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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카멜레온이고, 인문고전은 유기농 채식이다
by
Plato Won
Dec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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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 Won 作,화이트 메리 크리스마스
언어는 카멜레온이다.
따라서 언어에 갇히면 생각의 감옥에 갇힌다.
카멜레온은 주변 환경에 따라 피부색을
바꿀 수 있는데, 변하는 색은 도마뱀의 심리적
표현을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다.
빛의 노출과 주위 온도에 반응하여 색이 변하고,
색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우리가 뱉어내는 언어도 카멜레온과 같아
,
언어가 가진 사전적 의미대로만 받아들이면
의미전달이 왜곡되어 엉뚱한 오해와 오판을
낳게 된다.
그래서 언어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들어 올려 낮은 포복으로 그 밑으로
파고
들어가
그 언어를 뱉어낸 작가의 의도를
사유하고 질문해야 오롯이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언어는 겉과 속이 상황에 따라 달라,
매번 그 모습을 달리하는 카멜레온이기 때문이다.
인문고전이 어려운 이유는
그 언어 속에 은유와 비유, 도치가 넘나들어
그 속을 은밀히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림이 있고,
그래서 읽고 또 읽고 평생을 읽어도
새롭게 다가온다.
플라톤 국가론, 마키아밸리 군주론,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루소 사회 계약론과 에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노자와 장자, 뉴턴의
프린키피아, 다윈의 종의 기원,
칼 막스 자본론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
같은
인문고전은 평생을 곁에 두고 읽고 또 읽고
사유하고 질문해야 하는 책들이다.
인간은 생각의 한계로, 우리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시련을 눈으로 볼 수 없다.
우리의 미래를 밝혀줄 희망인자도
눈으로 볼 수 없다.
물질의 원자처럼 너무 작은 것도 볼 수 없고,
광활한 우주처럼 너무 큰 것도 인간의 인식의
한계로 볼 수 없다.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생각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것,
인간의 주변을 둘러싼
너무 작거나 너무 큰 것들이다.
인문고전을 통해 깊숙이 사유하고
끈질기게 질문하는 것을 습관화하면,
티클만큼 작은 것도 볼 수 있고,
우주만큼 큰 것도 볼 수 있고,
내면의 주머니 속에 꽁꽁 숨어있는
인간의 마음도 볼 수 있고,
희미한 안갯속에 갇혀 있는 미래도 볼 수 있다.
사유하고 질문하는데 후한 '나'는
현실 세계의 '너머'의 '저 너머'에 있고,
사유하고 질문하는 것에 인색한 '나'는
현실 세계의 '너머'를 지나지 못한 '여기'에
머물러 있게 된다.
'너머 전(前)의 나'와
'너머 후(後)의 나'는
같은 듯 전혀 다른 사람이다.
인문고전을 깊숙이 독서하는 이유는
한가하게 '인생을 왜 사는지'.'행복이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머 전의 나'를 '너머 후의 저곳'으로
내보내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카멜레온 피부색에 숨어 있는 언어를 들어 올려
제대로 파헤쳐야 한다.
언어는 카멜레온이고
,
인문고전은 평생 곁에 두고 음미하는
유기농 채식이다.
극단의 은유적 표현
"내 마음이 알지?"
"아이고 두(頭)야,내가 당신 마음을
어찌 알겠냐고 ^^ "
이 말에는 만 가지 함의가 담겨 있다.
인문고전이 그렇다.
Plato Won
○ 화이트 메리 크리스마스,
구독자님 모두
건강,행복이라는 산타 선물
마
음
바구니에 듬뿍 담아 가셔요.^^
keyword
카멜레온
인문고전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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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 Won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지앤비패럴랙스교육
직업
CEO
글은 작가에 의해 쓰여지지만 그 글을 사유하고 질문하는 누군가에 의해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지식이 범생이의 모범답안지에 기여하기보다는 야성적 충동가의 혁신도구이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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