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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Jun 09. 2019

4. 개인과 권력의 다툼 속에 피어난  자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는 권력과  다수의 여론 횡포에서 지켜낸 '사회가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를 말한다.
 권력이나 여론의 횡포가 소수 집단의 자유를 무참히 침해할 수 있다.

자유와 권력의 다툼은 역사가 시작된 까마득한 옛날부터 시작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정의되는 자유란,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권력을

제한하는 방법으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정치적 자유 또는 권리라고 하는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영역을 권력이
침범하게 되면 권력이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국민들은 저항권을 정당히 가지게 된다는 것이 홉스, 로크,

루소가 주장한 사회 계약설이다. 즉 국민은 국가가

정당한 의무를 위반했을 때는 국가에 대한 저항권을 가진다는 사상이다.

두 번째는 국가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국민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기관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는 방법이다. 의회가 바로 그런 곳이다.

그 당시 유럽의 권력자들은 대부분 첫 번째 제한을

선택했다. 그러나 자유의 확대를 원하는 국민들은

두 번째 방법이 목표였다.

점차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지배자의 이익과 자신들의 이익이 반드시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고위직 관료는

자신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바꿔 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사람들은 점자 지배자의 권력을 제한하는 방법보다

선거를 통해 일정 기간 동안만 일하는 지배자를 뽑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정치환경이 변하자, 사람들은 그동안 너무 권력 제한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에 반성한다.
이제 지배자들로 하여금 국민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지게 만들고, 그렇지 못하면 즉시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면 되었다. 국민이 그 사용처와 사용 밤 법을 엄격히 규정한다면 권력을 지배자에게 안심하고 맡겨도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존재하지 말아야 할 정부가 아니라면 정부가 하는 일에 어떤 형태로든 제약을

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선거를 통해 정부가 수립되자 정부가

하는 모든 일들은 사람들의 관찰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왜냐하면 '자치'나 '국민의 자기 자신에

대한 권력 행사'란 말은 본질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즉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그 권력의 지배를 받는 대상과 똑같은 사람이 아니란 것이다.

자치라고 말하지만 각자가 자기 이외 나머지 사람들의 지배를 받는 정치 체제인 것이다. 국민의 의지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다수파의 의지를 뜻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들 가운데 일부를 억누르고

싶은 욕망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므로 여전히 정부가 개인들에게 행사하는 권력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정치 영역에서 '다수의 횡포'는

온 사회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큰 문제가 되었다.

밀은 이 다수의 횡포가 정치적 탄압보다 훨씬 더

무섭다고 했다. 그것은 정치적 탄압처럼 눈에 보이는

무서운 형벌을 내리지는 않지만 개인의 사사로운 삶 구서구석에 침투해서 마침내 그 영혼까지 통제하면서 도저히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제 사유를 지키는 것이 더 복잡해졌다.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의견, 즉 다수의 견해가 개인의 삶에

강요하는 것에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수의 삶의 방식과 일치하지 않는 개별성은 무엇이든 발전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을 사회의 표준에 맞도록 획일화시켜 버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밀은 주장한다. 집단의 생각이나 의사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 개인의 독립성에 함부로 관여하거나 간섭하게 해서는 안 되므로 그런 한계를 명확히 하여 부당한

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치적 독재를

방지하는 것만큼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밀의 이러한 주장에 이의를 달기는 어렵지만 실제적

문제에 대해서는 개인의 독립성과 사회의 통제가

만나는 점이 어디인지는 구분하기 쉽지 않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므로 이러한 것에

대한 행위규범은 우선 법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그리고 법이 관여하기 어려운 부분은 다수의 생각에

따라 결정해야 되고, 이 규범들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는 인간 생활의 근본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의 정답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한 시대나 사회가 내린 결정이 다른 시대나 다른 사회의 사람에게는 놀라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린

특정 시대, 특정 국가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오래전부터 늘 자신들과 똑같은 생각을 해 왔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확립한

규칙이 너무나 당연하며 누가 봐도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 규범을 만드는 데는 정말 여러 가지 요인이 다양하게 작용한다. 한 사회의 행위 규범이나

도덕 감정의 형성은 이성적인 결과물이 아닐 수도 있다.

즉 실질적으로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세력이 규범을 만들게 된다. 사람들은 법을 지키지 않을 때 따르는

처벌이 두려워서 또는 여론의 힘에 밀려 그 규범을

준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 규범, 윤리,

도덕이라는 것이 잘못된 것일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적절한 사례가 있다.

바로 종교적 신념이다.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은
종교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증오심도 도덕 감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조차도 처음에는 종교적 견해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각 교회 또는 분파 간에

심각한 갈등과 대립이 일어나고 어느 한쪽의 완벽한

승리 없이 막을 내리자 다수파가 될 가능성이 없는

소수파 쪽에서는 종교적 차이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아야 하니까.

바로 이 싸움을 통해서 '사회가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권리'라는 중요한 원리의 토대가 확보되었다.

이제 사회가 생각을 달리 하는 개인에 대해 함부로

간섭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종교의 자유를 신장

시키는 데 기여한 사상가들은 특히 양심의 자유가

결코 침해되어서는 안 될 권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각 개인이 자신의 종교적 믿음에 대해 절대적

자유를 누려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밀은 인간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과

대립되는 것에 대해서는 쉽사리 관용을 베풀지 못하는 천성을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실제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특히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감정이 지극히 순수하거나 강렬한 곳일수록 관용의 폭이 좁아진다.
그만큼 자기와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역사적으로 자유와

권력의 상호 충돌의 역사 속에서 '사회가 절대적으로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규정하고 확보해 나가는가, 그리고 그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탐구서로,

오늘날 자유 민주주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는 밀에게 부채 의식을 지니고 있다.

자유가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윤택하게 하는지

숙고해 보자.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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