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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May 20. 2018

나의 북극성을 찾아서

아포리아 시대에 나의 북극성은 어디에

임효 作ᆢ길

                                   

나의 북극성을 찾아서 ᆢ


르네상스 시대 화가 라파엘로, 54명의 철학자들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 그들의 사상을 전한 천재 화가 

아테네 학당,그 중심을 보라 ᆢ

플라톤의 손이 하늘을 향하지 않은가?

그는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데아를
중시하는 이상주의 철학을 강조하였다.


옆에 있는 젊은이는 누구인가?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닌가? 땅 위의 경험적 현실을 중요시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은 그래서 땅을 향한다.


저들이 왜 저기 한 폭의 그림 속에 다 모여 있을까?

아포리아 시대, 혼돈의 시대에서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저들은 과연 어떤 인생의 좌표를 던져줄 것인가?



그리스의 전설적인 미다스는 황금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디오니소스 신에게 간청한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어 주소서!"


그러나 그의 간청은 독이 되어 그에게 돌아온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다니 ᆢ내가 먹을 음식도 의 가장 사랑하는 딸까지도 
윽 ᆢ이건 아닌데 으악 "


황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참으로 좋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라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 모든 것은 궁극적인 목적을 가지는데, 행복은 그 자체로 궁극적인 목적이라 하였다.


인생에서 최고의 선, 선의 이데아, 좋음의 좋음이 행복이다. 행복은 그 자체가 최고의 좋음이다. 행복해지려면  본래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때 최고의 행복감을 느낀다.

철은 철의 쓰임새로, 목재는 목재의 쓰임새사용될 때, 인간은 인간 고유 기능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행복의 열쇠라 하였다.


간은 이성적 동물, 인간에게 참으로 좋은 것은 영혼의 활동 즉, 이성적인 활동이다. 이성적 사고, 사유 기능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것, 그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ᆢ


살인이라는 방법으로 복수를 해서 소중한 사람 잃고, 자기 자신도 죽어가는 가여운 햄릿, 의심으로 주변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결국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파멸에 이르는 더 가여운 존재 오셀로, 진실보다 감언이설에 속아 결국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어리석은 리어 왕, 마녀의 말에 현혹되어 왕이 되겠다고 탐욕을 부리며 많은 사람을 죽이다 결국 파멸을 맞는 욕심쟁이 맥베스, 셰익스피어는 인간이 잘못된 방법이나 가치관으로 인해 스스로 파멸에 빠지는 과정을 그의 작품에서 은유적으로 그려낸다.


"오 신이시여! 행복을 추구하기가 이리도 어렵단 말입니까?"


인간은 불완전하다. 여전히 잘못된 방법을 택할 수도, 잘못된 의심을 품거나 욕망에 빠져버리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인간이 불완전한  것을 추구한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이성적 사고를 발휘하는 습성이 습관화되어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용의 덕을 실천할 때 인간은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이 과연 무엇인지를 보다 더 명백히 탐구해야 한다. 아마도 이것을 위해서는 우리가 인간의 고유한 기능을 파악해야 한다.


행복한 삶이란, 이성이 시키는 바에 따라 늘 노력하여 올바른 길을 선택할 때 가능하다. 그러한 노력과 행동을 바로 덕이라 칭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란 하루 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여 습관이 되었을 때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라 하였다.


악기를 꾸준히 연주해야 훌륭한 연주자가 되는 것 같이, 절제 있는 행위를 반해야만 절제 있게 되며, 용감한 행위를 반해야만 용감하게 된다.


덕은 지나침이나 모자람의 경우에는 성립될 수 없으며 중간 입장을 취할 때 가능하다.


아리스토의 중용론의 구절이다.


"덕이란 끊임없이 노력하여 그것이 습관이 되고 나아가 한 사람의 성품이 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은 모든 동물들 중 가장 훌륭하나, 그것은 법과 정의를 지킬 때 그렇다. 만약 인간이 법과 정의를 지키지 않으면, 동물 중에서 가장 잔인한 야수가 된다 하였다.


언어를 가지고 있고, 그 언어로 법과 정의를 지키려 노력할 때 공동체의 행복은 싹튼.


조용히 산책하며  독서하고 사색하기를 즐길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나의 북극성을 찾을 수 있는 철학자가 되는  듯.


교육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인가를 깨닫게 하는 것. 삶의 목적지보다는 모든 순간의 경험을 중요시하는 자세, 그것이 철학을 하는 이유 아니겠는가?


길을 잃고 헤매는 아포리아 시대에, 노를 젓는 방법을 알려고 하지 말고,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들을 보자.

그리고 나의 북극성이 어디 있는지를 찾아보자.


내 인생의 좌표가 어디 있는지,
인생 항로가 북극성을 향하고 있는지,
산책하고 생각하고 독서하고 사색하고 사색하는 것,

그것이 노 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칠흑 같은 밤하늘을 탈출하기 위해 열심히 노 젓는 사공이 되기보다는 나의 북극성이 어디에 있는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사색하는 여유를 가지는 것 , 그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의 북극성은 어디에 있을까?


ᆢ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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