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生은 시련을 먹고 자라난다.

25. 시련 속에 피어난 군주론, 나의 무죄는 나의 가난이 증명한다

by Plato Won
나의 무죄는 나의 가난이 증명하고도 남는다.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나의 가난이 증명하고도 남는다.



1. 추상화 읽기

위대한 작품은 어떻게 탄생되는가?
작가의 시련을 영양분 삼아 자라나 꽃을
피운다.

"저녁이 오면 정장을 차려입고 옛 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들의 정원으로 들어가 지혜의
음식을 나누며 나는 이렇게 질문한다네

'어르신, 그땐 왜 그런 식으로 행동
하셨는지요?'

그럼 옛 어르신들은 나에게 친절하게 그때
그 시절의 숨겨진 진실들을 자세히 나에게
이야기해 주신다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역사에 대한
현실적 해석이 빛나는 책입니다.

인문고전이 시대 현실에 맞게 재해석되면서
그 깊이와 울림이 느껴지는 책이라면,
우리는 <군주론>을 읽으면서 오늘의 현실에
비춰 어떤 해석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억울하게 역적모의에 연루된 마키아벨리는
바르젤로 감옥에 갇혀 악명 높은 날개꺾기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무죄를 주장합니다.

"나의 무죄는 나의 가난이 증명한다."

그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혹독한
고문을 당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가난을 들어
무죄를 주장합니다.

이 말은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무죄를 변론하면서
근거로 제시한 말인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나의
가난이 증명하고도 남는다."라고 한 데서
빌려온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이처럼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냉정을 잃지 않은 강건한 인문주의자
였습니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명성을
날리다가 졸지에 비극의 벼랑으로 내몰린
이후 세상의 무관심과 배척 그리고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렸던 마키아벨리는 그런 처절한
순간에 <군주론>을 집필했습니다.

<군주론>은 1513년 12월 10일쯤에 탈고를
눈앞에 둡니다. 그해 3월, 마키아벨리는 대사면
의 행운을 만나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고 감옥
에서 풀려납니다.

풀려난 이후 만신창이가 된 심신을 추스르느라
적어도 수개월은 아무것도 못했을 것을 감안
하면 불과 수개월 만에 집필한 것입니다.

<군주론>에 대한 열정이 그만큼 뜨거웠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구상이나 밑 작업은 훨씬
그 이전부터 시작했을 테지만 말입니다.

산 드레아 시골 농장에 유배되어 정청
(政廳, 정치를 보던 관청) 출입까지 금지당한
그는 운명의 여신이 다시 한번 더 자신에게
미소 짓기를 학수고대하면서 <군주론>
집필에 매달린 것입니다.

그러나 혼신을 기울인 책의 출간이 출판업자
들에게 거절당하자 상심은 더욱 깊어갑니다.

마키아벨리는 애초에 <군주론>을 교황의
동생인 줄리아노 데 메디치에게 헌정할
작정이었지만, 그에게 실망한 나머지 교황의
조카인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합니다.

그러나 <군주론>이 그들로부터 외면당하자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접습니다.

그리고 피렌체의 미래 지도자를 꿈꾸는
청년모임인 루첼라이 정원 모임에 초대되어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과거 로마제국의 부활을
꿈꾸었던 마키아벨리는 이들 청년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이제 <군주론>은 진정한 군주가 될 만한
덕망 높은 미래의 젊은이들에게 바쳐진
책이 된 셈입니다.

마키아벨리는 루첼라이 정원 모임을 통해
비로소 솔직한 인간으로 돌아와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면서 미래의 지도자들을 가르칩니다.

지금까지 연극무대에 오르는 희곡도 그때
집필한 작품입니다. 그는 코미디로 세상
권력을 조롱하였던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인문고전을 통해 세상 시름을
잊고 성현들과 소통합니다. 그리고 미래 조국을
위해 저술 활동에 생의 마지막 불꽃을 사릅니다.

그렇게 온몸의 심지를 돋워 소진한 후에
쓸쓸히 생을 마감합니다.

추상 그림은

인문고전을 읽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모습 뒤로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독배를 들며
죽어가는 모습을 스케치로 그렸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전 생애는 인문고전 독서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의 외교를 총괄하는
제2 서기관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인문고전
을 심도 있게 읽고 사유하고 질문한 결과입니다.

<군주론>은 그가 평생을 애독한 리비우스의
<로마사 >를 통해 옛 로마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집필한 책입니다.

생활고로 고초를 겪으며 쓸쓸한 말년을
보내면서도 그는 시련을 조롱하고 운명에
맞서며 <군주론> 외에도 로마사 논고, 전술론,
피렌체사, 소설 카스트라카니 전기,
희곡 만드라골라, 그 밖에도 325편의 서간과
많은 시와 논평 등을 집필한 작가였습니다.

책을 읽고 있는 스케치 그림은 평생 책과
함께한 그의 이런 전 생애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고 누워있는
스케치 그림은 마키아벨리가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끝까지 거친 운명에
맞서며 자신을 변론한 그 한마디도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가져온 문장입니다.

"나의 무죄는 나의 가난이 증명하고도
남는다."

누워있는 스케치 그림은 마키아벨리의
고초를 나타냄과 동시에 쓸쓸한 노후와
생애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처절한 시련 속에 꽃핀 군주론, 위대한 生은 시련을 먹고 자라난다.


조각그림 읽기

조각그림 1.
책을 읽고 있는 마키아벨리 스케치 그림

시련을 조롱하고 가혹한 운명에 맞섰던
마키아벨리가 조국 피렌체의 외교 총괄자로
일한 경험을 살리는 한편 피렌체를 둘러싼
강대국 절대군주들의 행동을 고찰하고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영웅들과 비교하여
쓴 책이 <군주론>입니다

조각 그림은 군주론의 집필이 마키아벨리의
인문고전 연구와 외교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스케치 표정이 어두운 듯
보이는 것은 군주론의 집필은 마키아벨리가
가장 처절한 시기인 감옥에 갇혀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고 나온 직후에 집필된 것으로
위대한 작품은 작가의 시련을 먹고 자라난다
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각그림 2.
소크라테스가 누워있는 스케치 그림 추가

"나의 무죄는 나의 가난이 증명하고도
남는다."

이 말은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무죄를 변론하면서
근거로 댄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나의 가난이 증명하고도 남는다."라고 한 데서
빌려온 것입니다.

억울하게 역적모의에 연루된 마키아벨리는
바르젤로 감옥에 갇혀 악명 높은 날개꺾기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무죄를 주장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이처럼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냉정을 잃지 않은 강건한 인문주의자였습니다.

조각그림은 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각그림 3
전체 채색된 그림.

시련을 조롱하고 운명에 맞섰던 마키아벨리,
그는 조국 피렌체의 외교 총괄자로 일한 경험과
풍부한 고대 그리스, 로마 인문고전을 독서한
지식을 바탕으로 군주론을 집필합니다.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혔을 때 마키아벨리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떠올립니다.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소크라테스와
자신의 처지를 겹쳐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조롱하며 운명에 맞서 인류 지성사에 길이 남을
역작을 남깁니다.

마키아벨리는 단순히 피렌체의 조그마한
나라의 외교수장으로 살다 간 그저 그런
한 인물이 아니라, 세계 지성사에 큰 반향과
울림을 준 위대한 사상가이자 인문주의자로
수백 년 동안 우리의 영혼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시련을 조롱하고 운명에 맞선 그의
강인한 의지였습니다.

위대한 작품은 작가의 시련을 먹고 자라나듯
만약 우리의 生이 깊은 시련과 마주친다면
위대한 生을 위한 전주곡이자 신의 혜택이라는
점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Plato Won


●PARALLAX 바탕 디자인이 기하학 도형인 이유는?

●인천 부천 지역 학부모 세미나 9월 23일 월 오전 10시


PARALLAX 로고 바탕은 기하학적 도형이다. 플라톤의 세운 아카데메이아의 정문 푯말에 적힌 '기학적을 모르는 자 이 문을 통과할 수 없다'를 사유하고 질문해서 얻은 결론이다.
인천 지역 학부모 세미나 개최 9월 23일 월 오전 10시 ~1시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약자들이여! 울지 마라, 인생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