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평범'인가요?

평범하게 산다는 것에 대해

by 여름비 CLIO

새해가 지났다.

드디어 2025년이 실감이 나는 듯도 하다. 작년 12월을 너무 정신없이 보내서 연말 기분을 하나도 느끼지 못하고 보내서 새해의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긴 연휴를 보내고 나니 새해가 온 듯도 하다. 그런데 오래 살다 보니 이런 특별한 날에 대한 감흥이 점점 사라진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특별한 날에 대한 설렘이 없는 건 좀 아쉽지만, 그래도 나이가 드니 편한 것도 있다. 바로 잔소리하는 사람들이 점점 준다는 것.


나도 나이가 들아보니, 이젠 나에게 잔소리를 할 만한 분들이 세상에 많이 안 계시기도 하지만, 계신 분들도 이제 잔소리할 기력이 없으시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포기하는 심정이시기도 한 이유로, 더 이상 명절 잔소리는 내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명절날에 제삿날이 되도록 싸웠던가.


내가 들었던 잔소리는 무엇이었나.

다들 짐작하는 이야기들이겠지만, K-장녀, 특히 갱쌍도!! 딸램이들이라면 들었을 그런 뻔한 그런 잔소리들을 많이 듣고 자랐다. 그런데 명절이 되면 그 잔소리들이 변주가 되어 더 괴로웠고, 그래서 명절이 별로 좋은 날은 아니었다. 큰 집이라 명절을 우리집에서 지냈는데, 명절이 되면 제사 때에 오지 않는 친척들도 왔다. 왜 우리집은 큰 집이라 도망갈 곳도 없는가. 용돈이라도 두둑이 받았으면 좀 버텨볼 만했을 텐데. 명절의 잔소리는 내가 나이를 먹을 때마다 바뀌었고, 어떤 잔소리는 나이가 들어도 내내 따라다녔다.


내가 기억하는 첫 잔소리는 초등학교 때이다. 그땐 공부 잘하느냐는 잔소리를 들을 때였는데, 내가 우리 항렬 중엔 제일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나한테 하는 잔소리는 아니었다. 놀기 좋아하는 동생들에게 하는 잔소리였다. 그렇지만 늘 비교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나한테 하는 잔소리가 아니어도 짜증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은 ‘여름비 언니(누나)처럼 공부 좀 해라! 본 좀 받아라~’라는 말로 늘 나를 기준점으로 삼았다. 그말들은 언제나 불편했다. 내가 공부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쟤들한테 본보기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닌데 왜 자꾸 가만히 있는 나를 들먹일까. 더불어 동생들의 기준이 되었다는 생각에 앞으로도 잘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생겼다. 아.. 그냥 공부하지 말아 버릴까..


중고등학교 시절엔 외모에 대한 잔소리가 덧붙었다. 그렇게 살이 쪄서 어쩌려고 그러냐, 시집이냐 가겠냐는 말을 빈번히 들었다. 어른들은 '예쁘지 않으면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로 나를 겁먹고 주눅 들게 만들려고 했다. 하루에 4-5시간만 자고 그 외의 시간엔 내내 앉아서 공부만 하는데, 당연히 살이 찌지 안 찌겠냐고. 먹고 공부하고 잠자고가 전부인 10대 청소년에게 너무 가혹한 발언이다. 운동하면서 공부하라고 하지만, 실제로 운동을 하면 공부 안 하고 뭐 하냐고 했던 어른들이다. '살이 찌고 못생겨지면' 여자 인생은 끝인 것처럼 호들갑 떨던 어른들. 남자의 관심, 그깟 거 안 받아도 되는데. 어른이 되면 이런 잔소리 안 들어도 되려나 싶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니 또 다른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아니 좀 더 노골적인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결혼은 언제 할 거니?'라는 잔소리. 내 또래의 경상도 여성들 대부분은 결혼이 목표인 것처럼 키워졌다(내 또래라고 한정하는 것은 다른 세대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적기 때문이다). 대학을 가는 것도, 취직을 하는 것도 다 결혼을 잘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일 뿐이다. 모든 것이 결혼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내가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는 것도, 취직을 하는 것도, 운동을 하는 것도 모두 결혼에 유불리함을 판단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이상도 이하의 의미도 아니었다. 어른들에게는 '여성'이란 부모님들이 시키는 대로 살면서 착실하게 대학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돈 모으고, 때가 되면(?)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집에서 살림하고, 육아하면 되는 존재다. 대학과 직장은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한 것이다. 그런데 이 경로에서 벗어난다? 그럼 '평범한 경로'로 복귀할 걸 수시로 강요받는다. 앞에 글에서도 밝혔듯이, (부모님이 보시기에 변변찮은) 직장을 떼려 치고 대학원을 간다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물론 10대 때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자주 밥상을 엎었다(실제로 엎었는데 내가 엎은 건 아니고 아버지가..).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나서 남들처럼 안 사는데?'라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정말 정말 정말 많이 들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들었다. 몇 년 전까지 들었다고 하면 믿으려나.


나이가 들면서 바뀌는 잔소리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도 늘 따라붙는 잔소리도 있다고 했는데 바로 '드세다'는 말이다. 그 어떤 잔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다 되받아치는 나에게 어른들은 늘 드세다고 했고, 어떤 분은 대놓고 '드센 년'이라고도 했다. 개소리에는 절대 참지 않는 성정이라 어른들과의 대화에서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럼 늘 '너처럼 드세서는 남자들이 안 좋아해'라는 악담을 들어야 했다. 어떤 어른들은 '성격이 너무 강하면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성격 좀 죽이라'는 조언 같지도 않은 말을 하곤 했다. 내 성별이 남성이었어도 어른들이 '그런 일 하지 말고 결혼이나 하라'는 말을 던졌을까. 그런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굳이 되받아칠 일도 없었을 것인데. 그럼 나는 정말로 공손한 아랫사람이었을 것인데 말이다(저는 정말로 예의범절을 중요시하는 유교걸이다. 그치만 정의를 더 중요시 할 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왜 결혼 안 하냐, 더 나이 들면 애도 못 낳는다, 여자는 남자 그늘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 등등의 잔소리를 들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이야기를 거의 안 듣는다. 아무래도 나이 덕분인 것 같다. 가끔 '부모 부끄럽게 하려고 결혼도 안 하냐'라는 말 혹은 부모님과 같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부모 등골 빼먹고 살려고 결혼 안 하냐'는 말도 들었다. 그런 분들은 내가 직장도 변변찮아서 결혼도 못하고 부모님한테 얹혀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은 직장 알선 혹은 남자 알선을 해주기도 한다. 이런 분은 나를 정말 걱정하는 게 아닐까 싶지만 결단코 아니다. 변변찮은 인물이라 아무 일, 아무 남자나 짝지어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 할 말 너무 많지만 이하 생략.


하는 일에 대해서도 정말 많은 소리를 들었는데, 어떤 설명을 해도 이해할 생각이 없으면서 왜 물어보는 걸까 싶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 인생을 전부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가끔은 해명하지 못해서 갑갑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냥 그들이 오해하도록 둔다. 지금은 그냥 그들과 다른 삶을 사는 내가 행복할까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최근엔 이런 이야기 안 들어서 평온한 날들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누가 봐도 성실하고 누가 봐도 '평범'한 분들조차 '부모 등골 빼먹고'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이다(근데 부모님들도 도와주실 만하니까 도와주시는 거 아닌가. 도와줄 수 있는 부모가 주는 도움을 받고 사는 게 나쁜가?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암튼). 누가 봐도 '정상가족' 형태의 젊은 연구자 부부에게도 세상의 '평범'한 기준대로 살지 않는다는 잔소리가 날아든다니. 도대체 '평범'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상과 평범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물며 내 기준에선 충분히 '평범'의 경로를 가고 있는 사람들조차 '평범'하지 않다면 소수자, 장애인들은 얼마나 많은 잔소리를 들으며 살까 하는 생각에 온몸에 가시가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성애를 하지 않는 성소수자들의 가정에 얼마나 무례한 질문과 잔소리가 날아들 것이며, 시설에 거주하지 않는 장애인들에겐 얼마나 많은 폭력의 말들이 쏟아질까. 명치가 답답해진다.


다양한 삶의 형태를 상상할 수 없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보호라는 명목하에 배제를 행하는 시선들. 올핸 '평범'의 정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되는 잔소리에 같이 싸워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더 나아가 더이상 말도 안되는 세상에서 잔소리가 없어지도록 노력해야지.

keyword
이전 10화라면 끓이기의 어려움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