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토론의 강,그 너머에 진리가 자리한다

2-5,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살아 있는 진리냐, 죽은 독단이냐

by Plato Won
Photo by Plato Won


(1) 웅변의 달인, 키케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기원전 49년,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너면서 한 말입니다.


식민지 갈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그는

군대를 해산하고 귀국하라는 원로원의

명령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이에 내란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무장한 상태에서 루비콘강 너머 로마로 진격하지요.


권력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그는

결국 친자식처럼 아끼던 브루투스의

손에 암살됩니다.


“제가 카이사르에게 반기를 든 이유는

그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르가 죽고 다들 자유인으로

사는 것, 그가 생존해 있고 모두 노예로

죽는 것,여러분은 어느 쪽을 택하고

싶습니까?”


셰익스피어의 희곡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담긴

브루투스의 연설 장면입니다.


공화정 시대에는 로마 시민이라면

누구든지 연단에 올라,

귀족 정치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연단에서 공화정 수호를 절절하게

호소한 이는 또 있었으니,

키케로가 그 주인공입니다.


『의무론』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명문가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연설가에게서 귀족적

교양과 정치 기교를 배웠습니다.


변호사로 이름을 떨치는 한편,

공직에서도 행정 능력과 웅변술을

십분 발휘했지요.


(2) 토론의 강 너머의 생생한 진리



회의나 토론처럼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대부분은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웅변의 달인’ 키케로는

달랐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확실히 알기 위해

노력한 것만큼이나

상대방 주장을 이해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지요.


아마도 18세 때 그리스 내란을 피해

로마로 온 철학자 필론을 통해,

아카데미아 학파 특유의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접했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어떤 주장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 근거까지 완전히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평범한 수준에서 비판이

제기되었을 때,이를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상대방 주장의 근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면,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거나

기분에 따라 주장을 선택하지 말고

판단을 잠시 미루어 두는 것이

옳습니다.


비판과 토론의 기회를 차단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고집할 경우,

이는 진리를 아는 게 아니라 미신을

믿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토론 없는 진리가

오류보다 해롭고, 죽은 독단이나

다름없는 이유입니다.


(3) 추상화 이해하기



자, 그러면 토론을 통해 살아 있는

진리를 찾고자 했던 키케로를 만나러

로마 시대로 떠나 볼까요?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웅변가인

키케로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타당한 근거라고

주장하지요.


여기서 우리는 지성을 단련하는

방법과 토론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의 얼굴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군요.


수학처럼 모든 주장이 한 방향으로

쏠리는 분야의 경우, 반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상대방의 얼굴에 강렬한 색이

입혀졌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웅변하듯

크게 벌어진 입!


그런데 아까부터 키케로가 보이지

않는군요.다른 사람의 의견은 들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모습입니다.


천동설이 오랜 세월 동안 진리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동설의

객관적인 근거들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의견 차이가 생기는 분야라면

상반되는 의견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진리를 찾아야 하지요.


키케로가 화려한 존재감을 뽐내며

다시 등장합니다.


이제야 두 사람이 제대로 된 논쟁을

시작했나 봅니다.


이들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는

루비콘강은 서로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토론의 속성을 의미합니다.


키케로는 상대방 주장을 끝까지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비록 자신은 공화주의자였지만,

상대방이 독재를 꿈꾼 카이사르

일지라도 그의 말을 끝까지 경청해야

옳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도덕이나 종교, 정치의 경우,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주장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상대방 의견이 진리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증명하는 일에 주력해야

합니다.


상대방 얼굴이 스케치로 되돌아간

이유도 그 때문이지요.


상대방 얼굴에 다시 강렬한 색감이

입혀지고,루비콘강도 진한 빛을 띠고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상대방 얼굴이 키케로보다

크게 묘사되어 있군요.


이는 반론에 대한 비판이 논의의

대부분을 차지해야 한다는

밀의 주장을 은유적으로 보여 줍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다리가 붉게

빛나고,‘루비콘’이라는 영문이 거꾸로

새겨집니다.


치열한 토론의 강!

진리의 참모습은 그 너머에 있습니다.


물살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끝까지 헤치면서 건너가야 강 건너편에

닿을 수 있지요.


상대방 주장을 경청하고 기탄없이

토론을 펼칠 때,진리는 베일을 벗고

생생한 얼굴을 드러낼 것입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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