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기원과 시민으로 산다는 것

2-2,루소 사회계약론

by Plato Won
Photo by Plato Won

자연인, 시민으로 거듭나다

(1) 불평등의 기원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따르면, 불평등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적 불평등으로,

타고난 힘이나 지능, 건강 상태 등의 차이를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면서 생겨나는 사회적 불평등입니다.


사회적 불평등은 대다수가 희생한 대가로 소수가 누리는 모든 특권,

예컨대 남보다 부유하든지, 권력을 갖고 있든지,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든지 하는 특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루소는 이러한 불평등이 모든 사회악을 낳은 주범이라 보고, 그 기원을 ‘사적 소유’라는 관념에서 찾습니다.


협동의 이로움을 깨달은 인간은 농사를 지으면서 가족을 이루어 한곳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 최초의 사회는 씨족, 부족으로 점차 덩치가 커졌는데, 이후 농업 기술의 발달로 수확량이 급증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토지와 재산을 서로 차지하려는 다툼이 끊이지 않으면서 강자와 약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부유한 자와 빈곤한 자라는

대립 구도가 형성된 것이지요.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국가’가 등장하지만, 구성원 상호 간의 권리와 의무를 제한함으로써 개인의 재산과 이익을 보장해 주어야 할 국가가

오히려 불평등을 조장했다는 것이 루소의 생각이지요.


그는 사회 제도가 ‘주인과 노예’ 같은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더욱 깊게 뿌리내리게 했다고 비판합니다.


(2) 시민으로 산다는 것


그렇다면 사회적 불평등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루소는 구성원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사회 계약을 통해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서로 주고받는 보상과 이익을 따져 볼 때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타고난 자유와 사회적 자유는 물론,

‘소유’와 ‘소유권’이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소유’는 단순히 힘으로 또는 최초로 차지한 자의 권리일 뿐이며,

‘소유권’은 실질적이고 정당한 권리에 근거하는 개념이기 때문이지요.


사회 계약으로 구성원들이 각자 타고난 자유와 권리를 반납하면 공동체의 일부가 되어 빈털터리로 새롭게 출발한다는 점에서 모두가 평등해집니다.


이는 공동체가 개인으로부터 재산과 권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합법적으로 개인의 소유권과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지요.


개인 입장에서는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각자의 생명과 재산, 권리를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게 되고, 국가 입장에서는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의무를 다하는 만큼 더 큰 힘을 갖게 되므로 결국 모두에게 이로운 계약인 셈입니다.


인간은 사회 계약 이후 사회인이자 문명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전에는 본능에 충실하여 자신만 생각했다면,사회 속에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므로 도덕성이 발달하고 정의와 권리, 의무처럼 고차원적인 관념도 생겨납니다.


루소는 이를 가리켜 ‘지성이 고개를

들면 감정이 고상해지고 영혼이 고양되어 저절로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자연 상태에서 누리던 자유를 상실한 대가로 얻게 되는

‘사회적 자유’를 무엇보다 강조합니다.


지배자의 명령에 복종만 하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구성원 모두가 자기 삶의 당당한 주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요.


결국 사회 계약은 자연적 평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자연적이고 육체적인 불평등을 도덕적이고 합법적인

평등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3) 추상화 이해하기



이제 추상화에 담긴 의미를 살펴볼까요?


문명의 이면에 감추어진 인간 본성을

간결한 문체로 예리하게 포착한 작가, 헤밍웨이.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소설이 『노인과 바다』입니다.


『노인과 바다』를 모티브로 한 이 추상화는 인간이 지닌 불굴의 의지, 자유를 향한 집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망망대해에서 고깃배에 몸을 실은 한 노인.작은 배로 큰 바다에 나가는 것을 염려하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한 채,

노인은 오늘도 자신만의 자유를 만끽합니다.


몸길이가 배보다 긴 청새치의 출현!

있는 힘껏 낚싯줄을 당겨 보지만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군요.


불청객인 상어 역시 청새치를 노립니다.

노인과 청새치의 대결 구도에 상어까지 합세한 셈입니다.


가진 거라고는 작은 고깃배와 낚싯대가 전부인 노인과 커다란 몸집에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힘센 상어의 대결!


처음부터 불 보듯 빤한 승부인지도 모릅니다.


배 너머로 등장한 거대한 손!


이 손은 노인을 위기로부터 구해

줄 수도 있지만, 오히려 노인이 잡은 청어를 빼앗아 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손’은 국가 권력을 상징합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이를 빼앗거나 침해할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목표물 포획에 성공한 노인!짙은 푸른빛이 돋보이는 청새치는 사유재산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아직 청새치를 포기하지 못했는지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는 상어!


다시 팽팽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노인과 청새치, 상어 그리고 손,

이 모두를 아우르는 것은 푸른바다입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노인과 상어의 대결은 문명사회에서 사유재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구성원 간의 대결이라 볼 수 있지요.


그런데 노인이 비교적 손쉬운 작살을 두고도 낚싯대만 고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사적인 이익을 위해 내면의 양심을 저버리는 것이야말로

사회 계약의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이자,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원작 소설에서는 노인이 가까스로 잡은 청새치를 배에 매달고 항구에 돌아와 보니, 상어 떼가 뜯어먹어서 앙상한 뼈와 머리 부분만 남아 있었다고 나옵니다.


노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청새치를 온전히 소유했는지 여부가 아닙니다.


고깃배에 몸을 맡기고 바다와 일체감을 느끼는 시간, 자신의 힘으로 자유를 쟁취하려고 애쓴 과정 그 자체가 진정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


헤밍웨이가 노인의 입을 빌려서 한 말처럼 루소 역시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유와 평등을 누릴 권리가 있기에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은 보다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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