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노자와 장자 추상화 읽비
철학과 정치를 분리하지 않았던 장자는
세상 모든 사물과 현상을 이 두 원칙을 바탕으로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노자의 무위의 정치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노자도 ‘가장 훌륭한 정치는 백성들이 통치자가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 정도로 다스리는 것‘이라 보았지요.
별다른 제도나 법률이 없어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잘 다스려 나가므로 백성들은 본성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장자는 “임금 된 자가 법과 의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것은 거짓된 덕”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화살을 피해 높이
나는 새처럼, 각자의 본성에 따라 교화를 베푸는 것이 최선이라 보았지요.
그는 개개인이 지식과 욕망의 노예가 아니라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꿈을 정치에 빗대어 표현했습니다.
예컨대 유교 경전인 『예기』의 「대학」에 보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 말은 ‘먼저 자기 자신부터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한 후에야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닦는 수신(修身)과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제가(齊家)는 ‘개인적 영역’에 해당합니다.
이에 비해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治國),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평천하(平天下)는 ‘공동체의 영역’
이라 할 수 있지요.
“「대종사」가 내성(內聖)의 도를 다했다면,
「응제왕」은 외왕(外王)의 이치를 다했다고 할 수 있다.”
‘내성외왕’은 『장자』 잡편의 「천하」에서 처음
언급된 말로,옛사람들이 추구했던 수양과 정치의
최고 이상입니다.
한마디로 성인의 청정한 덕을 갖추고, 밖으로 무위의 정치를 펼침으로써 천하를 태평하게 만드는 것을 말하지요.
이처럼 수양과 정치를 하나로 아울러서 살피는
관점은 『도덕경』 54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노자 입장에서 가정과 나라와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내면의 수양으로 쌓은 덕이 자연스럽게 널리 전파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대도의 본질에 충실한 수신이 없다면, 도와 덕을 논하거나 무위의 정치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보았지요.
이는 수신의 목적을 치국과 평천하에 두고 있었던 유교의 관점과는 뚜렷이 구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추상화를 통해
장자가 꿈꾸었던 세상의 모습을 살펴볼까요?
중앙의 원이 어지럽게 회전하는 가운데,
깃털처럼 이리저리 정처 없이 흩날리는 형체들.
사물과 세속의 유혹에 동요되어
본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위태로운 모습을 상징합니다.
장자가 ‘혼돈 칠규’의 우화에서 경고한 것도
존재의 근원을 파괴하려는 인위의 폐단이었지요.
느긋하게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은
뚜렷한 형상이 없는 혼돈을,
‘큰 원’은 혼돈이 다스리던 중앙을 상징합니다.
무언가에 쫓기듯 점점 빠르게 흔들리는
검은 형체들은 다가올 비극의 전조인 듯하군요.
느닷없이 생겨난 일곱 개의 검은 구멍.
혼돈의 환대에 보답하고자, 남쪽 바다의 임금 숙과
북쪽 바다의 임금 홀이 뚫어 준 감각 기관들입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혼돈은 죽음을 맞았고,
큰 원은 곧 벗겨질 듯한 왕관처럼 보이네요.
천지만물이 분화되기 이전,
밝음과 어둠이 뒤엉켜 있는 순수한 상태를 말하는 혼돈.
그래서 자연의 생명력을 닮은 초록빛을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오리가 그 주위를 음산하게 맴돕니다.
감각 기관으로 인해 분별과 경계가 생겨난 것이 화근이었지요.
결국 억지로 구멍을 뚫는 인위가 본성을 거스름으로써
세상의 근원인 혼돈은 사라지고 맙니다.
회오리도, 감각 기관도
모두 사라지고 등장한 밝은 빛!
내면의 수양에서 시작되는
무위의 다스림을 상징합니다.
하늘까지 높이 뻗친 생명의 줄기.
비어 있던 밑부분에도 든든한 뿌리가 자라났습니다.
구멍이 있던 자리에 고개를 내민 감각 기관들.
음표를 닮아서인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듯합니다.
이는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본성에 따라 살아가는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Plato 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