연 뉴턴.


과연 지구는 우주의 중심인가?


고대 시대부터 옛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돈다고 생각하고 살았다.뿐만 아니라 수성,금성,

화성,목성,토성도 지구 둘레를 돈다고 생각했다.

마치 달이 지구 둘레를 도는 것처럼.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천제가 회전한다고

생각하는 것을,하늘 天,움직일 動,천동설이라 한다.


천동설을 주장한 대표적 철학자는 플라톤으로,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그의 제자 아리스토텔스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플라톤의 천동설을 부정하는 철학자가

있었으니,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타르코스와

헤라클레이데스였다.


그들은 플라톤의 주장를 철지히 부정하고,

우주의 중심은 태양으로,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땅 지(地),움직일 동(動),지동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들의 주장을 욕하고 저주하며

이단자 취급을 하였고,당시 천문학자들은 지구가

중심인 우주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우렸다.


마침내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마게스트>

라는 책을 통해 천동설을 논리적으로 완성한다.


알마게스트는 '천동설의 성경'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천동설을 지지하면서 나름대로 타당한 근거라고

제시한 몇가지 사례는 이렇다.


지구는 고귀하므로 운동을 해선 안 되는데 그 이유로

지구가 회전하면 동물,식물,사람,집,돌덩이가 날아가기

때문이라고 했다.뿐만 아니라 회전하는 힘을 이기지

못해 지구도 끝내 산산조각 난다고 설명했다.


당시의 과학으로는 중력을 생각할 수 없었고

회전하면서 밖으로 튕겨나가는 원심력이 생겨나면

안으로 끌어당기는 구심력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당시의 과학으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런 주장을

반박하지 못했고,그의 주장은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천 년이상 진리처럼 세상은 받아들었다.


바다에 떠다니는 배가 지평선 넘어로 멀리가면서

사라지는 현상만으로도 지구가 평평하지 않고 둥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막대 그림자의 크기가 지구

위치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진다는 에라스토테네의

주장에만 귀 기우려도 천동설을 의심할만 한데,

철저히 이런 자연현상에는 눈과 귀를 닫았던 것이다.


그래서 늘 인간의 고정관념과 편견은 진리의

저편에서 서서 진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생각의

문에 대못질을 하곤 한다.


그러다 16~17세기에 이르러 과학분야가 진일보함에

따라 진리와도 같았던 천동설은 벽에 부딪히게 된다.


과학분야에서 처음으로 불을 지핀 사람은 폴란드

성직장였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다.


코페르니쿠스는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신은 우주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았을 거라 굳게 믿었는데,그런

관점에서 보면 천동설은 너무 복잡했던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저서 <천구들의 회전에 관하여>

에서,지동설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수성,금성,화성처럼 태양 둘레를 도는 하나의

행성일 뿐이다."


코페르니그스의 주장을 따르게 되면,

지구는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인간도 더 이상

최고의 귀한 존재가 아닌 것이 된다.

이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무너진 셈이다.


그러나 당시의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불손한 생각으로 치부되어다.종교 지도자들

을 중심으로 그의 지동설이 전파되는 것을 철저히

막고 나서며 지동설을 믿고 따르는 학자들을 엄벌에

쳐했다.


'천동설은 틀린 이론이고 지동설이 바른 이론이다."

라는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이탈리아 신부이자

천문학자였던 부르노는 화형을 당하기까지 했다.


어느날 케플라의 스승 브라헤도 밤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면서 유난히 밝은 별을 지켜보며

하루 이틀이 지나면 별이 어두워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별이 어두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밝아지는 것을

관측하게 된다.


이것은 고대 아리스토텔레스가 천동절을

주장하면서 달보다 높은 곳에 떠 있는 천체는 변하지

않다는다는 주장과는 반대되는 현상이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이후 천동설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사람은

갈릴레이 갈릴레오였다.갈릴레이는 자신이 최초로

만든 천체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한 최초의 과학자다.


갈릴레이가 천체망원경으로 관찰한 우주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우주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고 별도

셀수 없을만큼 많았으며 목성 둘레를 회전하는

위성(달과 같이 행성 주위를 도는 별)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돈다는 천동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결정적 증거가 밝혀진 것이다.


갈릴레이는 이런 방법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을 지지하고 과학혁명을 이끌었다.


하지만 여전히 기독교 지도자들은 갈릴레이를

이단자로 몰아 종교재판에 세우면서까지

지동설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진리를 영원히 가두어 둘 수는 없었다.


이제 갈릴레이의 과학혁명을 이어받은 뉴턴은

천동설의 마지막 기둥뿌리를 수학적 증명을 통해

밝혀냄으로써 천동설은 종지부를 찍고 마침내

역사의 한 페이지에 묻히게 된다.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천동설이 틀린

이론이라는 것을 간단명료하게 기술하고 있다.


"다섯 개의 행성들인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의

궤도가 모두 태양을 둘러싸고 돈다.이것은 천체의

궤도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턴은 지동설이 옳다는 것을 이렇게 역설적으로

주장한 것이다.


당시의 과학기술로는 토성 너머의 행성은 관측할 수

없었으므로 뉴턴의 프린키피아에서는 천왕성,해왕성

은 언급되지 않았다.


뉴턴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케플러의 제 2법칙인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을

이용해서 태양계의 모든 천체들에게서 케플러의

법칙이 공통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내며 지동설의 주장을 더욱 확고히 한다.


또한 구심력과 만유인력을 이용해서

천동설의 잘못과 지동설의 옳음을 설명한다.


뉴턴은 태양계의 행성들의 구심력을 계산하고

그 힘을 비교해 보았더니,태양의 구심력이 지구를

포함한 모든 행성들의 구심력을 다 더해도

천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것은 질량차이 때문이다.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의

질량을 다 더해도 태양 질량의 천 분의 일도

안 되므로, 태양계 행성들은 서로를 잡아 당기지만

당연히 질량이 천 배이상 많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게 된다는 것을 밝혀낸다.


뉴턴의 프린키피아에서 이렇게 단정짓는다.


"태양계의 천재들은 태양 쪽으로 떨어져야 한다.

물론 지구도 예외는 아니다."


구심력은 끌어당기는 힘,즉 중력이고,

떨어진다는 의미와 같다.구심력을 받아서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원운동을 하게 된다.


결국,태양계의 천체들은 필연적으로 태양의 절대

무게인 질량으로 인해 태양 둘레를 돌 수밖에 없다.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이런 말로

천동설과 지동설의 논쟁에 대해 마무리를 짓는다.


"태양이 지구를 돌고,다른 행성들도 그렇다면

지구는 엄청난 힘으로 그들을 끌어당겨야 한다.

그러나 지구에선 그런 힘을 감지하기 어렵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과학적인 발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뉴턴 역학은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볼테르 등에 의해 유럽 대륙에도 번역되어

소개가 된다.


당시 프랑스 궁정의 전제정치에 환멸을 느끼던

볼테르는 영국으로 추방되어 있는 동안 그곳에서 보고 배웠던 것들에 감동해서 프랑스 국민들에게 카톨릭

교회의 문제, 영국의 정치 체제 장점, 셰익스피어의

자연스럽고 강렬한 문학, 베이컨의 실험 방법,

뉴턴의 역학 등을 소개한다.


그의 소개로 프랑스 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수학의 발전은 다시 뉴턴 연구 결과가 사실

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이런 인식의 확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신이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또 예측 할 수 있으며, 통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생각을 했던 뉴턴 신봉자들이 낳게 된

사상적인 조류를 계몽주의 사상이라고 한다.


계몽의 핵심은 인간의 이성이 주체가 되어서

사고의 자율적 권한을 누리고, 신이 아닌 사람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이었다.


이성은 객관적 대상을 탐구하며 지식을 획득함으로,

무지에서 비롯된 대상들의 신비함 또는 공포 따위를

없애게 된다. 이로서 지식은 대상을 지배할 수 있게

되는 힘을 얻게 된다.


뉴턴에서 비롯된 새로운 과학적 방법으로

자연 세계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이해 할 수 있다는 믿음들이 유럽 대륙 전역에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계몽주의자들은 뉴턴 과학 혁명을 사회 과학과 인문

과학으로 발전 시키고자 하였고, 이 노력들이 모여서

결국 18세기말 인류 역사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

두 가지 사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국독립전쟁(1775~1783)과 프랑스 혁명(1789~1799)이 바로 그것이다.


기나긴 인류 역사상 신과 신을 대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왕과 사제 세력들에 대해, 왕권 교체나

종교 개혁 따위가 아닌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할 수

있게 된 사상적인 배경에는 평생을 신학 공부에 바친

신학자이자 영국의 앤 여왕으로부터 작위까지 받은

뉴턴의 공이 지대했음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라는 인간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종지부를 찍고,마침내 인류는 신이 의지가

아닌 자신들의 의지로 세상을 바라보는 계몽의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인간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그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

지금까지 인간이 이해한 사실일 뿐이다.


인간의 고정관념과 편견의 저편에 진리는 숨어 있다.


세상을 뒤집어본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인류가 받아들인 진리의 반대편에 진리가

존재하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나 인간의 고정관념과 편견은

사실과 진리 앞에서 소란을 떨며 시끄럽게 하므로.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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