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을 깔고 앉은 악마의 대변인과도 치열한 토론을

2-6,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비판은 힘이 세다

by Plato Won
Photo by Plato Won,윤동주 문학관


(1) 중세 대학의 꽃, 토론



“신은 어떤 존재일까?”


“부활한 예수가 식사를 할 경우,

섭취한 음식물은 몸에 흡수될까?”


중세 시대, 파리 대학 신학과 교수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자유 토론의

주제들입니다.


전자가 수준 높은 형이상학적 문제인

반면, 후자는 구체적이면서도 기발한

발상을 보여 줍니다.


모든 참석자가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질문을 던지면 주최자가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되었기에,

웬만큼 박학다식하지 않으면 토론을

주최할 수 없었지요.


부담스러울 법도 한 이 자리를 통해

탄생한 스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당시에는 신의 권위를 존중하여,

『성경』과 학자의 의견이 다르면

『성경』에 따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논리와 이성이

토론의 바탕임을 인정하고,

간결하고 평범한 어휘, 알기 쉬운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했지요.


한편 중세 대학의 수업 역시 토론

중심이었습니다.


반대 주장을 이해하고 나서

자기주장의 근거를 확보함으로써

학생들은 자신의 논거는 튼튼하게,

상대방 논거는 무력하게 만드는 법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2) 가상의 반대자와 비판의 힘



“도덕과 인간에 관한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악마의 편에 선 것처럼

보이는 사람까지 모두가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밀은 기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악마의 편’에 비유하여

비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혹시라도 반대 의견이 존재하지

않는다면,가상의 반대자를 설정해서라도 자기주장의 근거를 설명하고

반론의 근거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하지요.


이처럼 어떤 주장에 대해 의도적으로

선의의 비판을 하는 인물을

‘악마의 대변인’ 또는 ‘악마의 변호인’

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가톨릭의 성인(聖人) 후보자

심사 과정에서 유래된 명칭입니다.


심사를 보다 공정하게 하기 위해

후보의 결점을 끈질기게 지적하는

‘악마’ 역할을 따로 두었던 것이지요.


반대자가 존재하면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고,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도 마련됩니다.


감정에 호소하거나 권위에 맹목적으로

의지하는 비판은 개인이나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경우,

비판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주장에 확신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러니 구성원들이 당연하게 믿고

따르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의 말을 경청하고

관용을 보여야만 합니다.


(3) 추상화 이해하기



토론에서 비판이 지닌 위력을

생각하면서 추상화를 함께

살펴볼까요?


희고 커다란 날개에 백옥 같은 피부,

하늘거리는 옷차림.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천사’의

이미지입니다.


실제 목격자가 거의 없는데도,

천사가 이렇게 생겼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요?


정의와 진리를 저울질하는 천칭.

그 한쪽 끝에 천사가 보입니다.


천사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어진

것은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는

의견임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한번 결론이 내려진 주장에

관해서는 모든 논의를 중단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밀은 이를 ‘치명적인 악습’이라고

표현한 바 있지요.


천사가 사라지고, 반대편에 등장한

악마! 여기서 ‘악마’는 어떤 주장에

대한 반론과 비판을 상징합니다.


모두가 받아들이는 의견에 대해

‘난 반댈세!’라고 외치는 사람이

등장할 때, 적당한 긴장이 흐르면서

토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자유론』을 깔고 앉은 악마의 모습은

토론에서 비판이 갖는 중요성을

나타냅니다.


비판이 없는 토론에는 부작용이

따릅니다.


이 경우에는 자기주장의 근거뿐만

아니라 그 자체의 의미까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밀의 경고입니다.


천칭과 함께 채색된 악마가

화려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반대 의견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악마의 대변인’처럼 가상의

반대자를 설정해서라도

반론을 제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사까지 화사한 빛을 띠게 되면서

천칭이 차츰 무게 중심을 잡아 가는

듯합니다.


이는 양쪽이 끊임없이 토론을 하면서

진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이익만 좇는 소피스트가

존재했기에,질문과 토론으로 진리에

접근하도록 이끈 소크라테스의 존재가

더욱 빛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주장이 옳다고 믿고,

그 믿음이 유지되기를 원하나요?


그렇다면 마땅히 부정적인 비판을

극복해야 합니다.


참다운 지식과 확고한 믿음은

치열한 논쟁을 통해서만 잉태됩니다.


‘진리’라는 목적지를 찾아 떠나는

‘토론’이라는 여정!


거기서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왔던 길을 돌아가는 시행착오도

겪곤 하지요.


그 길 위에서 ‘비판’은 더없이 고마운

이정표가 되어 줍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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