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은 같이 하면 더 좋잖아요.
며칠 전 집으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거기엔 편지와 함께 기부금영수증이 들어있었다. 벌써 연말정산할 시즌인가 보다. 연말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12월이 지나버려서 연말에 해야할 것들을 놓쳤는데, 편지를 받고서야 1월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그나저나 요즘엔 대개 국세청에서 바로바로 집계가 되는데, 지금 기부하고 있는 곳 한 곳은 바로 연계가 되지 않나 보다. 오랜만에 기부금영수증을 받았다. 국세청 홈택스에서 전산으로 연말정산을 했을 땐 그냥 내가 소비한 것 중 하나라는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우편물로 영수증을 받고 보니 내가 1년 동안 그래도 좋은 일 하나는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약간 몽글몽글 울렁거린다.
성경에 그런 말이 있다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나는 이 말이 ‘좋은 일을 한 것을 자랑삼아 떠벌리지 말라’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좋은 일을 좋은 일이라 생각지 말고 습관처럼 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오른손과 왼손은 한 몸으로 이어진 것인데, 내 몸이 한 걸 왜 모르겠나. 당연히 알지. 그런데 ‘이건 좋은 일이니까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아닌, 당연히 해야 하는 것 그러니까 간지러워서 긁을 때 긁는 행위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처럼 좋은 일을 하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좋은 일이라는 의식조차 하지 말고 선행을 베풀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생각해 봤다. 그런데 오래도록 선행을 베푼 사람들에게 어떻게 남을 위해 살 수 있냐고 물어보면, 그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먹고, 숨 쉬는 것처럼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선행이 선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나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저기 멀리 있는 손에게도 ‘내 손이 이런 거 했어’ 하고 알리고 싶다. 왜냐하면 같이 하면 좋겠어서 말이다. 원래 좋은 것은 같이 하는 거니까. 그리고 가끔은 '나도 가끔은 착한 일 하는, 그렇게만은 나쁘지 않은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괜찮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게 과해지면 문제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괜찮다. 내가 하는 좋은 것은 무엇인가 궁금할 테니 지금부터 알려드리겠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고 나니 너무 약소한 것 같아서 부끄러워지려고 한다. 그렇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해 내 손이 한 일들을 써본다.
내 손이 한 일 중 하나는 부산에 있는 미혼모와 아이들을 위한 기부이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미혼모 보호단체에 매달 소액을 기부하고 있다. 3년을 넘겼고, 2025년이 되어서 이제 4년 차가 되었다. 원래는 미혼모부자녀를 위한 단체였는데, 시의 예산이 삭감되면서 이런저런 변동이 있었고, 현재는 미혼모의 자립과 아이들의 양육을 위한 단체로 변경되었다. 내가 발딛고 사는 내 지역사회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안전하게 보호받길, 그리고 그 아이들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양육자들도 평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미혼모 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다. 이 단체에서 편지와 달력을 보내주셨는데, 달력은 책상 위에 올려두고 잘 쓸 것이고, 편지는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려고 한다.
내 손이 한 일 두 번째는 디딤씨앗통장에 기부하는 것이다. 디딤씨앗통장은 저소득층 어린이와 청소년이 나중에 성년이 되었을 때 자립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아동후원정책이다. 아동이 디딤씨앗통장을 개설해서 매월 일정금액을 적립하면, 국가가 10만 원 한도 내에서 2배의 금액을 적립해 준다. 만약 아동이 3만 원을 적립하면 국가가 6만 원을 적립해서 매달 9만 원씩 적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저소득층의 아동이나 청소년은 이 적립금을 쌓을 형편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후원자가 아동을 대신해서 금액을 적립해 주는 것이다. 후원자가 5만 원을 적립하면 국가가 10만 원을 적립해 주니 매달 15만 원씩 적립된다. 이게 1년이면 180만 원이고, 5년이면 900만 원이다. 이 후원금은 성년이 될 때까지 찾을 수 없고, 또 보호자가 함부로 해지해서 찾아갈 수도 없다. 나중에 자립해야 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디딤씨앗통장 후원이 여러 점에서 좋은데, 국가가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간 수수료 없이 내가 기부한 돈 전액이 아동에게 간다는 두 번째로 좋다. 이 후원제도의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내가 돈을 기부했다고 해서 아동이 나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절차를 만들지 않은 것이다. 디딤씨앗통장을 후원하기 전에는 티브이만 틀면 나오는 어린이 자선단체 몇 곳에 기부를 했었다. 그런데 그 단체들은 나와 매칭이 된 어린이들에게 내가 준 돈을 어디에다 썼는지 편지로 써서 보내도록 했다. 그리고 후원해 줘서 고맙다는 말도 쓰여있었다. 그 편지를 읽는데 너무 마음이 안 좋았다. 내가 그 아이의 평생을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고 고작 몇 만 원으로 그 아이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내가 돈 쓴 보람을 느끼는 거, 너무 언짢았다. 그건 너무.. 잔인한 일처럼 느껴져서 후원하는 게 버거웠다. 그러다 알게 된 게 디딤씨앗통장이고, 지금 6년 차가 되어가는 것 같다. 이 디딤씨앗통장 후원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후원하고 있다. 구청에 연락해서 우리 구에 살고 있는 아동에게 후원하고 싶다고 했더니 구청에서 매칭시켜 줘서 두 명의 아동에게 적립 중이다. 급여가 늘면 후원도 늘여야지 하고 있는데, 소비만 늘고 있어서 반성 중이다. 내년엔 꼭 후원을 늘릴 수 있길 바란다.
아동권리보장원 - 디딤씨앗통장 (클릭하면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내 오른손이 한 일 세 번째는 모발기부다. 모발기부는 자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2년에서 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올해 그 일을 해냈다. 모발기부는 소아암 환자를 위해서 하는 기부이다. 소아암 환자들은 치료비도 부담이지만 가발을 구입하는 것도 굉장히 부담이라고 한다. 가발 구입비가 생각보다 비싸고, 인모의 경우는 더욱 비싸다고. 그래서 사람들에게서 모발기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모발기부는 25cm 이상의 길이에 30가닥 이상이면 기부가 가능하다. 긴 머리를 소유하신 분이라면 매일 빠지는 머리카락을 모아서 기부도 가능하다. 물론 그 방법은 쉽지 않겠지만. 나는 게을러서 빠지는 머리카락을 모으지는 못하고, 그냥 머리를 길러서 잘라 보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내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을 정도가 되는 데에는 한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2년 5개월 전에 한번 기부를 했고, 이번에 다시 한 번 더 기부를 했다. 첫 번째 기부 때도 힘들긴 했지만, 이번 기부를 위해 머리를 기르는 동안은 정말 힘들었다. 지난여름 더워도 너~~~ 무 더워서 하루에 수백 번도 더 머리를 자를까 고민을 하며 여름을 보냈다. 긴 머리카락은 여름에 너무 힘들다. 여름의 고비를 넘기고 가을이 되어서 머리카락을 잘라 어머나 운동본부에 보냈다. 어찌나 시원하고, 어찌나 뿌듯하던지. 온 동네방네에 소문을 냈다. 역시나 나는 왼손이 모르게 하는 건 어려운 사람이다. 세 번째 모발 기부는 아직 고민중이다. 이번 여름을 잘 버티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어머나운동 - 머리카락 기부 (클릭하면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좋은 것은 같이 하는 게 좋다고 배웠다. 그래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이 손, 저 손도 같이 하자고 막 들이대본다. 이제 2025년 시작이다. 새해를 맞아 기부를 해보겠다 생각하고 계신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이 방법들 한 번 고려해보셨으면 한다. 새해를 맞아 다 같이 좋은 일 하면 좋겠어서 부끄럽지만 오른손 왼손 번쩍 들어 나대는 글을 써보았다. 좋은 일 같이 해보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