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문제의식,근대 사회를 열다

4-3루소 사회계약론

by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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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문제의식, 근대 사회를 열다

(1) 볼테르 vs. 루소


“나의 왕국을 무너뜨린 것은

이 두 놈이구나!”


프랑스 혁명으로 감옥에 갇혀 있던

루이 16세는 볼테르와 루소의 저서를 읽고 나서 이렇게 한탄했다고 합니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이들은 혁명의 주동자는 아니었지만,

사회 모순 비판과 개혁에 앞장섰던 그들의 사상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결과적으로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같은 계몽주의자이면서도 볼테르와 루소는 입장 차이를 보였습니다.


볼테르가 이성과 문명을 인류 진보의 원동력이라 주장한 반면,

루소는 이성과 문명이 오히려 인류를 타락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볼테르가 민중을 과소평가하여 사회 제도의 개혁보다는 계몽을 통한 인간 본성의 개조를 강조했다면,

루소는 모두가 평등하게 지닌 일반의지에 전권을 부여하고

민중의 힘을 강조했습니다.


볼테르는 루소의 주장에 날선 비판을 이어 가며,다섯 자녀를 고아원에 버린 루소의 흑역사를 폭로하기도 했지요.


악연으로 얽힌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같은 해인 1778년에 세상을 떠났고,

판테온에 나란히 잠들어 있습니다.


비슷한 듯 달라서 날카롭게 대립했던 이들의 사상은 훗날 다양한 사상의 밑거름이 되어 철학사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2) 루소의 후예들


철학의 흐름을 릴레이에 비유한다면,

루소는 볼테르로부터 넘겨받은 프랑스 계몽주의의 배턴을 독일의 칸트에게 넘겨주었고, 이는 다시 헤겔의 손으로 넘어갑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독일 철학의 주류는 ‘관념론’이었습니다.


관념론이란 ‘실재하고 불변하는 것은 오직 관념뿐’이라는 철학적 입장으로,

독일 관념론은 칸트로부터 시작되어 헤겔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지식만이 인류의 영광을 실현해 준다고 믿었던 칸트는 ‘인간 본연의 순수함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루소의 사상을 접한 후, 지식인으로서의 오만한 태도를 반성합니다.


그리하여 인간 중심의 철학으로 사상적 변화를 꾀했고,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라고 주장했지요.


헤겔은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는 것’이야말로

자유의 본질이라 보았다는 점에서 루소와 칸트의 계승자입니다.


그는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근대 국가’의 조건에 주목했습니다.


또한 소크라테스가 교육의 도구로, 플라톤이 진리 인식 방법으로 사용한

‘변증법’을 더욱 발전시켜 국가와 역사의 변화를 설명했지요.


헤겔은 ‘영원한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하나의 주장이 제시되면 그에 대한 반론이 뒤따르고,

양쪽의 긴장을 해소시켜 줄 새로운 주장이 등장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각각 ‘정립-반정립-종합’, 줄여서 ‘정(正)-반(反)-합(合)’이라 부릅니다.


공동체 안에서 자유의 실현을 갈망했던 루소와 칸트, 헤겔의 문제의식은

마르크스에게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으로 사회, 경제, 역사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정신적인 면보다 물질적인 면에 주목했고, 소외 계층의 입장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상 사회 건설에 국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구성원들의 연대와 협력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라 본 점에서

루소의 후예라 할 수 있지요.

(3) 진정한 근대성의 발견자


암흑의 ‘중세’와 친숙한 ‘현대’ 사이에 가로놓인 ‘근대’.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과학 혁명을 거치면서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사고의 전환이 일어났고,최초의 국가에 대한 의문은 ‘사회가 계약의 산물’이라는 추론을 낳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근대성’, 즉 중세와 구별되는 근대의 본질에 대해

최초로 의문을 던진 사람이 바로 루소입니다.


‘사람들이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이성의 힘을 맹신한 결과,인간성과 덕을 상실했다‘는 루소의 진단은

그 당시 유럽 사회의 문제가 너무나 심각해서,근본부터 뒤흔드는 ‘혁명’이 필요했다는 반증입니다.


그 혁명의 중심에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자리하고 있지요.


근대의 본질을 진지하게 통찰했다는 의미에서 루소는 ‘진정한 근대성의 발견자’라 할 수 있습니다.


(4) 추상화 이해하기


그럼 추상화를 살펴보면서, 루소의 사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함께 생각해 볼까요?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보이는 탑.

한때는 화려한 위용을 뽐냈을지 몰라도,

지금은 외벽에 균열이 보이는 초라한 모습입니다.


중세풍의 ‘탑’은, 시대는 이미 근대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신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그 당시 유럽 사회를 상징합니다.


온통 무채색으로 바뀐 탑!

어둠이 짙어지면서, 주위의 숲이 탑을 에워싸고 허공을 향해 뻗은 앙상한 나뭇가지로 인해 더욱 음산한 분위기가 감도는군요.


왕과 귀족에게 노예처럼 복종해야

했던 민중의 삶은 물론,특권의식에

빠져 타인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던 지배층의 삶 또한 자유롭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쇠사슬로 휘감긴 탑 주변에 여러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섰습니다.


건물 너머로 놓인 철교가 눈에 띄네요.

철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인류 문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해 왔습니다.


여기서 쇠사슬과 철교는 동일한 철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격이 다릅니다.


탑을 휘감고 있는 ‘쇠사슬’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상징합니다.


또한 문명으로 인한 인류의 타락,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반면에 탑과 자연을 이어 주는 ‘철교’는 타락한 유럽 사회를 향해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던 루소의 사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문명의 두 얼굴을 정확하게 간파한 루소였기에,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볼테르와 더불어 하나의 세계가 끝나고,루소와 더불어 하나의 세계가 시작되었다‘고 평가할 만하지요.

탑 주위로 선홍빛이 번져 나갑니다.


어느새 툭 끊어져 버린 쇠사슬.

새들도 하늘 곳곳을 누비며 날고 있군요.

탑 주위를 물들인 ‘선홍빛’은 루소가 꿈꾸었던 진정한 자유를,

‘새’는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자유야말로 인간성과 도덕성의 본질이라 본 루소. 그에게 자유는 ‘인간이 지닌 가장 고상한 능력’이자,‘신이 준 가장 귀중한 선물’이었습니다.

선홍빛 사이로 한 줄기 여명이 비칩니다.


앙상하던 가지도 신록을 자랑하는 울창한 숲으로 바뀌었네요.


이윽고 눈부신 태양이 떠오르고,

자연의 풍경 위로 새로운 사회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루소의 바람처럼 자연과 문명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었군요.


오늘날 우리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루소 덕분입니다.


이성의 빛, 합리성의 위력에 눈이 멀어 모두 한 방향으로만 달려가던 그때,

그는 잠시 멈추어 서서 각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사회와 인류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자며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지요.


인간에게는 이성 못지않게 감성도 중요하며, 이성과 감성의 조화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과 도덕성도 길러집니다.


이는 루소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

즉 ‘도덕적 자유’를 누리기 위한 바탕이 되지요.


“덕을 추구하는 좋은 시민이 아니라

좋음을 추구하는 좋은 인간만이 ‘도덕적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


자유는 정부의 형태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지,루소가 건네는 말을 마음 깊이 새겨 볼 일입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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