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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May 22. 2019

사회적 기업에 대한 단상

Good profit을 실현하는 기업이란?

나는 오늘도 교육기업을 경영하며  합리적 이성이 용기의 도움을 받아 욕망을 잘 절제하는 善을 行하고 있는가?
플라톤 국가론 정의에 대한 추상그림, Plato Won 作


사회적 기업이란 정의는 무엇인가?
기업이면 그냥 기업이지 사회적 기업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열심히 돈 벌어서 사회적 고용창출 많이 하고 세금 많이 내고 죄 안 짓고 오래오래
영속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사회적 기업이란 벌어들인 돈의 일부를 어떻게 사회에 좋은 일에 쓰는가였다. 그러나 그렇게 남의 눈치 보며 남의 시선에 이끌려 수동적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단발적 선행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회적 기업이라고 칭하지는 않는다.

앞으로의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의란
'Good Profit"을 실현하는 기업을 말한다.
'Good Profit'이란 돈을 얼마나 착하게 벌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는 기업의 이익을 말한다.
다시 말해 기업활동 전 과정에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최우선시되고 그 이익 발생이 곧 그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기업이 이윤 극대화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고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것은 그냥 호혜적 관점이 아니라 현대 기업의
필수 경영전략이다. 지금은 기업이 사회적 가치 창출 없이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고객에게 외면받는 시대다.

Social Value, 사회적 가치란 무엇인가?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나 혼자만 독불장군으로 잘 나서 잘 나가는 사람이나 기업은 없다. 다 사회적 인프라의 덕을 본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사회적 인프라가 건강할 때 기업은 더 영속할 수. 있는 환경 하에 놓이게 된다.

배려 없는 지식인은 악마라는 이야기가 있듯 배려 없는 기업은 사회적 악마가 될 수 있다.

산업 전분야에 걸쳐 사회적 기업이 필요하겠지만
특히 교육분야에서는 더더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이 절실하다.

2500년 전에 살았던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은 철학으로 지식 장사를 하는 지식 장사꾼 소피스트들을 경멸했다. 소피스트는 원래 그리스어로 '지혜로운 자'라는 뜻이었으나 혼란한 아테네 정치환경 속에서 자기 이익 

만을 쫓는 괴물 지식 집단으로 변해갔다.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자기 입맛에 맞게 진리를 왜곡하여 해석하고 철학을 출세의 수단으로 가르치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정치적 야망을 가진 아테네의 귀족 자제들을 모아 돈을 받고 변론술이나 수사학, 철학을 가르쳤다. 소피스트들이 가르친 교육은 진리를 탐구하는 정신이 아니라 진리를 상대주의로 해석해서 자기 이익에 맞게 교묘히 해석하고 말 잘하는 정치꾼을 만드는 데 활용하는 기술을 익히도록 지도한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 이와 다르지 않다.
교육을 오로지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잡는데에만 집중 되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도록 돕는데
교육기업의 목표가 맞춰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목적론적 사고를 생각할 때

그것이 교육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추구하는 목표점이 잘못되어 있으니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개운하지 않고 오히려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교육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현상만 강화될 뿐이다.

플라톤이 이야기한 교육의 목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지혜에 배고파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앤비 교육의 목표점은 플라톤이 말한 그곳에 정확히 맞추어져 있다. 모든 지앤비 교육의 기업활동은 이익을

많이 내고 원가를 절감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지 않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생각열기를 통해 붉게 물들일까에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패럴랙스 색깔도 붉은 적색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의 영혼이 생각이
닫혀 숨 쉬지 못하고 검은 숯검댕이가 된다.

숯검댕이의 머릿속에서는 숯검댕이 같은 생각 밖에

나올 게 없다.

내가 전문적으로 일하는 일터의 일상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이라면  나의 전 생애가 사회적 가치에 헌신하는 삶이 된다. 그 활동이 역사에 길이 기록되지는 않겠지만 (굳이 기록될 필요도 없지만) 나는 크든 작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라는 자기만족은

가질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 사람을 사회적 공헌자라 부르고

자뻑(스스로 뿌듯하게 느끼는 심리)할 수 있다.

오늘 내가 출근하는 그곳에는 모두가 역할의 차이만

있을 뿐 다 사회적 공헌자이고 자뻑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들은 아침부터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기업이 건강하다면 그 이유는

올바른 일을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사람과 行하려는

가치 기준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누가 아킬레우스보다 더 영웅적일 수 있으며,
누가 헥토르보다 의무를 잘 자각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지앤비 가족들보다 더 지혜로울 수 있으며,

어느 누구의 가치가 지앤비 가족들이 지닌 교육가치 철학보다 더 가치 있고 선명할 수 있겠는가?

지앤비 학원장님, 본부장님, 본사 직원, 선생님

모두는 익숙한 이곳을 버리고 낯선 저곳으로 나아가 대한민국 교육현장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사회적 공헌자임을 당당히 선포할 수 있다.

우리는 받아들인 지식을 관점을 달리하여 재해석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줄 는 지식인,

Parallaxian이라고 스스로 명명하고 부르고
자뻑한다.

오늘 아침, 밥을 먹고 패럴랙시안이 근무하는
공간으로 신나게 달려가는 이유를 당당히
밝힐 수 있음에 감사한다.

Plato Won


있는 듯 없는 듯한 달항아리는 항상 복을 듬뿍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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