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앙큼대마왕 Jun 28. 2021

베트남 쌀국수 탄생 이야기

베트남 민중의 음식 Pho (퍼어)


‘ Phở (퍼어)’ :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베트남 쌀국수. 베트남어로 '퍼어'(성조가 물음표 모양처럼 억양이 위에서 아래로 구부러지듯 발음하면 된다). 베트남 쌀국수 중에 하나인 포 Pho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데 가장 유력한 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110여 년 전 (1906년 즈음으로 추정) 프랑스 식민지 시절 베트남 북부 항구 지역 Nam Dinh (남딘) 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저렴하면서도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때우며 먹던 음식이 쌀국수였다고 합니다. 당시 부두 노동자들이 먹던 쌀국수에는 채소와 항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싼 해산물들이 들어 있었는데 이를 본 한 프랑스인 지주가 하인에게 자신의 입맛에 맞게 쌀국수에 소고기를 넣어서 만들어 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농경국가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인 소를 함부로 먹을 수 없었는데 소뼈를 푹 고은 국물에 국수를 말아 소고기 살코기를 고명으로 얹어  먹게 되니 천상의 맛이었을 것입니다. 이 때 소고기로 국물을 우려낸 소고기 쌀국수가 Pho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소고기 국물에 얇고 넓적한 쌀국수인 Pho의 이름 유래도 프랑스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식민지 시절 당시 프랑스인들이 늘 먹던 소고기 야채수프인 Pot au feu (뽀 오 떼)라는 음식이 있는데 지금의 베트남 쌀국수가 Pot au Feu에서 파생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Pot au feu (뽀 오 떼) 처럼 먹고 싶었던 프랑스 사람들이 쌀국수에 소고기를 얹어 먹기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Pho는 가난한 부두 노동자들이 한 끼 식사로 먹던 음식을 프랑스인의 레시피가 더해져 지금은 베트남의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짜장면이 연상됩니다. 일제시대 인천항에서 일하던 부두 노동자들이 저렴하면서도 간단하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메뉴를 찾다 보니 당시 부두에서 식당을 하던 화교들이 산둥 지방의 음식인 자작면을 한국식에 맞게 만들어 낸 것이 짜장면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과 베트남을 대표하는 면 음식이 부두 노동자들에게 사랑받던 음식이자 외국인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라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1930년대 하노이 Pho의 대유행


베트남 기록에 따르면 1900년대 초반  하노이에는 아침이고 밤이고 Pho를 판매하는 행상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어깨에 메고 다니며 손님이 원하면 그 자리에서 국수를  말아서 판매하는 방식인거죠.


<좌측 Maurice Salge의 Gánh phở rong ở Hà Nội, 1913년 작> ,   <우측, 1900년 초반 하노이로 추정되는 사진>
1900년대 초반 길거리에서 어깨에 메고 다니며 쌀국수를 판매하던 사람들


Pho가 언제부터 생겼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는데 1906년 Nguyen Van Vinh이라는 사람이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파리에서 물건 파는 소리를 들으면 아침마다 쌀국수 팔던 소리가 생생하다'라고 적은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1913년 프랑스인 화가 Maurice Salge이 하노이 길거리에서 쌀국수를 판매하는 행상의 모습을 그린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쌀국수 식재료와 숯불이 담 통을 긴 막대에 연결에 어깨에 메고 다니는 행상들이 1920년대까지 활동을 하다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제대로 된 쌀국수 식당들이 하나 둘 열기 시작합니다.


베트남 최초의 쌀국수 체인점 탄생


베트남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쌀국수집은 1938년에 개업한 Pho Tau Bay입니다. 1938년 프랑스 총독부 관청인 인도차이나 연금 사무소 앞에서 장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인기가 너무 좋아 연금 사무소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결국 너무 시끄러운 나머지 프랑스 총독이 장사를 중단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베트남 최초의 브랜드 쌀국수집을 시작한 Pho Tau Bay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Tau Bay의 쌀국수를 너무도 좋아하던 베트남인 고위 관리가 총독을 설득해서 계속해서 영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쌀국수 인기가 어마어마했던 것이죠.


1952년 Pho Tau Bay는 베트남 최초로 쌀국수 체인을 개설하고 하노이에 6개 매장을 열게 됩니다. 새벽 4시~5시에 고기와 식재료를 납품하고 매일 아침에 주인이 매장마다 방문하면서 직원들의 복장 상태, 맛을 점검했다고 합니다. 이를 따라 여러 Pho 전문 식당들이 하노이에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Pho는 남북이 다르다!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베트남 북부 지방에 대유행하던 쌀국수는 북부 사람들이 남부 사이공 (현재 호찌민)으로 이동하면서 쌀국수도 따라 남부에 자리 잡게 됩니다. 남부에서는 중국 화교들이 상권을 장악하다 보니 화교들 나름의 방법으로 쌀국수를 만들어 팔기 시작합니다. 베트남으로 여행 오시면서 많이들 드셔보신 숙주, 허브, 바질, 고수 등을 얹어 먹고 설탕과 검은색, 빨간색의 두반장을 섞어 먹는 방식이었습니다.


<왼쪽 하노이식  깔끔한 소고기 쌀국수, 오른쪽 호찌민식 소고기 쌀국수와 숙주와 각종 채소 및 양념>


  오리지널 Pho가 아닌 잡다한 것을 넣어 먹는 Pho에 불만을 느꼈던 북부 원조 Pho 장인들은 진짜 Pho를 알려주겠다며 사이공(호찌민)에 매장을 내기 시작합니다. 원조 Pho를 남부에 제대로 전파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죠. 1954년대부터 북부 사람들이 대거 남부로 이동하면서 원조 쌀국수도 남부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남부에서는 지금도 숙주, 허브, 바질, 고수 등을 얹어 먹고 달짝지근한 설탕이 들어간 검은색, 빨간색의 두반장을 섞어 먹는 방식으로 많이 먹고 있으니 사람의 입맛은 쉽게 못 바꾸나 봅니다.



닭고기 쌀국수 Pho Ga 탄생


1939년 하노이에서는 소고기 공급 문제 때문에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Pho를 판매할 수 없어 식당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Pho에 중독된 수많은 소비자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소고기 대신 닭고기 쌀국수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원로들과 소고기 쌀국수 마니아들은 닭고기 쌀국수는 Pho가 아니라면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6시간 이상 소뼈를 우려내 국물과 쉽게 끓여낸 닭고기 쌀국수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닭고기 쌀국수를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먹다 보면 입맛에 익숙해지다보니 닭고기 쌀국수 Pho Ga는 Pho의 한 종류로 자리를 잘 잡았습니다.


소고기가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태어난 닭고기 쌀국수


프랑스와의 전쟁이 끝나고 공산 정권이 들어선 북부에서는 나라의 근간인 농업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소의 도축과 고기 판매를 금지했습니다. 소를 음식이 아니라 소중한 '농업 생산 수단'으로 규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부의 규정을 잘 지키던 북부의 쌀국수 상인들은 소 대신 닭고기 뼈로 육수를 내어 담백한 쌀국수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미국과의 전쟁이 끝나고 공산 정권이 들어선 남부에서도 소고기 도축이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프랑스와 미국의 영향 아래 있었던데다 남부 특유의 자유 분방한 남부 사람들은 공안들의 눈을 피해 소고기를 도축하고 제대로 된 국물 맛을 우려내다 집기를 빼앗기고는 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단속을 나온 관리들도 뇌물을 받기보다는 몰래 그 집에서 쌀국수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는 눈을 감아 줬다고 합니다.



다양한 베트남 쌀국수


 호찌민 보다 남쪽의 메콩 델타 지역에서는 육류 대신 민물 생선, 새우 등의 해산물 쌀국수가 유명합니다. Pho라고 하더라도 지역마다 고명으로 얹어 먹는 음식은 지역마다 확연히 다릅니다. 우리나라에 지역마다 김치의 종류가 아주 다양하듯 베트남 쌀국수의 종류도 아주 다양합니다.


베트남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Pho 이외에도 남부 메콩 델타 지방이 원조이자 당면처럼 얇고 투명한 쌀국수 Hu tieu (후 티유) 한국의 수제비 반죽 같은 쫄깃한 Bun Moc,(분 막),  스파케티 면처럼 둥글고 다소 두꺼우면서도 얼큰한 국물이 일품은 Bun Bo Hue (분 보 후에) 그 외에 Banh Canh(반 깐), Bun Rieu (분 리우).. 등등 국물이 있는 국수 종류만해도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국물 없이 소스에 찍어 먹고, 비벼 먹는 쌀국수를 더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김치가 수 없이 많듯이 베트남 쌀국수도 다양합니다.


역시 음식에는 그 나라의 기후, 날씨, 자연 환경, 문화와 역사, 사회 현상까지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 나라를 알려면 그 나라의 음식을 먹고 그 이면에 스며든 다양한 이야기를 살펴 보는 것이 그 나라를 투자하고 진출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현금 없는 사회로 성큼 다가선 베트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