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말

by 여름비 CLIO

'우리'라는 단어를 들을 때면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예전에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회사생활을 아주 정확하게 그려내면서도 판타지를 보여준 드라마여서 굉장히 인기가 많은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인 장그래는 경력도, 학력도, 학벌도 좋지 않은 신입직원인데, 팀에서도, 동기들 사이에서도 겉도는 존재다. 그렇다 보니 늘 주눅이 들어있는데, 어느 날 장그래가 다른 팀 부장에게 구박받는 것을 보고 술에 잔뜩 취한 부장님이 "우리 애만 혼났잖아!"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 말을 듣고 장그래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우리 애,라고 했다..' 하면서 말이다. 그 드라마를 보고 난 후부터는 '우리'라는 단어를 들으면 드라마에서 장그래가 좋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라는 말이 어떨 땐 한없이 다정하게 들린다. '나, 너, 그리고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챙김을 받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나에게도 소속감이 생겼다는 느낌에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라는 단어가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라는 말이 편 가르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

우리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드는 거부당한 느낌. '우리' 안에 속하는 줄 알았는데, 거기에 소속될 수 없을 때의 좌절감. '우리'의 범위는 어디까지이길래 나는 그 '우리'에 들어갈 수 없는가. '우리'라는 말을 소속감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외감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아주 친밀한 관계에서도 '우리'라는 단어사용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라는 단어가 소속감의 문제만 가진 단어가 아니다. 이 단어는 획일성을 강요하는 말, 나아가 폭력이 될 수도 있는 말이다. '우리' 안에 소속된 개개인은 '우리'가 되기 위해서 개별성을 포기할 것을 강요받기도 한다. '우리 단체에 속한 사람들은 ***한 행동을 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함으로써 ***한 행동을 못하도록 막는다. 이 '***한 행동'이 사회적 규범을 어기는 행동, 예를 들자면 '길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기' 같은 기본적 예의를 준수하자는 말일 경우엔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 하지만 이게 이념적 규범일 경우엔 문제가 된다. 폐쇄적인 집단일 경우 더욱 강력하게 '우리'를 강요받는다. 일부 종교에서 성소수자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 것도 '우리'라는 단어로 포장된 폭력이다.


그런데 이렇게 집단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개개인적으로도 '우리'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쓰는 경우가 있다. '우리'라는 표현을 씀으로 자신의 행위나 상태를 특별한 것이 아닌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하기도 한다. "우리처럼 @@하는 사람들은 그거 좋아하잖아~" 같은 표현. '우리처럼'에 들어가는 우리는 누구란 말인가.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것은 본인만 좋아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라고 퉁치는 것은 좋지 않다. 어릴 적에 나도 이런 말버릇을 가진 적이 있는데, 친구가 "그거 좋아하는 건 너지, 우리라고 묶지 말아 줄래?"라고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그때부터는 "우리처럼~"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가끔 말이 생각을 앞질러서 "우리 같은/우리처럼~"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재빠르게 말을 주워 담는다. 물론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지만 사과하고 바로 정정한다. "나는~ "이라고 말이다. 생각 없이 말하지 말자. 생각하고 말하자.


그렇지만 가끔은 '우리'라는 표현으로 상대방과 같은 테두리 안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우리 팀'이 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생각말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가 된다는 건 환상이라는 생각도 한다. '우리'라는 테두리가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서로 충분히 잘 지낼 수 있다면 된 것이다.



keyword
이전 11화무엇이 '평범'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