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그림은 안과 밖이 똑같은 뫼비우스 띠의 양끝에 도덕정치를 외치는 플라톤과 현실정치를 외치는 마키아벨리를 양극단에 배치시켰습니다.
한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자의 자격요건을두고
서로 정반대의 의견을 말하는 것 같지만 두 성현의 궁극적인 정치의 목적은 국민 전체의
행복입니다.
그 방법은 전혀 다른 것 같지만 돌고 돌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뫼비우스 띠처럼 추구하는 목적은 동일하다는 의미에서 뫼비우스의 띠를 통하여 군주론을 표현 하였습니다.
왼쪽에 있는 플라톤의 국가론을 정반대로 해석하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된다는 것을 추상화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플라톤과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국가의이상과
군주의 리더십은 각각 달라 보일 수있으나
국민 전체의 행복'이라는 지향점은 같아서 <국가론>을 뒤집으면 <군주론>이요, <군주론>을 뒤집으면 <국가론>인 것입니다.
<군주론>은 시대 상황에 따라서는 폭군에게 교활한 계략을 전수하는 책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뒤집어 해석하면 군주라면 저러한 교활한 성품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국민은 잘 알고 미리미리 조심해서 대처하라는 의미로 군주론을 이해하면 어떨까요?
강자를 대하는 약자의 처세서로 읽힌다면 군주론은 약자에게도 의미 있는 인문고전이 아닐까요?
이처럼 <군주론>은 관점에 따라 극단적인 상반된 평가를 받지만,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를 이룬 선구적 정치학 고전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15세기 무렵부터 피렌체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힌 플라톤의 <국가론>은 이상 국가의 이상적인 군주론을 펼칩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플라톤의 이상주의적 국가론을 비판하며 경험 철학에 바탕을 둔 실현 가능한 정치론을 펼칩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고 탐구하여 <군주론>을 탄생시킵니다.
마키아벨리 역시 플라톤의 이상주의 철학을 배제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주의 철학을 채택하는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감으로써 <군주론>을 정치학 최고고전의 반열에 올립니다.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수백번
탐독하고 그 서평과 해설을 붙인 <로마사논고>를 펴냄으로써 당시의 이탈리아 반도의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정치적 비전을 제시한 당대 최고의 인문주의 자로 평가받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제시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중용을 실천할 때
가장 이상적"이라는 조언을 토대로 삼으면서도 지리멸렬한 이탈리아 반도의
난맥상과 약소국 피렌체의 험난한 현실을 그런 이상적인 도덕론만으로는 헤쳐 나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합니다.
그런 인식의 발로가 <군주론>입니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비난을낳고
이내 금서로 묶일 만큼 크게 논란이 된책이지만,
군주란 절대적인 선악이나 옳고그름의 잣대만으로
현실을 바라봐서는 안 되고 전체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적절히 간교를 섞어가며 대처할 수밖에 없다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현실에서 외면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거의 모든 군주가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런 간교를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것이 현실정치입니다.
우리의 가여운 친구 마키아벨리는 쓸쓸히 노년을 보내며 힘없는 약자들에게 당부합니다.
"약자들이여! 군주의 인자한 앞면만 보지 말고 뒤 속에 숨어있는 숯검댕이 같은 본심을 잘 보고 조심하라"라고
마키아벨리는 적나라한 현실을 과감하게 폭로하면서 힘없는 국민들에게 몸조심을 당부하는 글을 써놓고도 마치 군주만을 위한 계락서인 것처럼 책 제목만 <군주론> 으로 포장한 것은 아닐까요?
조각그림 읽기
조각그림 1 뫼비우스의 스케치 그림
군주론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양면성을 지닌 인문고전입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뒤집어 해석하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요, 역으로 뒤집으면 <군주론>은 곧 국가론인 것입니다.
동시에 <군주론>은 군주의 처세를 담았지만 그 계락을 알고 잘 대처하면 백성들의 처세서가 되기도 합니다. 강자의 지첨서가 곧 약자의 처세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림의 뫼비우스 띠는 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각그림 2. 왼편 플라톤을 의미하는 스케치 그림 채색
15세기 무렵부터 피렌체의 인문주의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힌 플라톤의 국가론은 이상적인 국가론을 펼칩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을 실천 할 때 가장 이상적인 국가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러한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인문고전들을 탐독하고 자신의 외교 경험을 살려서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고 탐구하여 탄생되었습니다.
조각그림은 왼쪽 뫼비우스의 띠를 채색함으로써
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각그림 3. 전체 채색그림
마키아벨리는 생각합니다. 도덕정치로는 냉험한 현실정치의 난맥상을 헤쳐나갈 수가 없다고.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냉혹한 현실은 지혜의 지혜를 지닌 철인의 러더쉽으로는 안된다. 가면을 쓰고 때로는 여우의 간교를, 때로는 사자의 용맹함을 지닌 리더십이 더 절실하며 이탈리아 반도를 구해줄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기다리며 군주론을 집필합니다.
마키아벨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모어는 정치적 공상소설 <유토피아>를 썼습니다.
당시 유럽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꿈의 국가 유토피아른 제시한 이 작품은 냉철한 시선으로 현실적 방안을 제시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는 그 결이 사뭇 다릅니다.
당시 유럽의 군주들은 자신의 재산이나 영토를 늘리는 데만 전념하는 가운데 백성들은 땅을 빼앗기고 노동을 착취 당하고 있었습니다.
국가나 법률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기 위한 부자들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식이 팽배했습니다.
유토피아는 모든 시민을 평등하게 대하고 화폐도 없으며 모든 재산은 공유됩니다. 유토피아 국민은 6시간만 일하고 사색을 즐깁니다. 여가시간에 책을 읽고 받고 싶은 교육을 받으며 살아가는 정말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 유토피아를 꿈꾸는 책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입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이나 토마스모어의 <유토피아>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 결이 다 다르지만 국민 전체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통치자는 어떠해야하는가? 어떤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그 해결책을 제시한 인문고전 명저들입니다.
인문고전이 울림을 주려면 사유하고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우리에게 던지는 사유와 질문거리들은 무엇일까요?
리더는 어떻해야 할까요?
대한민국은 압축된 성장으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해방을 전후한 건국세대, 건국세대를 이어받은 산업세대 산업세대를 이어받은 민주화세대가 이 대한민국을 약간의 잡음들이 있었으나 훌륭히 잘 이끌어 왔습니다.
하이데거는 말했습니다. 매순간 세상은 변하고 변한다. 세상 모든 만물이 죽었다 새롭게 태어난다고,
대한민국의 모든 리더층들은 미래를 외치나 미래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크게 외칩니다.
"내가 이 사회를 정의롭게 혁신해서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그 일을 나만이 잘 할 수 있다고."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미래를 외치면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멍청이들입니다.
세상은 변해도 확 변했습니다.
과거 민주화세대의 방식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겠다는 생각 자체가 미래를 가로막는 암덩이입니다.
미래세대는 민주화세대를 이어받는 미래세대에게 그 바통을 넘겨야 합니다.
진정한 리더라면 탁월한 시선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대처해야 합니다
적당한 성공은 계략과 전술로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미래를 열려면 이제 리더들에게 탁월한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 탁월한 시선은 남을 속이고 홀리고 베끼고 익히는 기술만으로는 안됩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바탕이 된 고귀한 가치 철학이 그 조직에 깃들 때 창의적 미래가 열립니다.
여러분들의 리더십은 전순적입니까?전략적입니까?
정해진 판에 전술을 고민합니까? 새로운 판을 짜려는 전략을 고민합니까?
법률, 경영, 경제. 기술 같은 도구가 필요합니까? 문화, 예술, 철학 같은 가치 기준이 필요합니까?
조직이 처한 상황에 따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리더십이 필요할지 플라톤의 국가론 리더십이 필요할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시선의 높이가 인생의 높이를 결정합니다. 시선의 높이보다 높은 인생은 없습니다. 리더의 시선은 탁월한 시선이어야 합니다.
탁월한 시선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 철학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를 개척하는 것은 탁월한 시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