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모습

1-2, 밀의 <자유론> 시대적 배경, 빅토리아 시대의 빛과 그림자

by Plato Won


(1) 만국 박람회


“단언컨대 인류 역사상 최고의

구경거리였도다.

로마의 황제라 할지라도

이처럼 장엄하고 화려한 광경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으리라.”


1851년 5월 1일, 영국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개막된

제1회 만국 박람회에 바쳐진

찬사입니다.


빅토리아 여왕 부부가 수정궁으로

들어서자, 헨델의 합창곡 <할렐루야>가

위풍당당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세계 최초의 엑스포(EXPO)인

이 박람회가 영국에서 열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리던 영국은

산업 혁명의 산물인 최신 기계와 기술을 선보임으로써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자 했습니다.


박람회 장소인 수정궁은

조립식 철재 뼈대에 수많은 판유리를

얹어 만든 최신 공법,

마차를 타고 내부를 돌아야 할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대형 기관차, 다양한 증기선 모형,

기중기, 펌프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선보이기에 충분했지요.


이 밖에도 각국에서 진기한 문물이

출품되었기에 다섯 달 동안 무려 600만

명이 몰려들었습니다.


(2) 전성기의 이면


성공리에 끝난 이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한 알버트공은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입니다.


당시 여왕이 다스리던 영국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산업 혁명과 식민지 개척으로 얻은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유럽 대륙을 호령하게 된 것이지요.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의회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정착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여기에는 여왕의 러브 스토리도

한몫했습니다. 독일 왕족이자 여왕의

외사촌인 알버트공은 한없이 자상한 남편이었지요.


여왕은 번잡한 궁전보다 한적한 교외를

좋아했던 남편을 따라 여름마다 가족휴가를 떠났고, 정치에 개입하는 일이 자연스레 줄었습니다.


덕분에 여왕은 보수당과 자유당

사이에서 정치적 균형을 유지했고,

다수당의 수상이 정치 전반을 지휘하는

전통도 자리 잡았지요.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약소국에 대한 경제적 착취는 제국주의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산업화와 도시화로 빈부 격차가

심해짐에 따라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 간에 갈등이 빚어지게 되었습니다.


자, 그럼 『자유론』이 탄생한 19세기

영국 사회의 모습을 추상화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3) 추상화 이해하기


웅크린 채 도약을 준비하는

토끼의 모습이 보이는군요.


이 형상은 밀의 『자유론』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당시 영국은 산업 혁명을 계기로

정치와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던

시기였습니다.


유럽 변방의 섬나라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이지요.


영국 지도 위에 왕관이 비스듬히

얹어집니다.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라는 원칙을 표현한 것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권력에 집착하지

않고 실리를 추구했기 때문에

정치는 수상에게 맡기고도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겪던

의회 민주주의도 제도적으로 정착되어

정치적 안정기를 맞이합니다.


영국 지도 주변에 검푸른 바다와

인도 국기가 채색됩니다.


영국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인도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개척하여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습니다.


영국 지도에서 붉은색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이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영국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식민지를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한편,

도시로 몰린 하층민들이 노동자 계급이

되어 자본가와 대립하면서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계급 간의 갈등이 빚어진

것입니다.


밀은 황금빛 전성기 이면에 숨겨져

있던 영국의 그늘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포착한 어두운 그림자는 무엇이었을까요?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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