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된 물고기들의 산, 그리고 소원 들어주는 바위 2

밀양 만어사 2

by 여름비 CLIO

https://brunch.co.kr/@inmunsuda/19

(지난 글에 이어서..)


만어사의 건축물 중 가장 외따로 떨어져 있는 미륵전. 이름대로라면 전각 안엔 미륵보살이 앉아계실 것 같지만, 커다란 바위가 그 전각을 차지하고 있다. 아니, 웬 바위가 여기에 있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바위에 정성스럽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위에 무슨 영험함이 있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기도를 하는 걸까. 이 바위에 깃든 전설을 안다면 이해가 될.. 지는 모르겠다.

만어사 미륵전. 저기 안에 아주 큰 바위가 있다.

아주아주 먼 옛날, 동해의 용왕의 아들이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고, 죽기 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수행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이에 용왕은 무척산의 한 신통한 스님을 찾아가 자신의 아들이 수행하기 좋은 장소를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그 스님은 길을 떠나다 발길이 멈추는 곳이 인연이 될 장소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용왕의 아들은 그 길로 길을 떠났고, 왕자가 길을 떠나니 당연 수많은 종류의 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다고 한다. 그렇게 길을 가다 멈춰 쉰 곳이 여기 만어산이고, 이후 용왕의 아들은 아주 큰 바위로 변해버렸는데, 그것이 바로 미륵전 안에 있는 미륵바위이다. 그리고 미륵전 앞에 무수히 깔려있는 돌은 용왕의 아들을 따라온 물고기들이 변해서 된 것이다. 삼국유사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형태의 설화가 이 미륵전에 녹아있다.


이 이야기를 듣고선, 만어산이 부처님의 그림자라서 그 그림자에 들어서는 순간 용왕의 아들은 돌로 변해 부처님의 그늘 아래에 머물러 있기로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용왕은 자신의 아들이 이렇게 돌로 변해버릴 것을 알았다면 아들이 길을 떠나도록 해주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 미륵전에서 아이를 갖고 싶은 사람들이 간절히 기도를 하면 득남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게 용왕이 자신의 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기도하는 신자들에게도 불심이 짙은 아들이 태어나길 바라서 소원을 들어주는 걸까.

만어사 앞에 펼쳐진 무수히 많은 돌들. 이 돌들을 두드리면 쇳소리가 난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든, 또 다른 전설이든, 만어사는 용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승되어 오는 곳이다. 용은 불법을 수호하는 중요한 신 중 하나이고, 그리고 고려 명종 때 지어진 사찰이라는 정확한 기록이 있음에도 이 사찰이 가야 김수로왕이 건립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있다. 아마도 가야의 역사를 기억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는 아닐까. 역사책마저 사라져 버려 그 존재가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한 이들의 마음이 이 사찰에 녹아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사찰에 가야에도 불교라는 고등종교를 받아들였다는 걸 기록해두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작은 사찰이지만, 꽤나 밀도 높은 전설이 녹아있는 만어사다. 그렇지만 나에게 만어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소는 뭐니 뭐니 해도 대웅전 앞마당 한쪽에 있는 소원 들어주는 돌이다. 대웅전 - 삼성각 - 미륵전 순서대로 둘러보고 마지막은 이 소원 비는 돌 앞 평상에 앉아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만어사 관람(?) 코스이다. 돌에 소원을 간절히 빌고 돌을 들어 올렸을 때 돌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럼 이 돌이 원래 무거운 거 아닌가 할 수 있는데, 돌은 묵직하긴 하지만 아주 어린 어린이 정도가 아니라면 충분히 들어 올릴 수 있는 돌이다. 이루어질 소원이라면 돌이 안 들린다고 하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스멀스멀 의심이 떠오른다. 저 돌이 정말로 안 들리는 거 맞아? 그냥 본인이 안 드는 거 아니야? 그래서 시험을 해보았다. '남북통일되게 해 주세요' 돌이 가볍게 들린다. '돈벼락 맞게 해 주세요!!' 정말 너무 가볍네.. 그럼 진짜 원하는 소원을 빌어볼까.. 지금 전 국민이 원하고 있는 소원을 빌어보았다. 아.. 돌이 안 들리네? 돌 밑에 초강력 자석이 붙은 것 같다. 오. 그럼 한 번 믿어볼까?

소원 비는 돌

사람들은 어떤 간절한 소원들을 가지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로또에 당첨되게 해 주세요'라는 소원을 비는데, 정말 대부분 돌이 아주 가볍게 들린다. 이걸 내가 어떻게 알았냐면, 다들 돌이 가볍게 들리고 나면 멋쩍어하면서 '에잇 로또 당첨 안 되는가 보다..'라고 읊조리기 때문이다. 혹시 로또 당첨을 빌었는데, 돌이 안 들려서 조용히 속으로만 환호성을 질러서 내가 못 본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무튼 로또 당첨 소원은 이뤄지기 힘든 소원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불로소득을 제일 첫 번째 소원으로 꼽는다는 건, 한편으로는 씁쓸한 일이기도 하다. 더 이상 노동소득 - 그러니까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버는 것-으로만 만족하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돈이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니 더 돈이 많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 그 소원은 안된다고 하는 건, 여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돈을 벌라는 의미일까.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 쉽게 나간 돈은 니 돈이 아니다. 이런 의미일까. 아무튼 로또 당첨 소원은 이뤄지기 힘든 것 같으니, 다른 소원을 빌어야겠다. 아참, 나는 로또 안 사지.. 근데 로또도 안 사면서 이런 소원 비는 건 반칙 아닌가..


사람들이 또 많이 비는 소원 중 하나가 가족의 안위와 건강이다.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 주세요'라는 소원을 많이들 빈다. 가족이 아프다는 것은 그냥 아프다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냥 안타까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족에게 있어 가족 구성원의 병환은 돌봄이 필요해진다는 의미이고, 만약 그 돌봄을 오롯이 가족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면, 그 가정은 감옥이 될 수도 있다. 아마 사람들도 '아프다는 것'의 그 이면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의 건강과 안위를 비는 것이 아닐까. 나의 온전한 삶을 위해서라도 가족 구성원이 아프지 않기를. 아프지 않은 것, 그것이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가장 큰 책무가 아닐까.


소원 비는 바위 앞에 줄 선 사람들


이번에도 가서 사람들이 돌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이번 따라 왜 이렇게 돌이 들리는 사람이 많은 건가. 다들 돌이 쉽게 들리니까 전부 '에이, 이거 믿을 수 있는 거야?' 하며 돌의 신성에 문제를 삼기 시작했고, 어떤 분은 돌이 들리는 원리에 대해서 고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타인이 들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했다. 왜 본인의 소원은 들어주지 않느냐는 것. 그래서 넌지시, "선생님 소원 뭐 비셨어요? 너무 많이 비신 거 아니에요?" 하고 물었더니, 한 대여섯 개 정도 비셨다고 하신다. "아니ㅎㅎㅎ 욕심이 너무 많으신 거 아닌가요. 소원은 딱 하나만! 한 번에 하나씩만 비셔야 한다고요." 그랬더니 "아, 그럼 하나만 다시 빌어볼까?" 하고 다시 소원 돌을 들어보셨는데, 이번에는 돌이 안 들렸다. 뭐, 애써서 안 드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안 들렸고 그 덕분에 그분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고 나서는 또 다른 소원을 또 비셨는데(참고로 이 분은 복전함에 1만 원을 넣으셨고 본전을 뽑고 싶으셨던 것 같다), 이번에는 번쩍 돌이 들렸다. 다시 얼굴색이 나빠졌다. 그러다니 다시 소원 돌의 신성에 대해서 문제를 삼으셨다. 세상을 열정적으로 사시는 분인 것 같다.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도 많으셔서 소원도 많이 비셨겠지. 그렇지만 세상 모든 게 다 내 뜻대로 될 리가 있나요, 선생님.


만어사에 가시면 소원은 한 번에 하나씩만 빌길. 여러 개를 한 번에 빌면 다 안 들어줄 수도 있으니까, 꼭 하나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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