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트남이 다양한 영역에서 매력적인 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게임 산업계에서도 베트남을 가장 주목해야 할 시장으로 집중 조명하고 있다. 2020년 기준 9,800만의 세계 15위 인구 대국 베트남인데 UN에서 발표한 중위 연령이 31.9세로 중국 38.4세, 한국 43.7세, 일본 48.3세와 비교해보면 베트남은 확연히 젊은 나라이다. 젊은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보니 주요 게임 유저 연령대인 15세 ~ 34세가 3,000만명이 넘는다.
베트남 모바일 게임 산업의 빠른 성장 배경에는 세계에서 10번째로 저렴한 모바일 요금제가 뒷받침해주고 있다. 베트남 1GB 모바일 데이터 평균 요금이 0.57달러로 세계 평균인 5.09달러의 1/9 수준이다. 또한 국가 전역에 깔린 4G 통신망이 베트남 모바일 게임을 확대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더해 베트남 통신사 Viettel이 세계 6번째로 자체 제작한 5G 장비를 상용화하면서 하노이, 호찌민 등 주요 도시에 5G가 개통돼 빠른 통신 환경이 필수인 게임 업계에서는 베트남 시장에 더욱 눈독 들이고 있다.
베트남 e스포츠 산업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6,800만명이 넘는 스마트 폰 사용 인구가 든든한 그 뒷배경이다. ‘Arena of Valor World Cup 2019’ 토너먼트 경기가 개최되었을 때는 약 65만명이 방송 생중계를 지켜봐 베트남 e스포츠 시장에 대한 인기를 증명했다. 베트남 게임업체 Appota가 발간한 Vietnam E-sports Guidebook 2019 (VEG)에 따르면 e스포츠 콘텐츠를 시청하거나 즐기는 인구가 1,500만명, 2020년에는 2,6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게임을 이용자와 콘텐츠 시청자까지 하면 2020년 3,28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오는 11월 동남아시아 게임이라 불리는 Sea Games가 하노이에서 개최되는데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이어 2번째로 공식 국가간 e스포츠 대결이 벌어질 예정이어서 e스포츠에 대한 인기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정보 통신부에 따르면 2020년 베트남 온라인 게임 시장은 5억 2,141만달러, 우리 돈 6,000억 원 가량인데 2015년 대비 100% 초과 성장했다. 인구 2.7억의 인도네시아, 1억의 필리핀도 젊은 인구가 많이 게임 시장이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베트남은 이들 국가와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베트남 게임 개발 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게임 수출 강국으로서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 메이커로서 베트남을 전세계에 처음 알린 것은 2014년 제 2의 앵그리 버그로 불리던 스마트 폰용 게임 Flappy Bird이다. 29살 Nguyen Ha Dong(응우옌 하 동) 이라는 젊은 베트남 개발자가 3일 만에 만들어 업로드한 것이 전세계 100개 국가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 1위를 차지하고 하루 광고 수익으로만 5천만을 넘게 벌어들였다. 하지만 개발 의도와 다르게 강한 중독성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자 막대한 이익을 곧바로 포기하고 앱 스토어에서 게임을 내렸다. Flappy Bird는 그렇게 없어졌지만 억만장자가 된 응우옌 하 동처럼 되고 싶은 젊은 개발자들이 나타나면서 베트남 게임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앱 분석 리서치 업체인 App Annie는 최근 펴낸 <Vietnam, A Mobile Market Of Opportunity>에서 호주+뉴질랜드+동남아시아 (ANZSEA) 시장에서 가장 유망하고 가장 인기 있는 게임 제작 업체 Top10 중 5개 업체를 보유한 베트남을 주목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Top5 중 1위, 2위, 4위를 베트남 업체가 차지했다. 1위를 차지한 Amanotes는 지금까지 개발한 게임들의 누적 다운로드가 10억이 넘었다. Amanotes의 공동 창업자 Nguyen Tuan Cuong은 2020년 포브스가 선정하는 ‘베트남 각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미만 30인’에 선정되었다. 단일 기업이 아닌 게임 회사들의 국적 기준으로 베트남 게임은 2020년 전세계에서 7번째로 많은 다운로드를 받았으면 전세계 25개 게임이 다운로드 받을 때마다 베트남에서 개발한 게임이 1개씩 다운로드 되고 있다
베트남 게임 시장의 중흥을 연건 한국 게임들이었다. 2000년대 초반 한국 기업 웹젠의 ‘뮤’가 큰 인기를 끌며 베트남 게임 시장을 부흥시켰고 2016년 ‘뮤 오리진’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베트남 최고 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이어 ‘오디션’, ‘크로스 파이어’, ‘배틀 그라운드’ 등 한국 게임들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05년부터 중국 게임들이 물밀듯이 몰려 들어 한국 게임들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겼다. 현재 베트남 모바일게임 시장의 70%는 중국 게임들이 장악하고 있다. 한류 원조 국가인 베트남에서 유독 한국 게임이 밀려난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 시장 조사 업체 Statista의 베트남 모바일 OS 시장 점유율 조사에 따르면 안드로이드가 62.7%를 차지하는데 상대적으로 20~30만원 내외의 중국산 저가 보급형 스마트 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 모바일 게임들은 이 틈을 노렸다. 저가 스마트 폰에 적합한 저사양 게임으로 유저들을 붙잡았다. 한국 게임들의 서양인 캐릭터 일색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베트남 게임 업계의 관계자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MMORPG(Role Playing Game)의 경우 한국 캐릭터들은 영어 이름이 대부분이라 베트남 유저들이 꺼려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에 반해 중국 게임들은 ‘삼국지’, ‘서유기’, ‘천용팔부’와 같은 유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들이다 보니 베트남 사람들이 캐릭터에 친숙하다. 한 마디로 말하면 캐릭터의 이름이 ‘로빈 후드’이면 누구나 캐릭터의 특징을 알 수 있지만 ‘로빈’이라는 이름은 캐릭터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게임 업체들이 베트남에서 라이선스 취득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 공영방송사의 자회사이자 메이저 게임 유통업체인 VTC Games의 담당자에게 문의를 헤보았다. ‘어느 나라 업체건 베트남은 게임 라이선스 취득은 어렵지만 중국 업체가 가장 어려움을 겪는다. 베트남과 영토 분쟁 중인 해역에 중국이 임의로 그어 놓은 구단선이 그려진 중국지도가 게임 안에 많이 숨어 있어 중국 게임을 검사할 때 몇 배 더 엄격하게 한다’는 것이다. 제일 까다롭게 심사하는 중국 업체가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데 할 말이 없다.
베트남 경제 성장과 더불어 게임 시장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단순 소비 시장이 아닌 게임 메이커 국가로서 베트남 게임 업체와 중국 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성장 가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게임 업체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베트남 시장을 지속적으로 공략하기를 기원하다