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Plato Won분노의 시대다.
세상이 분노의 도가니로 들끓고 있는 듯하다. 사회현상에 분노하고, 정치에 분노하고, 이웃들의 얌체짓에 분노하고, 동료의 사소한 잘못에 분노하고,
우리는 늘 분노를 달고 산다.
영국정신분석학회 펠로이자 런던대 교수인 조시 코인은 분노를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첫째, 의로운 분노다.
자신은 모든 것이 옳다고 느끼는 순간,
'의로운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이때가 가장 위험해진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잔소리,
부부싸움, 상사의 꾸지람이
다 여기에 해당한다.
이럴 땐 자기 자신에 단단히
틀어박힐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분노와 옳음이 견고하게 융합되면 공격성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둘째, 실패한 분노다.
직장에서는 '의로운 분노'보다는
'실패한 분노'가 많이 나타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분노는 들끓지만 이런 부정적 감정을 자제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분노는 엉뚱한 곳으로 우회해서 표출되어 나타나는 분노다.
자녀가 부모에게 잔소리 들었을 때,
직장에서 상사에게 지적받았을 때,
친구사이에 무시당했을 때가 이런 경우다.
실패한 분노는 변장된 짜증, 수동적 공격과 같은 은밀하고도 교묘한 형태로 분노를 우회해서 표출된다.
셋째, 냉소적 분노다.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일로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은 냉소적 분노에
휩싸인다.
사회적 격차에 대한 불만,
경제적. 정서적 소외감, 신분이나
직업에 대한 불만이 이런 경우다.
이럴 땐 분노의 원인을
바깥세상으로 돌리고, '세상 다 망해버려라'라는 식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자신을 위로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노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분노 뒤에 숨은 미지의 불안과
욕망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조시 코인은 충고한다.
분노를 삼키고 참는 것으로는
분노를 치유할 수 없고, 자신의 분노
뒤에 숨어 있는 분노의 이유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솔직하게 자신에게 털어놓아야 분노의 치유는 시작된다.
사실 우리는 분노를 마음속 깊숙이
삼켜, 그 가시에 스스로 찔리기도 하고, 역으로 과장된 친절로 감추고, 심지어는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억압한다.
그러면서 우회해서 분노를
변형된 짜증, 강박관념으로 표출하며 분노에 스스로 멍들어간다.
그 멍든 자국을 솔직히
글로, 그림으로, 생각으로 밖으로 드러내면, 그 순간부터 분노를 일으킨 원인들이 벌거벗겨진 상태가 되어
부끄러워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분노의 시대다.
분노를 없앨 수는 없는
잘 드러내고, 잘 다스리고,
잘 배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화병으로 생고생한다.
분노를 변장시키지 말고,
분노를 발가벗길 때 분노는 놀라 도망치지 않겠는가?
새봄에 새싹이 올라오면
묵은 잎들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Plato Won
○ 어제는 3일간 줌교육으로 진행된
제46기 패럴랙스수학 입문교육 수료식이 있었다.
새롭게 GnB패럴랙스교육 가족이 되신
학원장님, 선생님들 추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