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탄생과 정당한 권력의 조건

2-1, 루소 사회계약론

by Plato Won
Photo by Plato Won


최초의 사회


(1) 자연발생설 vs. 사회계약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지혜를 가진 철인이 통치하는 이상 국가를 꿈꾼 플라톤.그는 인간이 혼자서는 살 수 없게 되자 공동생활이 시작되었고,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국가’가 탄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양한 욕망에 비해 개개인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구성원들이 서로 힘을 합치는 과정에서 권리와 의무가 제도화되었고, 각자에게 주어진 본성과 역할에 따라 세 계급으로 분화되어

국가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말이지요.


이처럼 어떤 정치 조직을 가진 사회,

즉 국가 탄생에 관한 주장은

고대 철학자인 플라톤의 『국가론』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국가가 자연스럽게 발생했다고 본 점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사회계약설과 그 결이 다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저서에는 사회계약설의 모태가 되는 요소들이 있는데,

플라톤의 『국가론』 중 한 대목을 살펴볼까요?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곧 강자의 이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권력 집단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을 만들어 국민의 이익을 빼앗아 간다고 불만을 토로하면서 말이지요.


이에 플라톤의 형 글라우콘은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을 일부 이어받아

현실적인 이유와 ‘기게스의 반지’ 예를 들며 정의를 이야기합니다.


정의란 그 자체로 좋은 것이어야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올바름 그 자체는 기피하면서도 그 결과나 결과에 따른 평판 때문에 정의를 추구한다면서,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결국 불의를 저지르게 된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강자보다는 약하고 약자보다는 강한 사람들이 타인에게 해를 입히거나 자신이 해를 입지 않도록 계약을 맺고,

상호 합의하에 법률을 만들어 거기에 복종하기로 약속했는데, 이것이 법의 기원이자, 정의의 기원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입니다.


이러한 글라우콘의 주장은

사회계약설의 모태가 된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인간의 이기심과 자기 보존 욕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홉스의 사회계약설과 닮아 있어 흥미롭지요.


(2) 정당한 권력의 조건


루소는 『사회계약론』의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정당하고 믿을 만한

통치의 법칙이 과연 정치 사회에 존재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며

자신의 생각을 밝힙니다.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이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고, 자기가 다른 사람의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이 오히려 그들보다 더 노예처럼 살고 있다는 루소의 지적은 부당한 권력이 지배하고 있었던 18세기 유럽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지요.


그 당시에는 ‘신이 왕에게 절대적인 권리를 주었다’는 왕권신수설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전제 군주제를 옹호하는 자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정해져 있고 그것이

신의 뜻’이라 주장했습니다.


자유를 포기하고 주인의 명령에 따르는 노예처럼 국민 역시 자유를 내놓고

왕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18세기 유럽인들만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긴 것은 아닙니다.


기원전 4세기에 활동한 아리스토텔레스도 ‘어떤 사람은 노예가 되기 위해, 어떤 사람은 지배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다’고 말했으니까요.


하지만 루소는 이것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라 비판합니다.


사회에 노예 제도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에, 노예 신분으로 태어난 사람은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루소에 따르면, 강자가 약자를 힘으로 굴복시킨 것이 노예 제도가 생겨난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정당한 권력이란 어떤 것이고, 사회란 어떻게 생겨난 걸까요?


루소는 여러 형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자 유일하게 자연적으로 생겨난 사회인 ‘가족’을 예로 듭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의존하여 생활하다가,

신체와 정신이 어느 정도 성숙해지면 독립하여 혼자 힘으로 살아갑니다.


이후에도 부모와의 결합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그들 간의 자발적인 합의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자유롭게 태어났으므로 자신에게 이익이라고 판단될 경우에만 자신의 자유를 양도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합법적으로

정당한 권력이란 힘을 바탕으로 한 강자의 논리가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계약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그 누구도 폭력에 복종할 의무는 없기에

폭력으로는 어떠한 권력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힘을 권리로, 복종을 의무로 바꾸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강한 지배자도 영원히 군림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권리의 기초가 되는 ‘사회 질서’의 확립은 오직 구성원 간의 자유로운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3) 추상화 이해하기



루소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사회계약론』은

총 4부로 되어 있습니다.


‘사회계약 편’이라 할 수 있는 1부에서는 사회가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계약에 의해 성립되었으며, 그 최초의 계약은 어떤 내용인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어지는 2부와 3부에서는 각각 ‘입법’과 ‘행정’을, 마지막 4부에서는 고대 로마의 사례를 통해

‘국가의 존속’이라는 문제를 다루면서 논의를 마무리하지요.


먼저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추상화를 통해 들여다볼까요?


어린 아기가 보입니다.

두 팔을 앞발 삼아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모습에서 자연 상태의 순수한 인간이 연상됩니다.


그런데 두 눈이 가려져 앞을 보지 못하네요.이는 혼자서도 자유롭게 살아가던 자연인이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 어디선가 불쑥 등장한 손!

‘쇠사슬’과 ‘성채’, ‘손’은 각각 어떤 의미일까요?


아기에게 버거워 보이는 쇠사슬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사회를 이루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나타냅니다.


화려한 성채는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지금껏 인간이 쌓아 올린 문명을 상징하지요.


하지만 빛이 강하면 어둠도 짙어지는 법!

사회의 산물인 문명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늘도 존재했습니다.


힘으로 다른 사람을 복종시키려는 강자의 논리는 노예 제도와 전제 군주제를 만들어 냄으로써 대다수 구성원들의 자유를 빼앗아 간 것이지요.


쇠사슬에 묶인 아기를 향해 내민 손.

이 ‘손’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외침, 다시 말해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도 본연의 순수함을 회복하기를 바랐던 루소의 염원을 상징합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을 뜻하는 ‘아기’와

사회 상태의 인간을 뜻하는 루소의 ‘손’이 서로 맞닿습니다.


이는 공동체와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합의를 통해 만장일치로 사회가 탄생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나무가 자라 어느덧 울창한 숲을 이루었군요.


한때 탄압을 받았던 루소의 사상이

이제는 널리 퍼져 인류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겠지요.


손길이 인도하는 대로 자연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서일까요?


아기의 등에 얹힌 성채의 무게가 전보다는 한결 가벼워 보입니다.


루소는 말합니다.


‘본연의 순수함을 되찾아 모두가 삶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 때, 인간은

사회 속에서도 자연인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은 비단 18세기 유럽인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 역시 마음속에 새겨야 할 값진 교훈입니다.


Plato Won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