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튼, 역사

역사와 결혼한 역사 선생님의 파란만장 러브스토리

by 여름비 CLIO

*이 글은 현재 참여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에서 멤버들과 같이 정한 글감인 '암튼, @@@'이라는 주제로 쓴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글쓰기 모임에서는 마지막 글이지만, 이 브런치 북에서는 첫 번째 글이 되었네요. 글쓰기 멤버들과만 돌려볼까 하다가, 나에 대해서 되짚어 볼 수 있는 글이었어서 공개를 해봅니다. 아마 다른 제 글을 읽을 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글을 시작으로 자주 업로드 해보도록 하도록 하겠습니다.


2024년 하반기에 친구들과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매주 글을 쓰는 모임이었지만, 게으름과 먹고사니즘의 복합적 영향으로 두어 번 정도만 글을 업로드한 것 같다. 성실히 매주 글을 쓰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좋았어서 모임에 계속 남아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다른 분들의 글을 읽는 것조차 못했다. 아.. 이 모임에 계속 있어도 될까. 그럼에도 사람들이 좋아서 '탈퇴는 없다! 글쓰기 모임의 정해진 기한이 얼마 안 남았지만, 그전에 한 편이라도 써보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방장님이 마지막엔 공통된 주제로 글을 써서 책으로 만들자고 제안을 했고, 그렇게 해서 정해진 주제가 '암튼, @@@'이다. 이번의 글은 꼭 써야지, 하고 다짐하고도 한참을 미뤘다.


모임 멤버들이 주제를 정해서 글을 올렸고, 그렇게 주제 리스트들이 차곡차곡 채워지는 걸 보면서 내 마음은 조급해졌다. 아, 나는 뭐에 대해서 쓰지? 쓰고 싶은 게 많기도 하지만, 또 없기도 했기 때문에 뭐에 대해서 써야 할지 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은 지나가고, 글도 하나둘씩 올라오는데 뭐에 대해서 쓸지 여전히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역사'에 대해서 써보기로 했다. 정확히는 나와 역사의 인연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내가 속해있는 우리의 단톡방에서는 가끔 상황극이 벌어진다. 많은 레퍼토리 중 하나가 수업시간 상황극이다. 다들 내가 역사 선생님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선생님~ 오늘 **** 하니까 다른 이야기 해주세요~' 하고 누군가 농담을 걸어온다. 그러면 내가 '이 짜슥들, 시끄럽다! 얼른 책 피라~ 반장, 오늘 멫쪽이고?' 하고 대답을 한다. 그러면 '에이~ 선생님 첫사랑 이야기 해주세요~'라고 하면 '뭐라카노, 내는 역사랑 결혼했다. 자자(탁탁 교탁을 두들기며), 빨리 책 피라. 오늘 메칠이고, 10번 일어나서 123쪽 일거바라~' 이런 농담들을 한다. 이런 농담(상황극)을 몇 번 하고 났더니, 우리 단톡방에선 '역사랑 결혼한 역사 선생님'이 되어버렸다.


다른 역사 전공자들이 들으면 박장대소할 일이지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선 내가 역사에 미친, 최고의 역사 선생님이다. 물론 나도 내가 많이 부족하고,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여전히 역사가 좋고, 앞으로도 계속 역사와 함께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나의 운명, 역사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내가 처음 역사를 만난 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다. 웃긴 이야기처럼 들리긴 한데, 정말이다. 엄마가 내가 역사 공부를 하는 것을 보고선, '내가 니를 임신했을 때 그렇게 삼국지를 많이 읽었는데, 그래서 니가 역사 공부를 하는 갑네. 이랄 줄 알았으면 법전 공부나 의학 공부를 할 걸 그랬지..' 하며 회상인지 후회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종종 하신다. 그런데 내가 엄마 뱃속에서 삼국지를 많이 읽어서 그런가, 태어나고 나선 한 번도 안 읽었다. 그때 질려버렸나 보다. 역시 조기교육은 그다지 좋은 교육방법이 아니다. 하고 싶을 때 하는 게 최고다. 뱃속에서부터(?) 역사 공부를 하고 태어났지만, 실제로 내 눈으로 직접 역사를 읽기 시작한 건 중학교 때였다. 집안 분위기와 형편상 교과서 외의 책을 사서 본다는 건 상상도 못 했고, 근처에 도서관도 없었기 때문에 역사라는 학문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중학교 국사 시간이 태어나서 처음 공부하는 역사공부였다. 운명이었는지, 처음 역사를 배운 그해의 담임선생님이 역사 선생님이셨다.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카리스마가 대단하신 분이셨고, 수업은 너무 재밌었다. 근데, 외워야 할 건 왜 그렇게 많은지.. 좋다가도 싫었다. 재밌다가도 질리고. 그렇지만 수업 자체는 너무 재밌었고, 시험만 안 치면 너무 좋은 수업이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은 다른 반은 하지 않는 학급문집 만들기와 우리 반 체육대회, 민중가요 부르기 시간 등등을 만들어주셨다. 그 덕분에 역사를 공부한 사람에 대한 동경이 생겨났지만, 그때까지는 역사가 내 운명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는데, 입학식날 '역사는 내 운명'이 되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학교였는데, 꽤 많은 학생을 서울대로 보낸 것으로 유명한 학교였다. 그래서 입학한 첫날부터 빡센 수업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첫 수업이 또 하필이면 '국사'였다. 수업종이 치고서 들어오신 역사 선생님은 무척이나 젊은 남자 선생님이셨다. 15살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은 30대 총각 선생님. 이제 갓 17살이 된 어린 소녀에게 선생님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 멋져 보였다. 그런데 말하는 것도 너무 멋있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역사라는 학문은 기록의 학문이라는 것, 개인의 기록들이 모여 전체의 기록이 된다는 것, 기록된 것만이 기억된다는 이야기들을 하셨고, 그래서 너희들이 기록을 남기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 국사 필기 공책에 한국의 역사만 기록하지 말고 너희의 역사도 같이 기록하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별 말이 아니었는데, 그때의 나는 선생님의 후광 때문이었는지 '와.. 역사가 이런 것이었어? 사학과에 가면 저렇게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건가?' 하며 그렇게 고등학교에 입학한 첫날 내 진로를 결정했다. 3년 내내 한 번도 그 마음이 바뀌지 않았고, 마침내 모든 어른들이 반대하는 사학과에 진학을 했다.


물론 중간에 역사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할 뻔한 적도 몇 번 있다. 지금은 무척이나 비루한 몸뚱이이지만, 어릴 적엔 꽤나 날렵하고 운동신경이 좋아서 체육 선생님들이 탐을 내는 인재였다. 그래서 운동부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자주 권유를 받았지만, 저는 운동은 취미로만 하겠습니다, 하며 체육부장을 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또 고2 때엔 불교 철학과 물리가 너무 재밌어서 사학이 아닌 물리학과나 철학과로 진로를 바꿀까 고민을 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역사가 제일 재밌었다. 고등학교 때는 내가 역사(와 역사 선생님)를 좋아한다는 걸 전교생이 알 정도였다. 왜냐하면 학교에 있을 때 틈만 나면 역사 선생님 곁을 알짱거렸기 때문이다. 매 국사시간마다 선생님한테 음료수 올려드리고,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을 찾아가서 질문하고, 선생님한테 새로운 역사책이나 문제집이 있으면 받아오고, 거기에서 모르는 거 있으면 또 물어보러 가고. 어쩌면 그때가 내 생에 가장 힘들었지만 재밌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모르는 지식을 바로바로 알려주는 선생님이 있었기에.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들이 많이 힘드셨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역사에 미친(?) 채로 3년을 보내고 대학교 사학과에 진학을 했다.


대학에 와서 느낀 건 나는 정말 별 거 아닌 인간이구나, 하는 거였다. 역사에 미친(?) 인간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소위 말하는 '역덕'들이 천지삐까리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 평범하다 못해 초라했다. 와.. 나 여태 뭐 하고 산 거지, 싶은 마음이 매 순간 들었고, 내가 역사를 계속 공부해도 되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계속 역사 공부하는 게 맞을까? 나는 저들보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생각보다 공부하는 게 적성에 맞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지금이라도 다른 거 할까? 승산이 없을 것 같은데 취직 잘되는 과로 전과라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재수할까? 하는 생각을 조금 오래 했던 것 같다. 그런데 2년 정도 역사 공부라는 걸 해보니 역사 공부는 내가 했던 고민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역사 공부에 대해서 해야 할 고민은 내가 이 공부를 계속할 자신이 있는가였다. 머리가 좋지 않으면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보면 될 일이고,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도 하다 보면 적성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취직.. 그래 취직은 좀 힘들겠지만, 설마 굶어 죽진 않겠지. 남들보다 더 천천히 가야 할 거고, 내 적성에도 안 맞아도 계속 들여다봐야 할 건데, 그리고 어쩌면 오래도록 배고플 텐데, 자신이 있나? 그럴 자신은 있었다. 남들보다 특출나진 않지만 그래도 이 역사라는 것을 계속 배우고 공부할 자신은 있었다. 그때까지 세상에서 역사만큼 재밌는 게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도 그렇고 말이다. 물론 가끔 내 정신을 빼앗아가는 재밌는 것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다시 돌아서 역사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역사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게 말이다. 그래서 학부를 졸업하고 나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당시 여건상 바로 대학원에 갈 수 없었고, 또 억지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학부 때 내내 장학금을 받거나, 근로장학생을 했기 때문에 학비나 생활비가 많이 들진 않았지만, 대학원생이 되는 건 학부생과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대학원은 내 힘으로 진학하고 싶었다.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역사공부는 잠시 미뤄두고 일단 취업을 먼저 하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취업은 쉽지 않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대학원을 갔더라면 석사 졸업은 했을 텐데. 그래도 어쨌든 취업은 했다. 내 전공과 관련된 회사에 취직하고 싶었는데, 운 좋게도 역사를 가르칠 수 있는 회사였다. 교육여행을 하는 여행사였는데, 교실에서 수업하는 게 아니라 역사 현장에 가서 가르치는, 일종의 답사와 같은 일이었다.


이건 너무나 내 적성이었다. 학부시절에도 답사 가는 게 너무 좋았고, 답사준비위원도 여러 번 했었기에 '내가 좋아하는 걸 일로 할 수 있다니, 덕업일치란 이런 것인가' 하며 이런 일자리를 찾은 게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남들 앞에 서는 게 쉬운 건 아니었다. 내가 아는 걸 타인에게 말해주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 초반의 강의는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점점 재미가 붙었고,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일은 일이었다.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진행되도록 만드는 일도 같이 해야 했기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일주일에 7일을 일했다. 평일에는 회사의 업무를 도맡아서 했고, 주말에는 답사와 탐방을 진행해야 했다.


이 회사에서의 일이 내 적성에 딱 맞았고, 내가 꿈꾸던 일이었지만 딱 하나 단점이 있었다. 이제 시작하는,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 회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규칙을 하나하나 만들고,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일이 돌아가게 만들고.. 회사의 많은 부분을 내가 맡아서 해야 했다. 이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이 없어서 말이다. 누군가에게 맡겨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결국엔 내 일이 되어 돌아왔다. 어쩌면 처음 시작하는 회사들이 다 겪어야 할 일이긴 할 테다. 하지만 이제 겨우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에겐 꽤나 무리였다. 2년 넘게 쉬지 않고 일을 했고, 결국 체력적으로 한계가 찾아왔다. 무엇보다도 내가 제일 참기 힘들었던 것은 내 강의의 질이 너무나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늘 수면부족에 시달렸고, 식사는 대충 때우다 보니 건강도 안 좋아졌고, 그게 강의에도 영향을 미쳤다. 해야 할 말을 놓치고, 잊어버리고.. 다른 업무에 치여서 강의를 준비하고 연습할 시간이 부족해 그저 그 시간을 채우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잦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너무 자존심이 상했고,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일반대학원 사학과에 진학했다.


일이 힘들어서 대학원에 가다니. 가까운 몇 사람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나보고 미쳤다고 했다. 특히 부모님의 반대가 극심했다. 부산에 있는 학교가 아닌 서울에 있는 학교에 가겠다고? 회사도 떼려 치고 서울로 이사를 한다고? 근데 지금 너 나이가 몇 살인줄 알아? 남들은 결혼해서 애기 낳고 학부모가 될 나이에 너는 대학원을 간다고? 그러면서 2달을 넘게 부모님과 다툼을 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던가. 이미 내 맘대로 원서 넣고 면접 보고 부모님께는 통보(?)를 했다. 내가 하겠다는데 뭐 어쩌겠나.


그런데 대학원 면접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남들은 박사 논문 쓸 나이에 석사 입학을 하신다고요? 집에 돈은 좀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사학과 면접에서 들을 줄이야. 공부에 나이가 어딨냐며 무모하게 서울로 간 내가 너무 순진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어디 기죽어 살 사람인가. 대학원 다니는 동안 정말 토 나오도록 열심히 공부했다. 딱 5년을 기약하고 서울로 왔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자취방은 학교 후문에서 5분 거리로 얻어서 '집 - 연구실 - 도서관' 챗바퀴 돌 듯 계속 다녔다. 서울로 이사 왔다고 하니 다들 '서울의 어디 가봤냐, 거긴 가봤냐' 하고 물어봤지만 1년 동안은 정말 아무 데도 안 가고 공부만 했다. 아침 9시에 학교에 가서 10시, 11시쯤 연구실을 나왔다. 발표가 있을 때면 새벽 3시에 귀가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지. 공부만 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그 공부가 너무너무너무 힘들어서 연구실에서 집에 올 때면 엉엉엉 울면서 걸어왔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나이에,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이곳에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그래도 1년이 지나니 조금 수월해졌고, 익숙해졌다. 그렇지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졸업을 하고 싶어서 악착같이 석사 논문 쓰고 다섯 학기 만에 석사 졸업을 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났는데, 길이 안 보였다. 학위를 받고 나면 뭔가 길이 보일 줄 알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회는 내가 입학하기 전보다 더 어려워졌고, 나는 3살이나 더 먹어버렸으니,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위가 프리패스증도 아닌데 왜 그리 낙관적이었을까. 나는 도대체 무얼 하려고 이 공부를 했을까. 이 공부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졸업을 했으니 이제 밥벌이를 해야 할 건데, 무엇을 하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을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내가 하고 싶은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들을 하게 되었다. 콘텐츠 제작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서 시나리오를 쓰고, 입찰을 알아보고,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정말 3년 동안 내가 공부한 것과는 전혀 관련없는 일들을 했다. 정말 내 공부가 하나도 쓸모없는 일들이었다. 나는 3년 동안 왜 그렇게 힘들게 공부한 거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이게 아니잖아? 그래서 다시 다른 일을 찾았고, 그렇게 서울의 모 박물관의 교육강사로 임용이 되었다. 그렇게 해피엔딩이면 좋았으련만. 그랬으면 지금 나는 서울에 있었을 텐데. 역시 현실은 만만찮은 곳이고, 결국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의 다짐대로 5년을 채웠으니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내려온 게 2019년 8월이었다. 부산은 서울보다 일자리 찾기가 더 힘들었고,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자금이 필요해서, 작은 중소기업에서 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페이는 적지만 출퇴근 시간이 정확하고, 일이 여유로워서 특정 기간을 제외하고는 업무시간에 내가 공부할 수 있는 그런 회사로 취직했다. 회사를 다니며 공부하고 퇴근 후에는 내 강의를 하려고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운이 좋았던 걸까, 나빴던 걸까. 그해 겨울에 코비드-19라는 전염병, 그러니까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면서 전 세계가 올 스톱하였다. 그래서 내가 진행하려던 강의도 무기한 연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무기력하게 있을 순 없는데. 내가 역사로 밥벌이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었던 걸까. 코로나 국면이 지속되는 동안 계속해서 바보 같은 생각만 떠올랐다. 공부는 개뿔, 그냥 다니던 직장이나 다니면서 돈이나 벌 걸. 그 공부가 특출 난 공부도 아닌데 뭐 하러 했냐. 이렇게 나를 갉아먹는 생각들 때문이었을까.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망가져서 두 번이나 수술을 했다. 하.. 진짜 역사랑 나는 같이 갈 운명이 아닌가. 진짜 우리는 갈라서야 할까, 고민이 깊어질 무렵 전염병은 서서히 종식되어 갔고, 나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부산의 한 역사관이 개관을 했다. 원래 있던 역사관을 확장, 리모델링을 하면서 2024년에 새롭게 문을 연 것이다. 그러면서 신규강사를 채용했는데, 운 좋게도 합격했다. 정규직이 아니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거라 더 좋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내 고향 부산의 역사를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어서 무척 좋다. 모든 것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집중하고 있는 때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공교육에서 배우는 역사는 국가의 역사, 수도의 역사, 지배자의 역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부산에 살고 있을지라도 학교에서 부산의 역사를 배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애써 찾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게 지역의 역사이다. 자신의 고장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 역사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내가 하고 있다니 행복한 일이다.


나는 역사를 왜 좋아하는 걸까.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 의해서 걸러지고 남은 것들이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것들을 통해서 과거의 사람들의 생각을 추론해 보고 그들을 이해하는 것, 너무나 매력적이지 않는가. 그 점이 너무나 좋아서 여태 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좋은 걸 나만 알고 있기 아까우니까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떨리고 두려움에도 사람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한다.


역사라는 학문은 공정한 학문이 아니다. 가치중립적인 학문도 아니다. 굉장히 가치판단적 학문이고, 그래서 좋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는 게 너무나 중요한 학문이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다. 과연 내가 옳은 가치판단을 하고 있는지, 내가 전달하는 것이 정말 맞는 내용인지, 옳은 내용인지. 매 강의 순간 조심스럽고, 강의가 끝날 때마다 내 입에서 나온 모든 말들을 복기한다. 이런 이유로 강의를 하는 게 너무 큰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역사 강의를 하는 건 너무나 즐겁다. 현재의 모든 것은 과거에서 왔고, 그래서 과거를 이해하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를 통해서 사람들이 몰랐던 것을 알고,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큰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답을 찾는 얼굴을 볼 때면 내가 역사공부하기를 참 잘했구나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돌고 돌고 돌아 다시 역사공부를 하고 가르치게 된 게 아닐까.


사실 아직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의 반도 못 이뤘다. 이제 겨우 발을 디뎠다고나 할까. 가끔은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조급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거 해서 뭐 하나, 한다고 되려나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결국 돌고 돌아 여기 이 길에 왔듯이, 결국은 내가 하고자 하는 바에 닿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바는 다른 글에서 또 이야기하기로 하고. 역사가 나를 먹여 살릴 거다. 암튼,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