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신도증이었다

- 프롤로그, 사건의 서막

by 여름비 CLIO

사찰에 가는 걸 좋아한다.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와 경건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풍취가 복잡한 내 마음을 잠시나마 고요해질 수 있도록 해주어서 마음이 복잡할 때면 홀로 사찰을 찾는다. 집 근처의 사찰에 가는 것도 좋아하고, 이름난 유명한 사찰을 찾는 것도 좋아한다.


사찰에 다니다 보니 절에 있는 것들이 눈에 익숙해지면서 궁금해지는 대상들도 하나씩 생겼다. 또 한국사의 일정 부분은 불교와도 밀접한 관련 있는데, 전공이 한국사인 덕에 불교 사상을 풍문처럼 들어 익혔고, 그 사상들이 불교 건축물이나 예술품에 어떻게 녹아있는지를 어쩌다 우연히라도 알게 되면 너무 즐거웠다. 문득 불교 공부를 해볼까, 하고 생각했는데 오랜 시간 앉아서 공부할 자신은 없었다. 그럼 사찰이라도 자주 가서 눈에 익혀보자.


그런데 유명한 사찰들을 갈 때면 입장료가 있었다. 지금은 조계종에서 입장료를 폐지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유명 사찰은 입장료가 있었고(여전히 입장료가 있는 사찰도 있으니 주의 요함), 그 금액이 천자만별이기도 했지만, 불국사나 석굴암 같이 세계문화유산인 경우엔 입장료로 4,000원을 지불해야 했다. 물론 사찰도 사유지이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을 유지, 보수, 관리하려면 돈이 드니까 입장료를 받는 것에는 동의를 하나, 4,000원이라는 금액은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불국사와 석굴암을 하루에 다 방문을 하면 입장료만 8,000원인 셈이다. 그런데 사찰을 자주 다니는 사람으로서, 1년을 모두 계산하면 적지 않은 금액인 것. 거기다 주차비까지 지불을 하면 너무 금액이 큰데 싶은 것이다. 어떻게 할인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나 궁리를 하던 중 알게 된 것이 바로 조계종 신도증이다.


매표소에서 무료입장 대상자를 적어둔 목록이 있는데, 거기 맨 마지막에 보면 '조계종 신도증을 소지한 자'라고 적혀있다(물론 다 적혀있는 것은 아니고, 대다수의 조계종 사찰에 적혀있다). 오호, 조계종 신도증이 있으면 입장료가 무료라는 거지? 그럼 조계종 신도증을 만들어볼까?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조계종 신도증을 만들고 매년 1만 원씩 교무금을 내면 전국의 조계종 사찰을 무료 입장할 수 있으며, 또 몇 가지의 혜택이 있다고 한다. 오.. 1만 원만 내면 조계종 사찰 프리패스란 말이군! 여기에 딱 맞는 말이 있다면 "염불보다 잿밥"이겠지. 아무튼 잿밥에 눈이 멀어서 신도증 만드는 방법을 이리저리 찾아보아도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을 찾을 수가 없다. 당연하겠지. 불교 신도들은 마음에 드는 절에 적을 두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얻는 것이니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거다. 나 같은 불경한 자나 신도증 만드는 방법을 찾아다니는 것이지.


그렇지만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순 없지. 기필코 신도증을 손에 넣고 말리라. 인터넷에서 못 찾으면 맞다이(?) 뜨면 되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부산경남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찰인 통도사에 전화했다. 원래 나이롱들이 삐까뻔쩍 간판(?)에 목숨 거는 거니까. 통도사 종무소에 전화해서 물어보았더니, 통도사에서는 통도사 신자들에게만 조계종 신도증을 발급한다고 한다. 그럼 통도사 신도증은 어떻게 받는가 물었더니,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데 결론은..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통도사 신도가 되었다고 해서 또 바로 조계증 신분증을 발급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하.. 나는 당장 신도증이 필요한 걸요. 그럼 통도사는 패쑤~!


나중에 불자들(정확히는 엄마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유명 사찰은 거기 소속이라는 '쯩'을 받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한다. 통도사를 오래 다니셨던 어느 한 불자님(물론 엄마 친구)의 말씀으론 몇 년간 공양주를 하시고, 또 여러 보시를 하신 후에야 통도사 신도증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불자들은 자신이 다니는 절에만 다니고, 가끔 다른 절에 가기 때문에 신도증에 연연해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나 같은 사이비 불자나 신도증에 연연해하는 것인 거다. 그러나 한 번 뜻을 세웠으면(?) 실행에 옮겨야지. 나는 꼭 이 조계종 신도증을 갖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했으니 반드시 손에 넣고야 말리라. 그렇게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근처 사찰에서 불교대학을 여는데, 불교대학 수업을 이수하고 나면 신도증을 발급해 준다는 것이다. 불교대학 수업은 주 1회이고, 그것도 저녁 7시 반에서 9시. 딱 16주만 들으면 된단다. 통도사의 신도증 발급 기간보다 몇 배나 단축인 거냐. 완전 개꿀인데! 하며 바로 불교대학 수업을 신청했고, 그렇게 고통(?)의 16주를 보내고 난 뒤 신도증을 손에 쥐게 되었다.


신도증도 얻었겠다, 이제 앞으로 열심히 산사순례를 하겠노라 다짐했는데, 아니 이런.. 조계종에서 사찰들의 입장료를 무료로 하겠다고 한 것이다. 띠로리.. 이것이 사이비 신도의 말로인가.. 아.. 부처님 이렇게 저를 벌(?)하시나요? 그렇게 속상해 있다가 '원래 내 목표가 산사순례였는데, 왜 신도증을 손에 넣는 게 목표가 된 것인가. 처음엔 절에 가는 것만으로도 좋아했잖아? 정신 차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목표대로 산사순례 시작! 그런데 그냥 다니면 좀 심심하니까, 조계종에서 발간한 '33 관음성지 순례 인장책'을 구입해서 사찰들을 다니고 있다.


비록 시작은 불경한 마음이었으나, 지금은 불교를 좀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여러 지역의 사찰들을 다니고 있다. 신도증이 있으나 없으나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가끔 신도증이 있으면 주차비 감면이라는 혜택을 주는 사찰이 있어서 "오 행운이야! 신도증 갖고 있길 잘했네"를 외치며 산사순례를 하고 있다. 불교 전문가도 아니고, 진짜(?) 불교도도 아니지만, 사찰에 다니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써보려고 한다. 어쩌면 조금은(아니 많이) 불경한 내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