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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다윈의 시대,다윈의 고민, 창조론 대 진화론

by Plato Won
Plato Won 作,세상이 몰라던 종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진리가 다윈의 사유와 관찰에 의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집필하고도 발표하기까지

20여 년의 시간을 고민했다. 그 이유는 바로 당시

모든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기독교 교리

때문이었다.


실제로 책이 출간되자 종교계는 물론 과학자,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다윈이 살았던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독교

교리에 따라 ‘창조론’을 믿었다. 그러나 이런 시대적

분위기는 18세기 후반부터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먼저 창조론자들이 극복해야 할 쟁점은 지구의

나이였다. 성경의 가르침대로라면 지구의 나이는 6,000년 정도로 추정되나 지질학자들이 발굴한

화석에 따르면 지구의 나이는 6,000년보다 훨씬 더

많았다.


또한 여러 개의 암석층에서 다양하게 발견되는

화석은 하느님이 단 한 번에 생명을 만들었다는

창조론과도 어긋났다.


그러나 당시의 기술로는 지구의 나이를 정확하게

측정할 도구가 없었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이 성경을

반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유럽의

지질학은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돈이

될 만한 광물을 채취하던 사람들이 땅 속에서 오래된

화석들을 자주 발견했는데,

이는 단순히 창조론으로 설명하기에는 그 종류와

양이 방대해 모두의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지질학자들의 화석 연구는 본격적으로 창조론에

위배되는 증거들을 대거 보여주기 시작한다. 오래된

지층에서 생물체의 화석이 차례대로 나타나면서 지구의 나이는 물론 어떻게 생명체가 변화하였는지 추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오래된 지층에서 발견되던 생물 화석이 갑자기

보이지 않거나, 오래된 화석에서 볼 수 없었던 생물이 나타나는 신기한 현상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런 사료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이 생물체의 흔적을

찾아가면서 진화론의 증거들은 하나둘 수면위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다윈 역시 갈라파고스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연구하며 인간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된

것이라는 이론에 확신을 가지게 된다.


다윈의 진화론 연구에서 갈라파고스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이유는 핀치류 새의 표본을 연구하며, 같은 종일지라도 서식지에 따라 제각기 다른 형태의

생물이 살고 있다는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하며 약 4주 동안 머문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작은 새들을 채집해 표본으로

만들어 영국으로 가져오는데, 그 작은 새들 중 십여

마리가 모두 핀치류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새들의 부리 모양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어떤 녀석은 짧고 두터운 부리가 있어 씨를 깨서

먹기에 용이했고, 또 어떤 녀석은 날카롭고 뾰족한

부리가 있어 곤충을 잡기에 용이했다.


이 새들이 모두 한 종류에 속하지만, 섬마다 서로

다른 형태로 살고 있다는 사실은 당시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특히나 갈라파고스 제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대륙

과는 교류가 없었다는 점에서 진화론의 근거나

증거로 삼기 충분했다.


이 일을 계기로 다윈은 ‘종의 변이’라는 주제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된다.


천동설을 믿었던 세상에서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만큼이나 사람들의 생각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던 이론이 바로 다윈의 진화론이다.


『종의 기원』이 나오기 전, 자연과학의 사상적 뿌리는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었다. 플라톤에 따르면

이 세상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진리인

이데아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가 보는 다양한

현상은 단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할 뿐이었다.


플라톤의 사상은 몇 천 년을 지배해온 기독교 사상에

의해 더욱 단단해져 서양사 깊숙이 뿌리박히게 된다.


그런데 200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이데아 사상을

뿌리째 뒤흔든 이론이 바로 다윈의 ‘진화론’이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보았을 때 그의 주장이 얼마나

많은 반대에 직면했을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창조론은 무조건 틀리고 진화론이 무조건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다윈이 살던 시대의 창조론

은 진화론을 억압하고 과학적인 토론을 거부했다.


모두가 당연시 여겼던 ‘종은 창조되었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다윈이 남긴 위대한 유산

진화론은 그의 규칙적인 습관과 삶을 대하는 긍정적

태도, 그리고 일에 대한 열정이 만들어낸 진화의 또

다른 산물이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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