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 년 전 이탈리아 반도 피렌체에서 살았던 마키아밸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 위인 중 가장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가난한 변호사의 아들로 1469년에 태어난, 그저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이렇듯 평범하게 태어난 마키아벨리가 서구 지성사에 오랫동안 극단적인 상반된 평가를 불러일으킨 이유는 무엇 때문
이었을까요?
그림 2. 마키아벨리 등 뒤편으로 쌓여 있는 인문고전 책더미 스케치 조각 그림
그는 14~16세가 유럽에서 번진 르네상스
문예부흥 운동의 중심인물로, 르네상스 정신을
실천한 대표적인 인문주의자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가난한 집안의 환경에서 자라나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했으나, 리비우스의 로마사,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타키투스의 역사 등 고대, 그리스 로마
고전을탐독하며 인문고전에 심취한 인문학 마니아였습니다.
그림 3. 여자 부츠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 위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스위스의 강대국 유럽지도
스케치 조각 그림.
마키아밸리의 이러한 뛰어난 인문학적 지식은 정규대학을 다니지 못했던 28세의 청년을, 당당히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를 총괄하는 제2 서기관으로 선출되도록 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림 4. 유럽지도 부분채색그림
그의 나이 43세인 1512년까지 15년 동안 약소국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수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당시 강대국이었던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스페인의 침략 위협 속에서도 노련한 외교관으로 눈부신 활동을 한 마키아벨리, 그는 이때 강한 나라를 위해서는 강한
군주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림 5. 돋보기 보는 마키아벨리 채색그림
정치, 군사적으로 약소국인 조국 피렌체의 안전과
독립을 위해서 마키아벨리는 피눈물 나는 외교적
활동을 하면서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정치란 현실세계에서 달성될 수 없는 이상적인
도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세계를
직시하며 사자의 힘과 여우의 간사함을 동시에 지닌 현실적인 군주, 강한 군주 만이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잘 보살피는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림 6. 전체 추상 그림
마키아밸리는 1512년 반역죄로 관직에서 물러나 날개꺾기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으며 노후를 보냈으나, 자신의 경험을 살려 로마사 논고, 전쟁술 등을 집필하였고, 지금까지 이탈리아 연극무대에서 공연되는 만드라 골라, 클리지 아 같은 희곡작품을 집필한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인문주의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