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된 물고기들의 산, 그리고 소원을 들어주는 바위

밀양 만어사 1편

by 여름비 CLIO

겨울이 되면 꼭 들르는 사찰이 하나 있다. 바로 만어사. 대개 12월 크리스마스 전후 즈음에 가고, 아무리 바빠도 음력 1월 1일이 되기 전엔 꼭 들른다. 나만의 연간 의례라고나 할까. 올해도 12월이 찾아왔다. 월초부터 언제 만어사에 갈까 달력을 보며 계획을 세운다. 올해도 크리스마스에 만어사를 가야겠다고 계획을 잡았다. 생뚱맞게 왜 크리스마스에 절에 가냐고 묻는다면, 그날이 쉬는 날이라서라고 대답할밖에. 연말 직전에 쉬는 날은 크리스마스밖에 없어서 그렇다. 그날 절에 가면, 참 조용하고 좋을 것 같지만, 결단코 아니다. 무우처억 사람이 많다. 왜 다들 크리스마스에 교회에 안 가고 절에 가는 걸까. 쉬는 날이라서 온 걸까, 아니면 크리스마스니까 절이 한적할 거라고 해서 온 걸까. 아무튼 올해도 크리스마스엔 만어사에 갔다가 딸기 사 와서 먹으면서 남은 휴일을 어기적어기적 보내야지, 하고 계획을 잡았다.


그런데! 그런데!! 갑자기 계엄이 발표되었다. 어? 2024년에 계엄이라니? 누가 장난치는 거야? 농담이 심하네, 했는데 정말로 대통령이 계엄을 발표했다. 이후 대통령 탄핵 표결되기까지 열흘 동안 굉장히 긴박하고 스트레스받는 나날들이 지속되었다. 어찌 되었든,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었고, 더 이상의 계엄은 없을 것 같아 한시름 놓았다. 그렇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마음이 심란하다. 계획보단 이르지만, 만어사에 가자.


만어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멍보살님이 안 비켜주심.

만어사로 올라가는 길은 꽤나 가파르고 구불구불하다. 조심스레 운전해서 올라가다 보면 귀가 멍-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러고 얼마 안 있어서 도착하는 곳. 사찰에서 부처님이 계시는 전각은 높은 곳에 위치해서 그 앞에는 약간은 가파르고 높은 계단을 두고 있다. 부처님께 오는 길, 겸손해지라고 말이다. 만어사는 차로 올라가는 길도 가팔라서, 왠지 그 계단이 산 밑까지 이어진 기분이다. 그래서 왼쪽으로 가면 만어사라는 간판이 보이는 곳부터 만어사에 들어선 기분이다. 절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약간은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보인다. 산을 배경으로 한 대웅전 곁에만 가도 아늑하고 안전한 기분이 든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나만의 힐링장소라고나 할까. 그래서 꼭 의례처럼 찾아오게 되는 것 같다.


만어사는 꽤나 유명한 사찰인데, 유명세에 비해서 규모가 작다. 그래서인지 오래 머무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아주 큰 대형사찰처럼 붐비지도 않는다. 식당으로 치면 회전율이 높은 곳이라고나 할까. 그런 식당에도 가끔은 오래도록 앉아서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 사람이 있지. 그 사람 바로 나다. 한 번 가면 1시간은 기본으로 앉아있다가 온다. 가끔 언론에 노출이 되면 반짝 사람들이 많아지긴 하지만, 그때만 피하면 한적하게 사찰을 둘러볼 수 있다. 근데 그 언론에 지난주에 노출이 되었나 보다. 사람이 많다. 그래도 조금만 기다리면 사람이 적어질 테니까 햇볕에 앉아있어 보자.

멍보살님이 없는 사진으로 다시 한번 올려본다.

만어사 마당 한쪽에 있는 평상에 앉아서 산을 배경처럼 두른 전각들을 살펴본다. 만어사의 건물들은 이게 전부이다. 스님들의 거처인 요사채를 제외하고, 방문객들이 볼 수 있는 건축물은 4곳인데, 한 곳은 사진에 안 들어왔다. 외쪽부터 대웅전과 삼성각,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아미타불, 그리고 사진에는 안 나온 미륵전. 이 건물들을 다 둘러보는 데에는 얼마의 시간이 안 걸린다. 그러니까 기다리면 여유로워진다. 마당 한편에 앉아서 기다려보자. 근데 오늘 날씨 좀 쌀쌀한 것 같다. 대웅전에 갈까 말까 고민하며 앉아있는데, 멍보살님이 어슬렁거리며 곁에 다가온다. 내가 계단을 올라 마당에 들어서면서 사진을 찍을 때도 '자, 나를 찍으라' 며 포즈를 취하시던 멍보살님.

이렇게 계단 맨 위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멍보살님

자꾸 나한테서 냄새를 맡는 것이 뭔가 바라는 것이 있어 보인다. 흠.. 가방에 소시지가 있는 건 어떻게 알아가지고. 토요일 탄핵시위에 갔는데, 여기저기서 소시지를 나눠주셔서 어쩌다 보니 소시지 부자가 되었다. 그중 몇 개를 챙겨 왔는데, 딱 알아채네. 개코야. 소시지를 통째로 주면 먹기 불편할 것 같아서 똑똑 끊어가지고 줬는데, 안 먹는다. 앗.. 취향이 아닌가 했는데, 갑자기 코로 땅을 파더니 소시지를 묻는다. 나중에 먹으려고 묻어 놓는 건가. 아님 취향이 아니라서 버리는 거니. 말을 좀 해주고 가면 좋을 텐데. 미안. 내가 외국어에는 취약해서 멍멍이 언어는 배우질 못했네. 그래서 급하게 단톡방에다가 물어봤는데, 나중에 먹으려고 묻어두는 것 같다고 한다. 다행이다. 그런데, 그렇게 대답해 주신 분도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다고.. (이런 반전) 결국 소시지 보시는 멍보살님의 마음은 내가 헤아리지 못한 것으로 정리하자.

코로 땅을 파더니(좌) 내가 준 소시지를 이렇게 묻어놓고(우) 쿨하게 자리를 떴다

기다리는 김에 초나 하나 켤까. 불경에는 부처님께 꽃을 올리거나 향을 켜고, 불을 켜는 것도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향을 켜고, 초를 켜는 건 환경에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자주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꽃을 공양하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내가 선호하는 공양 방법은 시주함에 돈을 넣거나 쌀을 올리는 것이다. 돈을 내는 것이 어떻게 보면 아주 경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찰을 유지하는 데에 아주 유용하고, 직접적으로 잘 쓰일 거라 생각한다. 쌀을 올리면 절에선 그 쌀로 밥을 짓거나 떡을 하고, 그 밥이나 떡은 배고픈 누군가의 한 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쌀을 공양하는 것도 선호하는 보시 방법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초를 켜보기로 했다. 속이 너무 시끄러워서, 그리고 너무나 간절해서 꼭 초를 켜고 싶었다.

작은 초는 3일 정도 탄다고 한다. 초 앞에 소원을 적은 스티커를 붙이고 경건하게 불을 붙여서 올렸다. 저 촛불에 화나는 마음이 다 태워지길. 국민들의 울화가 씻은 듯이 나아지길.


초를 올리고 바로 대웅전으로 들어갔다. 자그마한 곳이라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라 오래 머물고 싶지만, 자그마한 곳이라 다른 신도들을 위해서 삼배만 올리고 금방 나왔다. 대웅전 옆의 삼성각에 들어가 볼까 했는데, 거기도 이미 만석이다. 삼성각은 칠성여래를 주불(가운데)로 하여, 산신과 독성을 모시고 있는 전각이다. 칠성여래는 북두칠성을 의미하고, 산신은 그 사찰이 있는 지역의 토속신, 독성은 스스로 깨쳐서 성인에 오른 존재인 나반존자를 말한다. 대체로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하는 분들이 여기서 기도를 올리신다. 아마 산신께 기도하는 것이리라. 나는 해당사항이 없으니까 그냥 밖에서 인사만 하고 지나간다.


사실 만어사의 가장 핵심적인 곳은 마당 아래에 펼쳐져 있는 무수한 검은 돌무더기들이다.

이 돌무더기 들은 두드리면 챙챙챙 쇳소리가 난다. 그래서 이 돌을 종석이라고도 부르는데,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특이하고 오래된 것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이 종석에도 재밌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삼국유사 탑상 편에 이 종석과 만어사 창건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아주아주 먼 옛날 여기 만어산에는 나찰녀(羅刹女, 악한 귀신) 다섯 마리가, (양산 지역의) 옥지라는 연못에는 독룡(毒龍)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것들끼리는 서로 알아보는 것인지, 독룡과 나찰녀는 서로 친하게 지냈는데 이 녀석들이 어찌나 망나니인지 서로 만나서 놀면 천둥번개에 뇌우까지 몰아쳐서, 그 지역 농민들이 4년 동안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로왕-맞다 금관가야의 초대 왕 김수로왕-이 주술로 그 불한당 무리를 제거하려고 했지만 못했고, 결국 부처님께 도움을 청한다. 부처님은 이들에게 설법을 하였고, 감화를 받은 나찰녀들은 오계를 받아고 불교 신자가 되었다. 또 동해의 수많은 고기와 용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같이 듣고 감화받아서 이 산으로 모여들었는데 그 물고기와 용이 물을 떠나 이 산에 오면서 이렇게 돌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돌에서는 쇠북과 경쇠소리가 났다고 한다.


뒤이어 만어사와 관련한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만어사는 고려 명종 11년에 처음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승려 보림이 만어사와 관련된 이야기 장계로 올렸다고 한다. 보림은 이 만어산에는 아주 신기한 흔적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이 북천축 가라국의 부처님의 그림자 같은 것, 그러니까 부처님(이 계셨던) 흔적과 비슷하다고 했다. 첫째가 양주(지금의 양산) 경계에 있는 옥지라는 연못에 독룡이 살고 있다는 것, 두 번째는 강가에서 구름 기운이 나와 산봉우리에 닿는데, 구름 속에서 음악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부처 그림자 서북쪽에 반석이 있는데 언제나 물이 고여 마르지 않았는데, 부처가 가사를 빨았던 곳이라는 것이다. 아.. 뭐라는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다.


아마 일연은 승려라서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았는가 보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러 만어사에 갔다고 한다. 직접 찾아가서 예불을 하면서 만어사를 살펴보니 보림이 한 말 중에 두 가지는 사실이라고 한다. 골짜기의 바위 2/3는 모두 금과 옥의 소리를 내고, 부처의 그림자가 멀리서 보면 보이고, 가까이서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떨 때는 보이고, 어떨 때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보림이 이야기 한 두 번째 말 "강가에서 구름 기운이 나와 산봉우리에 닿는데, 구름 속에서 음악 소리가 난다"는 말은 사실이라는 거다. 산이 높아 구름이 가득해서 보였다 안보였다 하고, 괴석들에서는 쇳소리가 나는 걸 본인이 직접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보림이 말한 '북천축 가라국의 부처님의 그림자'와 같다는 것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쓰고 있다.


일연은 보림의 이야기(주장)의 근거가 어디인지를 밝히고 있다. [관불삼매경] 제7권, [고승전], [서역전]에서 발췌하여 기록해 두고선, 해동 사람들이 (한반도의 사람들) 북천축의 일을 가져다 산 이름으로 썼다고 한다. 즉 산세와 소리가 나는 바위를 보고선 경전에서 힌트를 얻어 산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만어사에 있는 창건설화 설명판을 보면, 여기에 덧붙여 부처님의 덕력으로 독룡과 나찰녀를 감흥시키고 재앙을 물리친 것을 기리기 위해서 수로왕이 여기에 절을 지었다라고 한다. 이 부분은 삼국유사에 없는 내용이다. 아마 후대에 덧붙여진 내용이리라.


망나니 같던 용이 부처님의 설법에 감화하여 불교를 수호하는 수호신이 된 이야기는 일연이 언급한 위의 경전과 고서뿐만 아니라, 다른 불교 경전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아주 유명한 경전인 묘법연화경(a.k.a. 법화경)에도 나온다. 묘법연화경 초반부에 보면, 석가모니의 설법을 들으러 온 백천권속百千眷屬 중에 8대 용왕이 있다. 이들은 불교와 대립하던 악신이다. 석가모니가 설법을 한다고 하니 '니 얼마나 잘하나 함 보자~'하고 들으러 왔다가 교화되어 불교를 지키는 신이 된다. 이런 용을 호법용(護法龍, 불교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용)이라고 부른다. 스님이 명당에 사찰을 지으려고 가면 나쁜 용이 있고, 설법으로 용을 감화시킨 뒤 절을 짓고, 용은 그 절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는 이야기. 이런 창건설화를 가진 한국의 사찰들은 많고, 그 대표적인 예가 양산 통도사이다. 여기 만어사도 이런 호법용 설화가 변형되어 나타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만어사에 가면 삼국유사에는 없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미륵전의 바위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다음 편에 이어서..)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