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된 것이다

3-2,다윈 종의 기원,생물학의 패러다임을 깨다

by Plato Won
Photo by Plato Won


(1) 핀치새부터 따개비까지,

진화론의 발판들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수집한 핀치새를 연구하며, 인간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된 것이라는 이론에 확신을 품게 됩니다.


모두 같은 종의 새인데도 서식 환경에

따라 제각기 다른 형태를 띤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지요.


다윈은 비글호 항해 당시 채집한

작은 새들의 표본을 영국으로 가져와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십여 마리가 모두 핀치류라는

조류학자 존 굴드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새들의 부리 모양이 제각기 달랐기 때문이지요.


어떤 녀석은 짧고 두꺼운 부리가 있어 씨를 깨 먹기 용이한 반면, 어떤 녀석은 날카롭고 뾰족한 부리가 있어 곤충을 잡기에 용이했습니다.


이 새들이 모두 한 종류에 속하지만,

서식지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띤다는 사실은 다윈에게 생각의 전환을 불러옵니다.


특히나 갈라파고스 제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다른 대륙과는 교류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 사실은 진화론의 증거로 삼기에 충분했지요.


다윈은 이 연구를 계기로 ‘종의 변화’라는 주제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종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점진적으로 변화한다.”


다윈은 진화론의 증거를 눈앞에 두고도

1846년부터 8년 동안 따개비 연구에만 몰두합니다.


당시까지 알려진 모든 따개비 종을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한 그는

연구 결과를 모두 합쳐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출간합니다.


누군가에게는 8년이라는 긴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윈은 진화론이 불러올 논란을 예상했기에 어떤 이론을 내놓아도 지지받을 수 있는 명성을 쌓기 위해 따개비 전문가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다윈이 학계의 신뢰를 얻고

자신의 진화 이론을 더 많은 동료에게 널리 알리는 발판이 되었지요.


그는 꼼꼼하고 체계적인 연구 결과로 본격적인 진화론의 토대를 세워 나간 철두철미한 과학자였습니다.


(2) 진화론을 믿지 못한 사람들


다윈은 오랜 시간 진화론을 연구했지만, 섣불리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주장은 자칫 기독교 교리와 세계관 전체를 부정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지요.


고민 끝에 그는 1859년 『종의 기원』을 출간하면서 진화론을 공식적으로 세상에 내놓습니다.


『종의 기원』은 초판 1250부가 당일에 매진되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비난과 옹호의 목소리가 엇갈리면서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지요.


‘원숭이와 인간의 조상이 같다면, 그 어떤 동물이든 인간의 조상이 아니라는 법이 있느냐‘는 거센 비판과 함께 다윈을 원숭이로 묘사한 만평들이 신문과 잡지에 등장했고, 동료 과학자들은 이런 조롱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합니다.


지식인들은 진화론파와 창조론파로 나뉘어

치열한 갑론을박을 펼쳤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860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벌어진 새뮤얼 윌버포스 주교와 토머스 헨리 헉슬리의 논쟁을 들 수 있습니다.


진화론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던 윌버포스가 진화론의 열렬한 지지자 헉슬리에게 빈정거리며 “원숭이가 당신의 조상이라면

할아버지와 할머니 중 어느 쪽을 말하는 건가요?”라고 묻자, 헉슬리는 “나는 진실을 대면하기 두려워하는 인간보다는

차라리 두 원숭이의 자손이 되겠습니다.”라는 대답으로 날카롭지만 유머러스하게 받아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진화론을 가장 격렬하게 공격한 곳은 교회였습니다.


신이 우주의 만물을 엿새에 걸쳐 창조했다고 믿는 창조론자들은

‘그렇다면 진화론자들은 최초의 생명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 논쟁은 과학계를 벗어나 종교계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참여하는 논란으로 확대됩니다.


하지만 정작 다윈은 이런 싸움의 선두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당시 건강이 안 좋기도 했지만, 그는 무엇보다 진화가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진화가 전개되는지 의문점들을 보완해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는 데 더 집중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논쟁 속에서도 『종의 기원』은 다섯 차례나 수정판이 발간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유럽 전역에 번역판이 출간되어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점차 증명되었지만, 그럼에도 진화론을 둘러싼 논쟁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3) 추상화 이해하기


『종의 기원』이 발간된 1859년,

다윈의 진화론을 두고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요?


다 함께 추상화를 들여다보며 그 시대를 상상해 봅시다.


그림 중앙에 반쯤 완성된 사람의 얼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윈 이전의 시대에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고, 그렇게 창조된 인간이 생명체 중에 가장 높은 서열에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반만 드러난 얼굴은 다른 동식물 위에서 군림하던 인간을 형상화합니다.


18세기 산업 혁명을 상징하는 망치가 등장하고,인간이 굳게 믿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부수기 시작합니다.


산업 혁명을 거치며 발전한 지질학과 박물학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자,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창조론에 대한 의구심이 싹트지요.


아래쪽에 있는 손바닥은 오래된 지층에서 발견된 생물체의 화석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화석은 지구의 나이가 얼마인지, 생명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측할 수 있게 하며 진화론의 증거가 되어 주었지요.


망치와 정을 든 두 손이 등장해 인간의 두뇌 속을 파고들어 갑니다.


여기에 등장한 두 손은 ‘종은 창조되었다’라는 통념을 깨트린 다윈의 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다윈은 인간이 진화된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생명체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에 몰두합니다.


왼쪽을 바라보는 붉은 얼굴은 진화론에 큰 충격을 받은 창조론자들을 가리킵니다.


진화론은 천동설을 진리로 여긴 세상에 등장한 지동설만큼이나 사람들에게 많은 혼란과 충격을 주었지요.


하늘길과 땅의 길 사이에서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는 두 얼굴이 서로 맞닿아 있네요.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대립은 오랜 시간 뜨겁게 이어졌지만,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한 진화론이 마침내 과학계에서 주류 이론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대중들도 점차 과학과 종교가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제 새로운 진리가 빛을 내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적, 종교적 통념을 깨고 생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다윈.

생명체를 향한 그의 탐구 정신과 열정이 『종의 기원』을 탄생시켰고,그 위대한 발견은 우리를 또 다른 진리의 세계와 마주할 수 있게 이끌어 주었습니다.


인간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된 것이듯

역사든,문명이든,세상의 모든 유용한 것들 또한 인간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필사적 생존을 위해 진화된 것이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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