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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Apr 02. 2019

1.플라톤의 삶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인 BC 427년,그리스아테네에서 플라톤이라는 대 철학자가 탄생합니다.플라톤은 아테네의 왕족 혈통으로 태어난,잘

생기고 건장한 청년이였습니다.플라톤이라는 이름도 그의 넓은 어깨 때문이었다거나 혹은 그의 넓은 이마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플라톤은 어릴 때부터 문학소년으로 불리웠으며

유년시절에는 레슬링 선수로도 활약하였고 전쟁에도 세 번씩이나 참여한 신체 건강한 청년이었습니다.


유년시절 시를 쓰고 시 낭송을 즐겼던 플라톤은 어느 날 극장에서 소크라테스를 만났고,그와 대화를 나누는 젊은이들 사이에 끼어 자연스럽게 자제가 되었습니다.혹은 플라톤의 삼촌이 소크라테스를 소개시켜주었다는 설도 있습니다.플라톤의 집안이 아테네 왕족의 혈통으로 그의 삼촌이 당시 아테네의 현인으로 불리웠던 소크라테스를 문학을 좋아하던 조카 플라톤에게 자연스럽게 공부하도록 연결시켜주었다는 것이 설득력이 더 있을 것

같습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만난 뒤 그의 철학 세계로

깊이 빠져들어갔습니다.플라톤이 얼마나 소크라테스를 믿고 의지했으며 그를 존경했는지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야만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그리스인으로

태어난 것과,노예로 태어나지 않고 자유인으로 태어난 것과,그중에서도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을 신께 감사드린다.'


그의 나이 20세 때부터 아테네의 현자 소크라테스를 스승으로 만나 그의 철학 사상을 전수받으며

정치가로서의 큰 꿈을 키워나가던 플라톤은 28세때 큰 충격적인 사건에 봉착합니다.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과 신를 경멸했다는 말도 안되는죄목으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후대 철학자들은 이 날을 아테네의 정치가 철학에

죄를 지은 날이라고 이야기하며 그 부당함을 지적하였습니다.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갑작스런 죽음을 보면서

큰 충격에 휩싸인 플라톤은 정치가로서의 꿈을 버리고 그의 스승을 죽음으로 이끈 아테네의 민주정치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때의 선입견이 이후 그의 저서 국가론에서

민주정치를 불신하고 지혜의 지혜를 가진 철인이

통치하는 나라를 이상적인 국가로 주장하는 그의정치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습니다.


플라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죽자 미련없이

아테네를 떠나 이집트를 거쳐 시칠리아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세상 구경를 통해 사색하고 질문하는 철학적 삶을 살아간다.


그의 나이 40세 때인 기원전 387년에 시칠리아의 수도였던 시라쿠사의 통치자 디오니시오스로부터 청을 받아 디오니시오스식의 이상적인 국가건설에 플라톤의 철학사상을 전수하게 된다.

플라톤의 생각으로는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을 교화시키는 것보다 왕 한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하였고

그의 철학사상이 현실정치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하였기 때문에 그 청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디오니시오스와 플라톤 간의 견해차는 너무 컸다.플라톤의 철학사상의 핵심이 무엇인가?

지혜의 지혜를 가진 철인 철학자가 왕이 되든지 왕이 철인이 되든지 아니면 왕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플라톤의 이상적인 국가관을 실현하려하였고 디오니시오스는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심한 갈등을 겪다 마침내 플라톤은 디오니시오스에게 추방당하고 노예로 붙잡혀 팔려갈 운명에 처하는 신세가 되었다.하지만 그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아니케리스의 도움으로 아테네로 어렵게 귀환할 수 있었다.


그 이후 플라톤은 철학과 저술에 몰두하면서 세계최초의 대학의 시초가 되는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를 BC 386년 설립하고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평생을 철학자이자 교육자로서의 삶은 살아가게 된다.


플라톤이 설립한 아카데미아는 기원후 529년에

폐교될 때까지 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명실상부한

철학의 전당으로 역할을 한다.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아카데미아에서 20년간 공부하였고 플라톤의 대화편으로 분류되는 많은 저술들이 여기서 쓰여지기도 하였다.


플라톤은 80세까지 살았으며 그의 만년은 비교적

평화롭고 행복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가 배출한 제자들은 명성을 드높이고 있었고 플라톤은

아카데미아에서 은거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며

40여 편의 대화편을 저술하는 대 철학자가 된다.


플라톤의 대표작 국가론은 '올바름이란 무엇이며

이상적인 국가는 어떻게 달성되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떠나는 긴 여정과도 같은 철학서이다.


플라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통해 철학사상을 전수받고,이를 계승 발전시킨 위대한 철학자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 헤드는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하였다.이렇듯 플라톤

은 인류 지성사에 큰 울림을 준 대 철학자로 우리

곁에 오늘날까지도 숨쉬고 있는 철하사상을 남겼다.


플라톤의 대표저서 국가론은 올바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논하는 철학서이자 윤리학이며,이상적인 국가란 어떻게 달성되는가를 논하는 정치학책이며 지혜를 지닌 통치자를 어떻게 교육시켜야하는지를 논하는 교육학책이고,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볼 것을 논하는 형이상학이자 심리학

을 다루는 철학의 기본서이자 학문의 백과사전으로 인류 지성사에 큰 울림을 준 철학서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로 태어나 소크라테스로

자랐고 소크라테스가 되었다고 할만큼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철학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아

플라톤의 대화편 저술들은 모두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토론자들과 대화하는 대화체로 저술되었다


이는 소크라테스는 그의 철학사상에 대한 단 한

편의 저술들도 남기지 않았으며 그의 철학사상은

플라톤의 40여편의 저술들을 통해서 우리가 접하고 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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